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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이라는 것은 신체적 기능이 전반적으로 약화되는 것을 수반한다. 퇴화는 본인 및 타인에 대한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늙음의 불가항력적인 신체진행은 젊음과 곧잘 비교되며 부정적인 경향과 편견 앞에 놓인다. 그러나 누구도 비껴갈 수 없고, 게다가 우리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노인 인구가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앞으로 벌어질 사회적 현상 및 제반 문제를 성찰하도록 도와줄 전시가 기획되었다. 서울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는 지난 8월 27일부터 '에이징 월드-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을 진행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아름다움과 젊음이라는 욕망의 키워드가 어떻게 작동되고 소비되는지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1섹션에 선보이는 그룹 ‘커먼 어카운츠’의 작품. 강남의 한 성형 수술실을 형상화하였다.
▲ <유동체가 되어: 아늑한 성전(聖戰)> 1섹션에 선보이는 그룹 ‘커먼 어카운츠’의 작품. 강남의 한 성형 수술실을 형상화하였다.
ⓒ 황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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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첫 섹션은 동시대인들이 노화를 수용하는 전반적인 세태를 짚는다. 로렌 그린필드의 사진 작품 속 브랜드(베르사체) 패션은 아름다움의 천편일률성과 자본이 기획한 소비시장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함의한다. 그룹 '커먼 어카운츠'의 <유동체가 되어: 아늑한 성전(聖戰)>은 강남의 한 성형 수술실을 형상화하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성지에서 발현되는 욕망을 포착하고 있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노화가 동반하는 신체의 변형, 그리고 치매와 병듦을 받아들이는 가족의 갈등을 다룬다. 안네 올로프손은 40대 중년 여성의 얼굴 표면에 선명한 균열을 넣었다. 마치 세포 조직이 탈각되는 형상으로 젊음의 몰락과 불안한 노후의 실재를 연상시킨다. 삼프사 비르카예르비의 영상 <남아 있는 건 무엇일까요>는 어머니가 겪는 치매가 점차 악화되며 기억의 망실이 개인의 실존을 소멸시키는 과정임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섹션은 미래로 설정된 시점에 관람객 자신이 노화를 대처하는 위치에 서도록 하며, 사회적 대안을 제시한다. 그룹 '옵티컬 레이스'의 <1주택1자녀>는 고령화 사회를 가속하는 원인으로 저출산을 겨냥한다. 이로써 가구가 보유한 주택 수만큼 자녀를 계획하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룹 '일상의 실천'은 작품 <골든 실버타운>으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작품 앞에 놓인 키오스크에서 도시를 구성하는 옵션을 선택함으로써 가상의 설계도를 경험하게 된다.

그 밖의 작품에서 윤지영의 <불구하고>는 신화의 아킬레스를 비롯한 영원불멸이 맞이한 최후를 보여주며 현세의 욕망과 유한한 삶의 괴리를 반추하도록 한다. 이병호의 <바니타스 흉상>은 실리콘 인체 조각에 공기를 주입하며 압축과 팽창 작용을 통해 죽음과 생의 과정을 변주한다. 박은태 작가는 <아빠>와 <지하 수선실>로 산업 발전의 역군이었던 베이비붐 세대가 현재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는 절망감을 담아내고 있다.

전시는 '연령차별주의(Ageism)'와 불평등이라는 현실을 자각하고 노화에 대한 관점 전환을 유도하고자 기획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편견과 질서로부터 파생되는 사유를 변환시키게끔 의도가 온전히 반영되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젊음의 이행은 역설적이게도 늙음의 동시 진행인데 이것을 처음부터 양분함으로써 자기모순에 빠진 것은 아닌지.

젊음이라는 고가의 상품 앞에서 늙음은 이분법적인 경계와 우열로 비교되며 등급으로 나뉜다. 진영의 대립을 허물고 차이의 존중과 개인 및 세대의 실존이 어떻게 가능할지 고민이 더 깊어야 하지 않았을까. 자본이 유도하는 소비 자극에 오히려 헌납된 전시는 아니었는지 반문하게 된다.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세 번째 섹션에서 <1주택1자녀>의 프로젝트는 다주택 소유와 부동산 과열이라는 한국의 실정을 감안하면 평등권 침해일 것이다. 게다가 <골든 실버타운>은 빈부의 격차를 지탱하도록 프레임을 제공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고독하고 쓸쓸한 노년은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처럼 자발적 죽음을 강요받는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기억과 인지능력은 급속히 쇠락한다. 전시 중 삼프사의 <남아 있는 건 무엇일까요>에서 아들이 어머니에게 사진첩을 보여주며 "(과거의 기억)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자비로운 일"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회상이 치유에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기에, 노화에 대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정책이 부재한 현실을 시사하고 있다.

전시는 렘브란트의 <34세의 자화상>과 <63세의 자화상> 사이를 저울질 하도록, 그리하여 어느 자화상을 더 사랑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어디든 그의 생의 궤적을 살피고 난 후에야 그림의 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험난한 삶의 여정에서 지치고 병들고 허물어진 늙음이 사회적으로 존중되는 기제를 모색하는 전시로써의 기획이 아쉬웠다.

한편 전시는 개인 및 그룹 15팀이 참가했으며 오는 10월 20일까지이다. 아울러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동일한 주제로 <아무튼, 젊음>이 전시 중이다. 연계해서 관람하면 어떨까.

태그:#전시, #서울시립미술관, #에이징 월드, #젊음, #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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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의 질서를 의문하며, 딜레탕트Dilettante로 시대를 산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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