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조사관

달리는 조사관 ⓒ ocn

 
OCN 수목드라마 <미스터 기간제> 후속 <달리는 조사관>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용수가 돌아왔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적도의 남자>,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이언맨>, <베이비 시터> 등을 통해 TV 드라마로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미장센' 실험했던 주인공 김용수 연출. 하지만 그의 실험은 시청률과 이어지지 않았고, 그의 이름 또한 시청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랬던 그가 불현듯 OCN 장르물 <달리는 조사관>으로 돌아왔다. 그의 귀환 소식을 듣곤 시대와 화합하지 못한 '장인'이 사라지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김용수 연출을 정의하자면 여러가지 수식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건 '영상 미학'이다. 그는 TV라는 화면의 본성, '보여주는 것'에 그 무엇보다 충실하다. '보여주는 것'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던 그였는데,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조사관>은 '국가인권증진위원회'를 배경으로 위원회 조사관들의 활약을 그린다. 이 위원회를 이끄는 위원장은 안경숙(오미희 분)인데, 그는 일반적인 드라마 속 '위원회장'이 보여주는 권위적인 모습과 달리, 알 듯 말 듯한 미소로 위원회 조사관들을 품어준다.

지난 19일 방송된 2화에서 인권증진위원회 과장인 김현석(장현성 분)은 현재 조사중인 사건에 자신의 형이 고위직으로 있는 회사가 관여되어 있자, 위원장을 찾아와 조사에서 빠져야겠다는 결심을 알린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오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 김 과장의 고민에 위원장은 그저 단 한 마디, '하던 대로 하시라'며 그의 노파심을 접어두게 한다. 해당 내용의 장면은 짧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 이후 위원장은 위원장실의 창문을 연다. 여느 사무실과 다른, 창호지 문으로 된 문이 줄지어 비껴 열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위원장의 모습은 '운신의 폭은 좁지만 그래도 정도의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엿보게 해준다. 

이런 식이다. 언제나 그랬듯, 김용수 연출의 드라마는 이번에도 짧은 대사, 긴 여운이 담긴 화면을 통해 드라마를 풀어낸다. 등장 인물은 화면 옆으로 비껴서고, 그 나머지 화면에 그의 고뇌가 드리워진다. 막막한 하늘 아래 비껴 서있는 한윤서(이요원 분)의 모습에서 수사권은 없는 일개 인권증진위원회(아래 인권증진위) 조사관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주인공 한윤서, 그리고 본의 아니게 인권위로 좌천된 배홍태(최귀화 분)가 드리운 공간, 그들의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그대로 그들을 표현해 낸다. 
 
 달리는 조사관

달리는 조사관 ⓒ ocn

 
노랑과 연두로 화사하게 칠해진 ㄷ(디귿)자형의 연립 안에서 노조 간부였던 피해자 강윤오는 고립되고, 감금되었으며, 죽음에 이르렀다. 화사한 건물과 세상의 배반으로 인해 어두운 공간에 갇힌 피해자의 절박함을 대비하며 상황을 더욱 강조하는 식이다. 그렇게 드라마 속 공간은 어느 한 곳 허투루 사용되지 않고, 그 자체로 드라마 속 이야기의 일부분이 된다. 

거기에 <달리는 조사관>만의 감각적인 장식이 더해졌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대화'를 여기에 의존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카톡'과 '문자'는 화면을 채우며 극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런 화면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건, 이미 <적도의 남자>에서 김용수 연출과 함께 했던 박성진 음악 감독의 OST이다. 자칫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는 '미장센' 위주의 드라마를 '아라비안 나이트' 느낌의 이국적인 OTS로, 혹은 앞서 <손  the guest>에서 등장한 바 있던 국악 버전의 OST로 끌어올린다. OST는 <달리는 조사관>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내며 극의 어엿한 주인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달리라는데 아직 '슬로우 스타터'

그런데 이런 장인 정신이 듬뿍 담긴 '김용수 연출'의 미장센의 묘미가 서사의 전개와 적절하게 맞물리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직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렵다. 시공북스를 통해 출간된 송시우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 만큼, 서사적 재미는 이미 보장된 상황. 하지만 아직 드라마는 '기동성 있는 서사'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는 시장 성추행 사건으로 문을 열었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 건 소지혜가 직접 인권증징위로 찾아와 고발한 성추행 사건부터다. 소지혜는 자신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강윤오의 장례 과정에서 노조 동료 이은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그를 고발했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소지혜와 결백을 주장하는 이은율의 진실 게임으로 시작된 사건은 배홍태와 한윤서 조사 과정에서 뜻밖의 진실을 찾게 된다.
 
 달리는 조사관

달리는 조사관 ⓒ ocn


차기 노조 지부장으로 유력시되었던 강윤오는 재미로 웹툰 게임을 올리고, 그룹 회장은 자신을 조롱하는 웹툰에 분노해 강윤오를 한직으로 발령내는 것도 모자라 그와 그 가족을 협박하며 퇴사를 종용한다. 사측은 그래도 강윤오가 버티자 손해배상 청구 등 갖은 방법으로 그를 괴롭힌다.

결국 강윤오는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이후 강윤오의 동료 이은율과 연인 소지혜는 강윤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사측과 한통속이 되었던 경찰을 믿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자신들의 성추행 사건을 꾸며 인권증진위를 찾은 것이다. 성추행 사건의 진실을 쫓던 조사관들은 그 과정에서 사측에 의원 인권이 발생된 한 사람의 아픈 진실을 확인하고, 소지혜와 이은율이 알리고자 한 진실의 장을 열어준다.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야기 전개가 느려 긴장감이 떨어진다. 미장센은 화려하고 서사는 흥미진진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회 현안을 다룬 드라마일 경우,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려면 어느 정도 빠른 전개가 뒷받침 돼야 한다. 그러나 <달리는 조사관>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물론 아직 2회만 방송되었기에, 더 지켜봐야할 것이다.

부디 서사와 미장센의 호흡을 제대로 맞춰 장르물의 새 장을 열수 있기를, 그래서 김용수 연출을 오래 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기대를 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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