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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느리가 우리 집에서 직접만든 찜닭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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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거 맛 좀 보세요."
"음 맛있다. 약간 싱거운가? 내가 요즘 입맛이 달라져서 확실히 모르겠다. 입맛이 점점 짜지는 것 같아. 네가 한 번 맛보고 결정해."


며느리가 직접 만든 안동찜닭이다. 우리는 지난 설날 명절 때부터 명절 지내는 것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아이들이 모두 좋다고 하고, 나도 괜찮은 듯해서 이번 추석명절에도 앞으로도 계속 그 방법으로 하기로 했다.

딸과 며느리 모두 한두 가지 음식을 해오기로 한 것이다. 음식을 준비해오되 꼭 명절 음식이 아니어도 되고, 사와도 되고, 본인이 직접 만들어 와도 된다고 했다. 며느리는 고추장 소불고기와 안동찜닭을 준비한다고 카톡방에 올렸다. 고추장 소불고기도 며느리가 직접 했냐고 물었다. 며느리는 서슴지 않고 "아니요 사왔어요" 한다.

아무 상관없다. 나도 얼마 전부터 불에 조리만 하면 되는 음식을 택배로 시켜 먹곤 했다. 맛도 좋고 시간도 절약되니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느 때는 어느 음식이 맛있다는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딸아이는 돼지등뼈 감자탕과 과일을 보내왔다. 나는 생선전, 갈비, 탕국 등 아이들과 겹치지 않은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카톡방에 올리는 이유는 메뉴가 서로 겹치지 않기 위함이다.

며느리는 제 집에 살림 도구가 우리 집만큼 많지 않아 재료를 준비해서 본인이 직접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그 방법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리고 다음 날 명절 당일에는 아침 일찍 오지 않고 실컷 자고 12시 전에만 오면 된다고 했다.

추석 명절을 앞둔 며칠 전 수영하러 온 친구들의 화제는 당연히 추석에 관한 이야기였다.

추석 지내러 어디로 가느냐? 며느리는 언제 오느냐? 음식은 어떻게 하냐 등등. 명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왔다. 어느 친구가 "언니네 며느리 언제 와요?" "미리 올 것도 없다고 했어. 각자 음식을 한두 가지 준비해서 편한 시간에 아무 때나 오라고 했어. 지난번 설 명절 때부터" "와 언니 잘하시는 거다. 예전에 우리 친정엄마도 명절을 지내고 집에 오면 맨날 싸우고 그랬는데. 그 며느리는 싸울 일은 없겠네요" 한다.

어디 그의 친정어머니만 싸웠을까? 나도 역시 명절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가벼운 입씨름으로 시작해 결국엔 큰 싸움으로 번지기가 일쑤였다. 그런 명절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야말로 명절 전후로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그런 나도 어느새 며느리가 생겼고 그런 일로 서로 마음을 다치기 싫었다. 며느리가 생기고 2~3년은 습관대로 명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명절에 아들 내외가 말다툼을 했는지 안 좋은 인상을 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아차 싶었다. 나도 알게 모르게 그런 방법에 익숙해지고 만 것이다.

그러다 좀 더 즐겁고 편한 명절을 보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카톡방에 올렸더니 모두 좋다고 한다. 그 방법을 하니 나도 편하고 좋았다. 명절이라고 그렇게 바쁘지도 않고 오히려 여유까지 느껴진 것이다.

지난번 설 명절이 끝나고 친구 모임이 있었다. 명절에 관한 이야기 끝에 다음날 12시 전에만 오라는 내 말을 듣고 한 친구가 "와 그거 좋은 방법이다. 아주 안 오는 것보다 훨씬 좋은데. 나도 다음엔 그 방법으로 해 봐야겠다" 한다. 딸아이 시어머니께서는 여행을 간다고 해서 명절 전날 우리 집에서 모두 모이기로 했다.

며느리가 직접 만든 안동찜닭이 식탁에 올라왔다. 외손자들한테도 "이거 외숙모가 만든 거니깐 먹어봐" 하니 맛있다고 엄지를 들어올인다. 아들은 신이 났는지 "아버지 엄마, 매형, 누나 몇 점 줄 수 있어요?" 식구들에게 물어본다. "이건 점수를 매길 수는 없지만 구태여 점수를 준다면 120점, 150점도 넘어." 모두 후하게 점수를 주었다. 물론 맛도 좋지만 그 정성에 점수를 더 준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며느리가 살짝 민망한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한다. 모두 기분 좋게 명절 전야를 보냈다. 식구들 모두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는 시간에도 주방에서 명절을 준비하는 사람은 따로 없었다.

추석 당일에는 의외로 일찌감치 아들 내외가 왔다. 얼른 아침을 먹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보냈다. 친정으로 향하는 며느리의 몸과 마음이 가벼워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홀가분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명절 문화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요즘. 모두 살기들 바쁘지만 명절을 계기로 오랜만에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데 화나고 찡그리고 마음에 앙금이 남는 그런 명절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 오래된 습관을 조금 줄이고 양보하니 오히려 마음은 더 편하고 풍요로운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태그:#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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