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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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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싸늘 바람이 불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이 지나면 수확의 계절 가을이 됩니다. 이렇게 아침과 저녁으로 찬 바람이 일고 낮의 햇볕이 따사로운 이런 때가 귀한 산버섯이 올라오는 시기랍니다. 버섯따기 체험을 위해 산의 지형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는 지인과 함께 새벽 산행을 나섰습니다.

17호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부러지고 떨어져 내린 잔가지로 길은 곳곳이 막혀 있고 헝크러진 숲은 새벽 어둠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잡목을 헤치며 산에 오르자 이내 등줄기에서는 땀이 솟고 숨소리는 거칠다 못해 단말마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겨우 산 하나를 넘자 더 큰 산이 앞을 턱 가로 막고 서 있었습니다.

산 하나를 더 넘어야 버섯이 있다 했습니다.

점차 높은 지대로 오르자 산세가 한 눈에 들어서고 아랫녘 산은 흰 구름띠를 머리에 이고 있었습니다. 아침해가 유리 단추처럼 떠오르자 컴컴하던 산이 깨어나 벌떡 일어선 듯 깎아지른 능선의 나무는 사선으로 겨우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조릿대 사이를 몇 번이나 지나고 더 이상은 못 가겠다 손을 가로 저을 즈음 앞장 서 가던 버섯 길잡이는 희미한 오솔길을 벗어나 나무를 헤집으며 능선으로 들어섰습니다.

바람이 잘 통하고 습기가 있으나 배수가 잘 되는 사면에서 능이 버섯이 자란다 했습니다. 장터에서 본 능이는 꼭 나뭇잎을 닮아 있었는데 초행자에게는 떨어져 누운 나뭇잎이 모두 능이로 보였습니다. 햇볕이 비치는 양지쪽 사면을 미끄러지며 이 곳 저 곳을 찾아 보았지만 버섯 비슷한 나뭇잎과 군데군데 피어있는 꽃버섯, 밤버섯, 먹버섯 뿐, 능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틀렸구나!'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앞서 가며 능이를 찾던 지인이 '여기요!'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숨차게 달려간 곳에는 능이 두 송이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오, 저 늠름한 자태! 능이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새의 비상하는 날개처럼 보였습니다. 이끼 낀 바위틈에 의지해 날개를 편 가을 능이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능이는 사람 발길이 끊긴 곳, 사람으로 부터 가장 먼 곳, 하늘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1능이 2송이 3표고라 하더니 이렇게 깊은 곳에서 피어나기에 그런 영광스런 칭호를 얻은 것이려니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섯은 '핀 곳을 주변으로 집중해서 피어오른다' 하기에 그 주변을 샅샅이 살펴 보았지만 딱 두 송이 뿐이었고 곳곳에 올라오다가 그만 사그라진 포자의 흔적만이 보였습니다. 아직 날씨가 덥고 습한 까닭으로 제대로 피어 오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마저도 산신령께서 처음으로 오른 이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선물로 내어주신 것인가봅니다. 산 그늘과 햇볕, 알맞은 날씨가 잘 어울려야 피는 가을의 꽃, 버섯은 자연의 귀한 선물입니다.

산을 내려오며 감사와 겸손이란 의미를 떠올렸습니다. 태풍이 휩쓸고 간 험한 초행 산길을 무사히 올라갔다 내려오게 하심도 감사, 능이를 보여 주심도 감사했습니다. 욕심을 버리게 하여 주신 것이 무엇보다 감사했습니다.

산행이 힘들지 않았다면, 버섯이 여기 저기에 많이 피어 있었다면 어떠했겠습니까? 필요한 것 이상의 욕심을 냈을 것이 뻔합니다. 귀하게 얻었으니 감사하며 먹어야겠습니다. 필요한 것 이상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양보하는 겸손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귀한 자연의 선물을 내어주는 경이로운 자연에 머리를 숙입니다.


태그:#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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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래, 섬진강가 용정마을로 귀농(2014)하여 몇 통의 꿀통, 몇 고랑의 밭을 일구며 산골사람들 애기를 전하고 있는 농부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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