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과 리사 타케바 감독이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왼쪽)과 리사 타케바 감독이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속도감이 빠르지도, 긴박하지도 않았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 도둑들. 시간의 길>은 카자흐스탄 특유의 목가적 풍광과 일본의 치밀한 구성이 만난 결과물이었다. 

3일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진행된 언론 시사 이후 기자회견에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리사 타케바 감독과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 모리야마 미라이가 참석했다. 영화는 카자흐스탄과 일본의 합작으로 말을 팔러 나간 아버지의 죽음 이후 한 가족이 겪는 일련의 사건을 몽환적으로 풀어냈다.  

모더레이터를 맡은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양국의 합작 사실을 강조하며 해당 작품을 "카자흐스탄 특색이 강한 이색적 영화, 절제된 감정과 영상미가 돋보인다"라고 소개했다. 

2015년 <호두나무>로 부산을 찾아 뉴커런츠상을 받은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감독은 "칸영화제에서 리사 타케바 감독을 처음 만나 구상하고 있는 작품 얘길 했다"며 "리사 감독도 흥미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가 본인 프로듀서에게 전했고, 스카이프로 우리가 서로 소통한 결과물이 지금의 작품으로 나왔다"고 전했다. 또한 "부산영화제에서 뉴커런츠 상을 받고 도움이 됐다. 그걸 계기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제 작품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리사 타케바 감독 역시 "일본 배우는 제가, 카자흐스탄 배우는 예를란 감독님이 디렉션 하는 걸로 정리했었는데 실제 현장에선 혼돈이 있었다"면서 "엄밀하게 역할을 나눴다기 보단 때에 따라 서로 대응하려 했다"고 당시 현장을 묘사했다.

영화제 소개 글은 이 영화에 대해 '카자흐스탄 버전 서부극'이라는 수식어를 쓰고 있지만 이야기 상당 부분은 아이굴(사말 예슬라모바) 아들의 꿈에 의존하는 구성이다. 현실과 꿈을 오가며 아버지의 죽음과 의문의 남자 카이랏(모리야마 미라이)의 정체를 조금씩 관객에게 제시하는 식이다.  

리사 타케바 감독은 "처음 카자흐스탄 측과 시나리오를 개발하면서 우린 모든 게 꿈으로 끝나는 걸 경계한 데 비해 예를란 감독님은 소년의 시점을 중요하게 여겨 지금의 엔딩이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에서 카자흐스탄 측은 수시로 유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둘 다 장단점이 있었다"며 "그런 유연성이 유목민족의 경이로움 아닌가 싶었다. 모리야마 미라이 배우는 신마다 대사가 바뀌었는데 훌륭하게 소화해냈다"고 말했다. 

소련 해체 후 방황하던 사람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말도둑들. 시간의 길> 주역들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과 리사 타케바 감독,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 모리야마 미라이가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말도둑들. 시간의 길> 주역들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과 리사 타케바 감독,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 모리야마 미라이가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감독 말처럼 단순히 양국 합작이 아닌 배우들 구성도 카자흐스탄과 일본이었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카이랏 역의 모리야마 미라이는 전작 <분노>에서 강렬한 악역을 맡아 부산영화제를 찾은 바 있는 배우. 그는 "<분노>를 찍을 때 이상일 감독님과 많이 대화했듯 이번 작품에서도 예를란, 리사 감독님과 많이 얘기하며 제가 맡은 배역이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운을 뗐다. 

"시나리오 단계에선 인물의 설정이나 성격이 나름 있었는데 실제 현장에선 상황이 수시로 바뀌었다. 대본을 보며 카이랏이 일본계 카자흐스탄인인지 어떤 이유로 아이굴에게 돌아가려 하는지 여러 얘길 나눴는데 실제 영화엔 시대 설정이나 인물 배경에 어떤 정보도 담겨 있지 않다. 절제된 표정이나 동작들,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대사들. 미세하지만 그런 걸 연기하며 전 카자흐스탄의 힘과 따뜻한 대지의 기운을 느꼈다. 

카자흐스탄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했기에 처음부터 공부해 나갔다. 대본을 그대로 암기한 상태에서 연기했기에 애드리브 없이 가야 했다. 그렇게 언어를 절제하며 연기한 뒤 작품을 보는데 한 편의 서사시를 본 것 같더라. 영화를 보고 난 뒤 기분이 좋았다." 


리사 타케바 감독이 "카이랏은 카자흐스탄어로 강한 남자라는 뜻인데 소련 붕괴 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트럭 운전을 했고, 어떤 누명을 써서 시베리아 감옥에 갇힌 뒤 붕괴 후 다시 가족을 찾아 돌아온다는 배경이 있었다"며 "하지만 촬영 땐 이런 초반의 설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카이랏 캐릭터를 많이 좋아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데 어떤 사정으로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지금 전 세계 곳곳에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말 도둑들. 시간의 길>은 3일 저녁 진행되는 개막식에서 일반 관객에게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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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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