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 포스터

영화 <애드 아스트라>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영화들은 화려한 CG나 기술력으로 관심을 모은다. 롱테이크와 압도적인 사운드가 화제였던 <그래비티>, 블랙홀을 영상화한 <인터스텔라> 모두 그 기술력이 먼저 주목받았던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호평받을 수 있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결국 스토리였다. 

우주라는 시공간 안에서 두려움, 공포, 사랑, 삶의 의지와 소중함, 인간의 힘을 담은 드라마가 없었다면 뛰어난 기술력도 온전히 빛날 수 없었을 테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애드 아스트라>도 마찬가지다. 잔잔하면서도 독특한 영화의 드라마는 지구와 우주를 담은 영화의 영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가까운 미래에,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밝히기 위한 '리마 프로젝트'가 출범된다. 프로젝트 책임자인 '클리포드 맥브라이드(토미 리 존스)'는 태양계 끝 해왕성 부근에 기지를 두고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다. 그러나 해왕성 기지에서 모종의 이유로 사고가 발생하고, '써지'라 불리는 범우주적인 재난이 닥친다. 지구에서는 클리포드의 아들이자 우주비행사인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를 기지로 보내 클리포드를 설득하고 재난을 종결시키고자 한다. 그렇게 로이는 지구를 떠나 해왕성으로 나아간다. 

여러 우주영화 떠오르지만... 식상하지 않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애드 아스트라>의 전개는 타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구에 닥친 재난을 막기 위해 우주 먼 곳으로 떠난다는 기본 설정은 <인터스텔라>를 연상시키며, 영화의 전개를 일정 부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목성을 지나가는 장면 등 특정 대목에서는 <인터스텔라>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애드 아스트라>를 뻔하거나 식상한 영화라고 지적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단순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 전개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고, 이 힘은 주인공, 로이로부터 나온다.
 
로이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 인생의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을 품고, 자신을 속인 우주사령부의 미션과 상처를 준 아버지에게 분노한다. 그 때문인지 로이는 스스로를 숨기는 인물이다. 그는 영화 시작부터 모든 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언제나 연기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주비행사이기에 더욱 그래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영화가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진행되어도 계속해서 로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로이가 스스로의 내면을 설명하는 독백조차도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관객 모두를 사로잡은 불확실성과 의심. 이는 브래드 피트의 훌륭한 연기 못지않게 영화의 뛰어난 연출이 아니었다면 체감할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이 영화가 클로즈업을 활용하는 법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 컷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 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애드 아스트라>에는 두 가지 중요한 연출적 특징이 있다. 클로즈업과 원근감이다. 사실 영화에 클로즈업이 자주 등장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브래드 피트 원톱 주연 작품이고, 그의 독백이 영화 시작부터 등장하다 보니 로이라는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 데 영화가 집중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드 아스트라>는 클로즈업이라는 연출에 약간의 변주를 가한다.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비행사의 헬멧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연출은 우선 로이가 어느 상황에 처했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헬멧에 비추어 간접적으로 보여주면서 독특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헬멧에 빛이 반사되어 부분적으로 가려진 그의 얼굴을 화면 가득 담아낸다.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의심을 품은, 거대한 우주 속 무력하고 조그마한 한 인간의 모습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만약 단순한 클로즈업이 활용됐다면 작중 가득한 로이의 수많은 독백은 단순한 대사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 영화에는 원근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많다. 긴 통로를 걸어오는 사람들, 지구에서 우주로 올라오거나 우주 공간을 지나가는 비행체의 모습을 전경, 중경, 후경이 있는 심도 있는 이미지로 포착하는 것이다. 이처럼 깊이감과 거리감이 살아 있는 이미지 덕분에 작중 우주비행은 단순한 이동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깊고 넓은 우주로 나아갈수록 마주하지 않던 자신의 마음속 심연까지 뚫고 들어가는 로이의 내면적인 여정, 영화의 드라마 그 자체를 시각화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애드 아스트라>의 우주여행은 <스타워즈> 혹은 <스타트렉>처럼 화려하지는 못하더라도 더 진한 여운을 남기기에는 충분하다. 

뛰어난 우주 영화들의 계보를 잇기에 충분한 <애드 아스트라>의 유일한 단점은 대중성이다. 어떤 기대를 가지고서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실망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영화는 초중반부 레이싱 및 액션 장면 이후 로이의 감정선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그 결과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에 기대할 만한 스펙터클은 많지 않다. 영상미는 훌륭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상당히 정적인 영화라고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 만약 로이의 고뇌나 감정선에 공감되지 않는다면, 상당히 지루할 수 있다. 

로이는 우주선과 지구로 되돌아온다. 의심과 분노와 수많은 우주 파편들을 뚫어내면서. 그렇게 그는 사람들의 손을 사랑으로 다시 잡는다. 사람들에 분노하고,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숨기면서 우주를 곧 탈출구로 여겼던 로이가 자신이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새로운 탈출구를 찾은 것이다. 태양계와 자신의 마음이라는 두 우주로의 항해를 마친 후에, 의심과 분노에서 벗어나서. 자신이 부여하고, 스스로를 둘러싸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대우주와 소우주가 하나 되는 우주 여행기, 영화 <애드 아스트라>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영화리뷰 애드 아스트라 우주영화 브래드 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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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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