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새벽,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신다. 기존에 사용하던 콘센트 전기가 차단되어 커피 줄이 꽤 길다.

"자다 보니 여기구나. 집이 아니구나. 내가 아직 여기 있구나. 우울해지더라고."

커피를 타던 한 여성 노동자가 이야기한다. 그렇다. 직접 고용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날도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이어진다. 피부병 환자는 계속 늘고 있다. 이어지는 감기 행렬에 필자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엊그제부터 두통과 함께 목이 간질간질하더니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전날에는 미루던 빨래를 했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바지와 티셔츠를 빨고 '탁탁' 털어 빨랫줄에 널고 나니 홀가분했다. 오가며 널어놓은 빨래가 잘 말라가는 걸 확인할 때마다 뿌듯하다. 농성장 곳곳에 널어놓은 빨래를 보면 수납노동자들의 아기자기한 일상과 함께 이들의 서러운 세월, 그리고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굳은 결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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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집회에서 율동을 하는 요금수납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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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 청북영업소에서 요금수납원으로 11년 동안 근무한 정보영씨는 연휴 끝나고 긴장감이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조용히 지나가는 일상에 대해 우려감을 표현했다.

"한편으로는 우리를 사람 취급을 안 하는 건가 무시하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그러다가 화요일 전기 때문에 약간 실랑이가 있었는데,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연좌 농성도 나름대로 좋았고요. 전기도 그렇고 청소도 그렇고 도로공사 하는 행태를 보면 우스워요. 우리 보고 떼쓴다고 하는 데 반대로 도로공사가 하는 행동도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영업소 근무할 때 우리가 자기네를 떠받들어 줬잖아요. 우리가 도로공사 오기만 하면 맞아주던 습성이 여기서도 배어있는 느낌이에요.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고 하찮게 보고 비아냥거리는 모습이 정말 억지 쓰는 거 같죠."

보영씨는 사측이 정말 당당하다면 이강래 사장이 직접 나와 교섭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남편의 문자 메시지 "소풍 간다 생각합시다" 

우리는 가지요 그렇게 가지요 너와 나 우리 함께 가지요.
새벽별 쓰라린 가슴 안고 그렇게 우린 걸어가지요
- '우리는 가지요' 중에서   

이어 '바위처럼' '가지요' '내일의 노래' 등 세 곡에 맞춰 율동으로 몸을 풀고 각 노동조합 대표자의 투쟁 발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예뻐요!"

경남일반노동조합 톨게이트지회 전서정 지회장이 나오자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외친다. 전 지회장이 립스틱을 곱게 바르고 왔기 때문이다.

"저 매일 바르거든요. 오늘 기분도 그렇고 해서 발랐는데 우리 처음 왔을 때처럼 해야 할 것 같아요."

전서정 지회장은 곧이어 남편에게 받았다는 문자메시지를 낭독한다.

"그렇게 혼자 있으니 많이 서운하지요. 신랑이라고 한번 찾아오지도 않고... 사람 목숨이나 파리 목숨이나 다 똑같은 것 같소. 언제 어디서 끝날지 모르겠지만 여보 우리 소풍 같은 인생을 삽시다. 회사 출근할 때도 소풍 간다 생각하고 당신도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잘 때도 소풍 왔다 수학여행 왔다고 생각하고 농성할 때도 열 받지 말고 꼭 즐거운 마음으로 하세요."(전서정 지회장의 남편)

"11일짜리 소풍은 과하지 않아요?"

"수학여행!"

"빼빼로!"

'농성 11일'이라는 말이 나오자 노동자들이 빼빼로를 먹고 싶다고 한다.

"오늘 빼빼로를 먹도록 해야겠습니다."

"가래떡!"

"알겠습니다. 58세 이상은 가래떡으로"

가래떡까지는 어려웠지만 저녁때 '빼빼로' 약속은 지켜졌다. 오늘은 일반민주연맹 남정수 교육선전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제노총(ITUC)이 샤란 바로우(Sharan Burrow) 사무총장 명의로 보낸 서신을 낭독한다. 국제노총은 이 서신을 통해 해고된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농성이 강제해산 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즉각 조처를 할 것을 촉구했다.

"국제노총은 한국 정부가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의 농성이 강제해산 되지 않도록 즉각적인 조처를 할 것을 촉구합니다. 단체교섭과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는 것은 ILO 회원국 정부가 지니는 의무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자신이 하던 원래 업무에 직접 고용 되도록 노사 간의 대화를 촉진해야 합니다. 귀 정부와 관련 부처가 한국도로공사와 한국 내 기업들이 법과 사법부의 판결을 예외 없이 준수하도록 모든 조처를 하기를 기대합니다."(샤란 바로우)

요금수납노동자들이 기쁨의 함성으로 국제노총의 서신에 응답한다.

"와~~"

서신 낭독을 들은 한 조합원은 "투쟁하면서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해외에서도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뿌듯하고 좀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전기 좀 해주고 가세요" 그러나...

잠시 후 정의당이 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상무위원회를 열고 심상정 의원 등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이 농성장에 들어왔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 방문 시 방송국 기자들이 들어온다고 하여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전날부터 기대가 있었다. 한국도로공사는 추석 연휴부터 도로공사에 출입 기자로 등록되지 않은 기자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 농성장 안 상황에 대한 공중파 보도가 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1층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도로공사 직원들과 대치하던 중이었다.

"방송국이다."

"기자님들 보기 정말 힘드네."

10시 10분 정의당 국회의원들이 방송국 기자들과 함께 들어오자 안에 있던 노동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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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경북 김천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직접 고용을 촉구하며 11일째 본사 점거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250여명이 이날 현장을 찾은 정의당 심상정 대표 일행과 함께 직접 고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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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은 "정의당이 응원하러 왔다. 아니 함께 투쟁하러 왔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노동자들과 악수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자 요금수납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구호를 외친다.

"전기! 전기! 전기! 전기!"

"전기를 주세요!"

"환풍기!"

"청소를 못 하고 있어요!"

"숨 막혀 죽겠어요!"

악수를 하러 다니는 심상정 대표 앞에 한 여성 노동자가 절규한다. 한국도로공사 인제영업소에서 요금수납 업무를 하다 해고된 조복자씨였다.

"커피 좀 마신다고 그 꼴 못 보겠다고 전기를 끊어버린 거예요. 국회의원님들은 오셨다 가면 박수 받고 홍보하고... 실질적인 걸 해결해주세요. 이강래 사장이 국회의원보다 높은 건가요? 대법원판결도 저희가 8월 29일에 이겼잖아요. 공사에서 이행해야 되는데 안 하고 있는지, 왜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조복자씨)

"제가 그만큼 힘이 없어요. 저희가 애를 많이 쓰고 있는데..."(심상정 대표)

심상정 대표의 답변에 노동자들의 입에서 절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저희가 분노하는 게 그거예요. 오늘이 벌써 9월 19일이에요. 8월 29일 대법원판결 후 20일이 지났어요. 대표님만 계시는 건 아니지만 국회에서 공사 사장이 대법 판결 이행 안 하는 걸 20일 동안 어떻게 봐줄 수가 있나요. 대한민국이 법이라는 게 존재하는 나라이긴 하냐고요."(조복자씨)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회가 그래요."(심상정 대표)

노동자들이 또다시 절망의 한숨을 쉰다.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밑에 구사대가 있어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말이 되냐고요. 경찰 병력이 우리한테 이럴 게 아니라 이강래를 구속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박수!"

"저희는 법대로 일 열심히 한 죄 밖에 없는데 정치가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정치를 바꾸어야 해요. 우리는 너무 작잖아요."

심상정 대표를 향해 노동자들이 분노한다.

"오신 김에 여기 전기 좀 해주세요! 전기 좀 해주고 가세요!"
 
심상정 대표 등이 농성장을 나간다. MBC, JTBC, KBS 등 공중파 방송사가 거의 다 들어온 상황이라 노동조합에서는 수납노동자 3명의 발언을 준비했으나 결국 하지 못했다. 첫 번째 발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상정 대표 등 정의당 관계자들이 나가면서 기자들도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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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경북 김천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직접 고용을 촉구하며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250여명이 11일째 본사 점거 농성 중인 가운데 한 수납원이 이날 현장을 찾은 정의당 심상정 대표에게 정치권의 무관심과 무대책을 지적하며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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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왜 저희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죠?"

"비정규직 목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모든 정책이 움직일 수 없는 사회가 됐습니다. 청년들 얼마나 심각합니까? 일자리가 없습니다. 지금 대학을 졸업해도 10명 중 9명이 비정규직으로 가고 있답니다. 저희가 비정규직 없애려고 싸우고 있는데 정치인은 왜 여기까지 와서 저희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죠?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주세요. 기자분들은 이런 현장 찍어주시고, 저희 소식 좀 제대로 알려 주세요."
 
인천지역 일반노조 톨게이트지부 구경숙 지부장이 발언하며 절규한다. 중간에 도로공사 직원이 '끝났습니다'라며 기자들을 내보낸다. 그나마 남아서 농성 촬영을 하던 기자들도 밖으로 나간다.
 
"문재인 정부가 뭐라고 했습니까? 비정규직 악순환을 뽑기 위해 기획재정부 평가 지침까지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약속 하나라도 지켜지는 게 있습니까?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이 한 약속을 지켜주고 있는 겁니다. 대통령의 정책을 대통령의 약속을 저희가 대신 지켜주고 있는 겁니다. 지금 이렇게 지금 싸우고 있는 겁니다."
 
잠시 후 구경숙 지부장이 "그만하겠습니다"하고 발언을 중단하고 들어온다.
 
"구사대도 가고, 기자도 가고..."
 
농성장에 있던 노동자들이 사진만 찍고 가버린 정치인들과 그 뒤를 따라 나간 기자들을 씁쓸한 표정으로 한동안 바라본다.

"정치인들, 30분이라도 같이 앉아 투쟁해보라"

심상정 대표에게 이야기했던 조복자씨도 "국회의원이 몇 명 왔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고 본인들의 정치 민심과 표를 얻기 위해 오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인터뷰, 악수 다 필요 없고 실질적인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요. 정치인들 와서 악수하고 사진 찍는 거 우리한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이 나라가 원래 그렇다는 말에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그럼 그냥 그렇게 살라는 얘기인가요? 본인 노력으로 어떻게 해보겠다가 아니라 원래 그러니 당하고 있으란 얘기인가요? 연대 오는 사람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한테 얘기하고 싶어요. 30분이라도 앉아서 같이 투쟁가 부르고 팔뚝질해 보라고. 입만 뻥긋거리고 갔지 하룻밤이라도 있어 봤냐고요. 저도 골반이 아파요. 양반다리 하고 앉아있는 게 진짜 투쟁의 의지인 거 같아요. 민주당은 한 번 와보지도 않았어요. 저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썩었는지 몰랐어요."

조씨는 이강래 사장이 교섭에 안 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비정규직 제로화 시대를 만들겠다고 하는 문재인 정부가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는 게 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불법 파견을 한 사업주한테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는데, 왜 이강래 사장을 안 잡아들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