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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왜 경찰은 화성연쇄살인범을 못 잡았을까?

[주장]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조국사태의 공통점
19.09.20 16:28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조국사태
 
 
최고 이슈 화성연쇄살인 ⓒ KBS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과 관련된 뉴스가 연일 1면을 장식하고 있는 요즘, 거의 유일하게 그것을 넘은 기사가 등장했다. 바로 '화성연쇄살인범 발표'다.
 
워낙 사건의 파급력이 세고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론들은 '화성연쇄살인범'을 톱으로 다뤘다. 관련 단어들이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를 덮었고, 언론들도 다양한 꼭지를 통해 30년 전 사건을 재조명하기 바빴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자 보수언론과 야당은 이를 당장에 언론조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정부가 '조국사태'와 관련하여 정국이 불리하게 돌아가니 일부러 이 사건을 이 시기에 발표했다는 것이다.
 
교수들의 조국 장관 관련 시국선언 이슈를 덮기 위해 부랴부랴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상황을 발표한 것 아닌가. -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
 
지금 정부 전 부처에서 나타나는 행태를 보면, 조국 이슈를 덮기 위한, 조국 물 타기용 급조된 정책·급조된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면 굉장히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
 
아직 용의자가 부인하는 등 보완이 필요한 수사가 지금 발표된 배경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일각에서는 정권이 국민의 관심을 모을 사건으로 조국 사태를 신문의 1면에서 밀어내기 위해 총력전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 <조선일보> 19.09.20 사설 '배경이 궁금한 요 며칠 사이 정부 발표들'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나경원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 ⓒ 남소연
 
물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조국 장관도 사퇴하고,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도 떨어지고, 보수야당의 총선 승리도 가능할 것 같은데 왜 하필 이 시기에 뜬금없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들이 더욱 흥분할 수밖에 없는 건 그들 자신이 바로 이 분야의 전문가요,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보수야당은 그동안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건이 벌어지면 또 다른 이슈로 세간의 관심을 돌려왔다고 의심 받아왔다. BBK 관련 증언이 등장하면 서태지-이지아 이혼 기사가 도배 되었듯이 연예인 관련 소식은 항상 지금의 야당이 불리할 때 등장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 화성연쇄살인범 발표를 의도적이었다는 것은 과한 음모론이다. 오히려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조국사태'가 비정상적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언론들의 조국 관련 보도량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나 심지어 세월호 당시를 뛰어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화성연쇄살인 사건이 조국 뉴스를 덮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전인수식 몽니일 뿐이다.
 
그 많은 경찰과 검찰은 어디로?
 
 
다시 주목받는 <살인의 추억> ⓒ 씨더스
 
보수언론과 야당은 일제히 이번 화성연쇄살인사건 보도가 조국 기사를 덮었다고 야단이지만, 개인적으로 보건데 두 사건은 오히려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나 조국사태 모두 공권력의 그릇된 과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선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려보자.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봉준호 감독의 최고작으로 꼽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감독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매개로 그 시대 분위기를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인데, 봉 감독은 영화에서 화성연쇄살인의 원인이 바로 그 시대 자체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화성에서 여성들이 죽어나가는데도 치안이 엉망이었던 그때. 그것은 독재정권이 지역의 수많은 경찰들을 서울로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개최를 이유로 사람들을 강제로 철거시키기 위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데모대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지역을 비운 사이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조국사태는 어떤가. 현재 조국 장관과 그의 가족 수사를 위해 꾸려진 검찰의 수사팀은 역대 최고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 1, 2, 3부와 형사부 및 강력부 소속 일부 검사가 투입되어 수십 군데의 압수수색을 펼쳤다. 검사만도 최소 21명, 수사관도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의 검사 13명,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검사 20명 등을 감안한다면 이는 엄청난 규모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아스럽다. 과연 이번 조국사태가 이렇게 많은 검찰 인력을 투입할 만한 사건일까? 현재 기소 가능한 것들을 살펴보면 조국 장관의 딸 봉사 관련 표창장 위조와 100억도 되지 않는 사모펀드 개입 등이 전부다. 아무리 그 대상이 법무부 장관 가족이라 할지라도 과잉수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검찰, 이렇게 했어야지! ⓒ 인터넷 뽐뿌 게시판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세월호수사는? 가습기 살균제 수사는? 장자연 수사는? 버닝썬 마약수사는? BBK 수사는? 왜 검찰은 이 모든 사건은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조국 사건에만 매몰되어 있는 건지. 혹시 자신들이 개혁의 대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경찰의 잘못된 투입은 많은 비극을 양산했다. 죄 없는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죽었고, 이후 경찰 연인원 205만여 명이 뒤늦게 투입되었지만 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 또 치안은 그만큼 구멍이 났을 것이다.
 
이는 현재의 검찰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수사 인력이 조국 장관을 목표로 투입되어 있지만 그것이 정작 검찰 스스로를 위한 것인지, 국가를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물론 보수언론과 야당은 조국 장관이 사퇴하면 모든 게 해결될 듯 주장하지만, 이번 조국사태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계급문제와 불평등의 문제 등은 그의 사퇴 유무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중지를 모아야 할 사항들이다.
 
화성연쇄살인범을 잡는데 30여 년이 걸렸다. 부디 검찰이 단추를 잘못 꿰지 않기를 바란다. 30년은 너무 긴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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