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이 '2020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스리랑카(10일), 북한(15일)과의 2연전을 앞두고 있다. 최약체인 스리랑카는 승패보다 몇 골 차이가 나느냐가 더 관심사고, 북한전도 낯선 평양 원정 경기라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상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다.

이번 2연전을 앞두고 벤투호를 둘러싼 분위기는 일단 긍정적이다. 부동의 에이스인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하여 황희찬(잘츠부르크), 황의조(보르도), 이강인(발렌시아), 김신욱(상하이) 등 주축 해외파들이 저마다 소속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쾌조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남태희(알 사드)까지 부상을 털고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했다.

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이 대부분 골을 책임져줄 공격수들이라는 것도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표팀 공격진이 이 정도로 풍성했던 적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선수층이 두터워졌다.

11승 6무 1패... 화려한 성적에도 남는 의문점
 
 축구 국가대표팀 벤투 감독이 7일 경기도 파주 NFC에서 훈련을 지시하고 있다. 이날 소집된 대표팀은 10일 스리랑카와 월드컵 2차 예선 2차전 홈경기를 치른 뒤 15일 북한과 3차전 원정 경기를 벌인다. 2019.10.7

축구 국가대표팀 벤투 감독이 7일 경기도 파주 NFC에서 훈련을 지시하고 있다. 이날 소집된 대표팀은 10일 스리랑카와 월드컵 2차 예선 2차전 홈경기를 치른 뒤 15일 북한과 3차전 원정 경기를 벌인다. 2019.10.7 ⓒ 연합뉴스

 
관건은 벤투 감독이 이 자원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전력을 극대화하느냐에 달렸다. 벤투 감독은 지난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밀집 수비에 대한 공략법을 찾지 못해 무너졌던 지난 아시안컵이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스리랑카와 북한도 한국을 상대로 라인을 깊숙이 내리고 한 방을 노리는 선수비 후역습 전술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벤투호가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고전할 가능성도 있다.

사실 벤투 감독은 지난해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이후 11승 6무 1패로 상당히 좋은 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는 아직 의문부호를 떨치지 못했다. 일부 축구 팬들은 보수적인 선수 기용, 효율성이 떨어지는 빌드업, 경직된 축구철학 등을 지적하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조광래-홍명보-울리 슈틸리케 등 실패한 전임 대표팀 감독들이 저지른 실수들을 연상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벤투 감독에 대한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물론 벤투 감독도 조금씩 상황에 맞춰 변화를 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조지아-투르크메니스탄전을 앞두고 그동안 대표팀에서 외면받던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발탁한 것이나, 이강인-백승호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 과감하게 출전 기회를 준 것은 분명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벤투 감독은 여론을 의식한 변화가 아니라며 전부터 이 선수들을 꾸준히 대표팀의 계획 하에 두고 관찰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직 벤투 감독이 전술적 플랜B라든가, 기존 벤투호의 스타일과는 다소 상이한 유형의 선수들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확실한 해법을 찾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부임 1년이 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동안 실험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지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2연전은 당연히 승리라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벤투 감독이 얼마나 '융통성' 있게 팀을 이끌어나갈 것인지 지켜보는 게 중요한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첫 번째는 공격진의 교통 정리다. 그동안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는 황의조였지만 황희찬이 최근 무섭게 성장하며 뜨거운 골 감각을 자랑하고 있다. 올 시즌 벌써 각종 대회에서 7골 10도움(리그 5골)이다. 여기에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리버풀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기록한 1골 1도움도 포함되어 있다.

황희찬은 그동안 벤투호에서 부동의 주전은 아니었다. 대표팀에서는 주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보다 측면에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벤투 감독은 9월 조지아와의 평가전에서 황희찬을 윙백으로 기용하는 포지션 파괴 실험을 단행하기도 했으나 좋은 경기력는 보여주지 못했다. 황희찬의 컨디션을 감안할 때 자기 포지션인 공격수에 기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신욱의 활용법도 중요한 변수다. 김신욱은 지난 투크르메니스탄전에서 많은 시간을 소화하지는 않았으나 특유의 제공권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김신욱이 기존 벤투 감독의 철학과는 거리가 있는 선수이기는 하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어느 팀을 상대로 하든 위협적인 데다 직선적인 공격루트로 밀집수비를 격파하는 데 누구보다 최적화된 카드이기도 하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에 비하여 벤투호에서는 유난히 득점력이 저조한 에이스 손흥민의 골 감각을 끌어올려야하는 것도 벤투 감독의 숙제다.

과감한 실험과 유연성이 필요할 때다
 
 축구 국가대표팀 이강인과 김신욱 등이 7일 경기도 파주 NFC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 소집된 대표팀은 10일 스리랑카와 월드컵 2차 예선 2차전 홈경기를 치른 뒤 15일 북한과 3차전 원정 경기를 벌인다. 2019.10.7

축구 국가대표팀 이강인과 김신욱 등이 7일 경기도 파주 NFC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 소집된 대표팀은 10일 스리랑카와 월드컵 2차 예선 2차전 홈경기를 치른 뒤 15일 북한과 3차전 원정 경기를 벌인다. 2019.10.7 ⓒ 연합뉴스

 
전략적으로 과감한 로테이션도 한 번쯤은 고려해볼만하다. 약체인 스리랑카를 홈에서 먼저 상대하고 닷새 후에 이동거리가 짧은 북한에서 원정 경기를 치르는 일정은 한국에는 유리한 스케줄이다. 상대를 너무 얕봐서도 안되지만 사실 스리랑카는 굳이 유럽파나 베스트 멤버를 동원하지 않아도 충분히 낙승을 기대할 수 있는 상대다.

스리랑카전에서는 장거리 이동으로 지쳐있을 몇몇 유럽파나 주력 선수에게 휴식을 주고 북한전에 최상의 컨디션을 맞추게 하거나, 아예 김신욱-황희찬-남태희 등 그동안 많은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을 과감하게 선발 기용하여 최전방과 중원에서 새로운 조합의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당장의 승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팀의 완성도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다. 4년 전 슈틸리케 감독은 2차 예선까지만 해도 약팀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전승-무실점 행진으로 '갓틸리케'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이는 수준 높은 강팀들을 만나게 되는 최종 예선에서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의 빌드업 축구에 강한 자부심을 보였고 플랜B나 백업 선수들의 활용도를 끌어올리는 데 소홀했다. 팀이 위기에 처한 이후 변화를 주기에는 너무 늦었고 결국 중도 경질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벤투 감독 역시 그간의 성향을 감안할 때 이번 2연전에서도 일단은 베스트멤버 위주로 보수적인 용병술을 고집할 가능성은 높아보인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역대 어느 대표팀 감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풍성한 선수층과 충분한 준비기간이라는 유리한 조건을 안고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는 눈 앞의 결과 못지 않게 경기 내용의 성장과 앞으로의 비전을 보여달라고 요구할만한 시점이다. 그 대답은 벤투 감독이 이번 2연전에서 얼마나 더 유연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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