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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경북 포항시 기쁨의 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제104회 정기총회에서 2년 이상 논란을 빚은 명성교회 부자(父子) 목사의 목회직 세습을 사실상 인정하는 안에 대해 참석자들이 거수로 표결하고 있다. 거수로 진행한 표결에서 예장 통합 교단은 명성교회 설립자인 김삼환 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가 2021년 1월1일부터 명성교회 위임목사직을 맡을 수 있게 허용하기로 했다.
 9월 26일 경북 포항시 기쁨의 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제104회 정기총회에서 2년 이상 논란을 빚은 명성교회 부자(父子) 목사의 목회직 세습을 사실상 인정하는 안에 대해 참석자들이 거수로 표결하고 있다. 거수로 진행한 표결에서 예장 통합 교단은 명성교회 설립자인 김삼환 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가 2021년 1월1일부터 명성교회 위임목사직을 맡을 수 있게 허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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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 귓가에는 연신 "의장, 발언권 주세요", "진행이오", "그만 하세요", "예", "아니오" 하는 고함들이 들린다. 여러 번 참관인 자격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의 총회 현장을 보았으나 지난 9월 23일부터 열린 104회 정기총회처럼 직접 총대(총회 대의원)로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요즘처럼 통합교단 목사란 것이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어 조용히 지내고 싶다. 하지만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 여겨 용기를 낸다.

통합교단의 총회 하루 전인 9월 22일, 명성교회는 느닷없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때가 치밀한 각본의 시작점이다. 사과문 발표로 이미 총대들의 마음은 많이 기울어졌다. 사과가 거짓임은 곧 드러났다. 총회 시작 30분 전 세습 반대 기자회견을 할 때였다.

세 번째 발언자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 뒤늦게 명성교회 측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들을 향해 욕을 하고 밀쳐 넘어뜨리며 심지어 옷이 찢어지도록 물리력을 행사했다. 언론사의 취재 카메라도 무서워하지 않는 그들을 보고 나는 직감했다. 명성 측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온정주의에 호소하는 교묘한 심리전 펼친 명성교회

이번에 내가 만난 총대들은 대략 세 범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첫째는 세습 자체를 반대하는 분들이다. 이들은 세습금지법 유무와 상관없이 세습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리어 이번 기회에 법을 더욱 강화해 세습 논란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여겼다. 둘째는 세습 자체보다 법 위반이 문제라 여기는 분들이다. 이들은 법이 바뀌면 세습도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불안한 지대였다. 셋째는 세습을 열렬히 지지하는 분들이다.

이번 총회의 관건은 첫째 둘째 범주에 속하는 이들을 명성교회 측이 얼마나 설득해 끌어들이느냐였다. 명성교회 측은 노련했다. 총회장과 수습위원장의 도움을 받아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 목사를 본회의장에 깜짝 등장시켰다. 직접 올 것이란 소식을 듣긴 했지만 막상 그를 보자 가슴이 철렁했다. 그건 이미 싸움을 끝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으니까.

발언권이 주어지자 그는 희한한 사과를 했다. 그것이 희한한 이유는 이렇다. 첫째, 김삼환 목사는 '명성교회가 총회와 언론으로부터 너무 많이 맞았다'고 했다. 이것은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꼴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다. 물리력으로 동남노회(명성교회가 속한 장로교 지역 교회 연대체)를 지옥처럼 만든 이들이, 또 통합교단 전체를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가? 바로 명성교회 아닌가.

이번 총회장에서 만난 한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교회 홍보를 위해 전도지와 물품을 나눠주러 나갔더니 한 노숙인이 통합 마크를 알아보고는 '에이 통합 측이잖아'하면서 집어 던지더라는 것이다. 누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명성교회와 김삼환 김하나 목사 자신들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피해자란다.

둘째, 김삼환 목사는 '합동교단은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만을 위해 없는 법도 만들어 주었다'며 '통합교단도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교단 나가면 갈 곳이 없더라'면서. 이 발언은 요청을 가장한 협박이었다. '우리가 나가면 너희들이 손해를 보니 명성교회를 위해 법을 바꿔내라'는 것 아닌가. 교단을 얼마나 무시하면 이런 발상을 하겠는가. 또 합동교단이 그렇게 해서 사랑의 교회를 품은 것이 잘한 일이라 보나 보다. 착각이다. 그 결정을 존경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셋째, 그 사과는 아무런 구체적 조치도 없는 것이었다. 제대로 사과하려면 작년 103회 총회의 결정과 재판국 판결에 승복하며 세습을 철회한다고 선언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 핵심 조치들 없이 한 사과는 총대들의 온정주의에 호소하려는 교묘한 심리전일 뿐이었다.

종교를 개혁하는 일은 사회를 살리는 데 기여할 것
 
9월 24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의 104회 총회가 열린 경북 포항 기쁨의교회 주변에 한 개신교 단체가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9월 24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의 104회 총회가 열린 경북 포항 기쁨의교회 주변에 한 개신교 단체가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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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는 것이 상식적임에도 김삼환 목사의 발언 이후 총회장 내 분위기는 명성교회 측에 유리하게 확연히 변했다. 슬프게도, 내 앞에서는 세습을 비판하던 분들까지도 수습안이 발표되자 쇠가 자석에 끌려가듯 손이 번쩍 올라갔다. 여전히 세습금지법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5년 뒤 세습을 허용하자는 수정안도 일년 연구로 보류되어 있다.

그런데도 2021년 1월이 되면 김하나 목사가 합법적 목사가 될 길을 열었다. 합의안도 아닌 이 기이한 수습안을 끝으로 모든 논란이 종결되었다며 기뻐하는 총대들의 반응을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작년 총회에서 그토록 피 흘리며 막은 것을 단번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이 무모한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불법만 아니면 된다는 이들뿐 아니라 세습 자체에 반감 갖던 이들의 마음마저 찬성으로 돌려놓은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동안 여론 추이를 보며 숨죽이던 교회들이 앞다투어 세습을 감행하며 생길 비극에조차 눈 돌리게 한 이 힘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결론은 하나뿐이다. 총회가 김삼환 목사와 명성교회가 걸어놓은 마법에 사로잡혔다. 루터가 그랬다. 종교개혁 당시 중세교회가 신앙의 본질을 버리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다고. 그것처럼 이번 통합 총회도 마찬가지다. 예수의 가르침을 버리고 돈, 권력, 명예, 대형화, 인간숭배라는 또 다른 바벨론식 마법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이대로 교회를 포기해야 하나? 이대로 예수의 복음도 역사 속에서 퇴장해야 하나?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종교가 썩으면 사회도 함께 썩어 고통을 당하니까. 그러니 종교를 개혁하는 일은 사회를 살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운 법
 
명성교회의 목회직 세습을 둘러싼 2년여의 갈등이 교단의 중재로 일단락되는 모습이지만, 목회직 세습을 허용한 것은 교단 헌법을 어긴 것이서 파장이 계속될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명성교회 전경.
 명성교회의 목회직 세습을 둘러싼 2년여의 갈등이 교단의 중재로 일단락되는 모습이지만, 목회직 세습을 허용한 것은 교단 헌법을 어긴 것이서 파장이 계속될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명성교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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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통합교단은 돈과 크기라는 마법에 걸려버린 총회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 교회 밑바닥 여론은 세습 반대가 압도적이다. 그런데도 총대로 파송된 목사와 장로는 세습을 압도적으로 찬성해버린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바닥 여론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명성교회의 마법에 홀리지 않을 새로운 총대들을 세워야 한다.

둘째, 눈에 보이는 돈과 건물과 자본주의적 성장 논리에 홀려버린 마법적 신앙을 개혁해야 한다.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이들을 좌파니 교회 파괴 세력이니 하며 비난하지 말고 겸허히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세상을 섬기겠다는 교회가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어쩌자는 말인가?

통합교단이 정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정신을 따른다면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더라도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예수의 근본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한국 개신교는 역사에서 영구히 퇴출되고 말 것이다.

최근 명성교회 측은 세습을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승리한 자의 아량조차 없이 서슬 퍼런 복수전을 시작하려나 보다. 할 테면 해보라. 두렵지 않다. 역사를 통해 보면 불의가 정의를 영원히 이긴 적이 없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운 법이다. 적어도 내가 믿는 기독교 신앙에서는 최후 심판의 자리에서라도 불의는 정의 앞에 무릎 꿇게 된다. 너무 늦기 전에 명성교회가 돌이키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정태 목사는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입니다.


태그:#명성교회, #통합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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