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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경산 반곡지. ⓒ 경북매일 자료사진
 
인간은 모두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상을 살면서는 그 사실을 잊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늘은 높아지고 날씨는 선선해졌다. 경북 경산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 내 속의 또 다른 자아(自我)'를 찾아보기에 좋은 여행지라고 생각한다.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반곡지, 환성사, 선본사를 찬찬히 걷다보면 이 말이 과장이 아니란 걸 느끼게 된다.
 
두개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원효. ⓒ 홍성식
 
원효를 만나 '일체유심조'를 물어볼까

'충분히 영민했으나 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고자 열망했던 신라의 한 승려가 멀고 먼 당나라로 공부를 하러 떠난다. 그 여정의 어느 하루. 동굴에서 잠들었던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신다. 타는 듯한 갈증을 풀어준 시원하고 달콤한 물. 그러나 해가 뜨고 주위가 밝아졌을 때 그 바가지는 사람의 두개골이었고, 물 또한 새카맣게 썩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거기서 크게 돈오(頓悟·갑작스런 깨달음)한 승려는 유학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에 들어서면서 떠올린 원효의 에피소드다. 우리는 이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를 설명할 때 곧잘 사용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추측 불가능한 방법으로 진리를 깨우친 원효는 이후 당대 백성들의 '정신적 스승'이 됐다.

"마음의 근원을 회복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원효의 가르침은 싸움을 멈추고 하나의 마음으로 화합해 더 높은 경지를 지향하려는 화쟁사상(和諍思想)과 함께 현재까지도 '동굴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등불이 돼주고 있다.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은 경산과 관계를 맺고 있는 3명의 성현(聖賢·학식과 인품이 모두 뛰어난 인물)이 남긴 정신적 유산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원효, 설총, 일연의 초상화. ⓒ 홍성식
   
.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장 입구. ⓒ 홍성식
 
경산시는 원효와 더불어 '신라의 3대 문장가'로 불리며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표기법 '이두(吏頭)'를 만든 설총,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까지를 함께 이곳에 모셨다.

원효, 설총, 일연의 삶과 사상적 궤적을 연대순으로 알기 쉽게 전시해놓은 삼성현 역사문화관은 조용히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기에 적합한 공간으로 보였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VR)을 통해 원효가 겪었던 '동굴에서의 밤'을 드라마틱하게 경험해 볼 수 있는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장'도 이채로웠다.

경산시는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을 "세 분 성현의 정신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체험공간인 동시에 도시 생활에 지친 가족들에게 여유로운 힐링의 시간을 선물하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성인 관람객들이 역사문화관을 돌아볼 때 아이들은 26만㎡의 널찍한 부지 위에 들어선 유아숲체험원, 야외공연장, 분수대, 이야기정원, 레일썰매장에서 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깊이 있는 인생'을 살았던 역사 속 인물을 만나보고 싶은 아버지와 어머니, 아직은 맑은 가을 햇살 아래서 뛰노는 게 더 좋은 아들과 딸 모두에게 어울리는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경산 반곡지. ⓒ 경북매일 자료사진
   
반곡지에서 추억을 남기는 사람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아랑사또전>이 촬영된 반곡지로...

밥과 고기가 사람의 육체를 살찌운다면, '사색의 시간'은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준다.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는 몸의 키가 아닌 '마음의 키'가 큰 사람을 더 매력적이라 느낀다.

경산시 남산면에 동화 속 풍경처럼 자리잡은 '반곡지'는 아름드리 왕버들이 풍성한 머리카락을 풀고 관광객을 기다리는 저수지다. 이곳을 느린 발걸음으로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더없이 낭만적이다. 경산에 가겠다는 말에 지난 봄 반곡지를 다녀온 후배 하나가 이런 말을 들려줬다.

"그늘에 앉아 물에 비친 내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이 세계가 현실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겉모습만이 아닌 자신의 마음 속 풍경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려고 애쓴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어렵지 않게 이해될 터. 나 역시 떨어지는 나뭇잎이 둥근 파문을 일으키는 반곡지 수면을 오래오래 쳐다보았다. 평소엔 가져보기 힘든 귀한 사색의 시간이었다.

반곡지는 청송군 주산지와 더불어 아름다운 시골 풍광을 간직한 최고의 사진 촬영 장소로 이름이 높다.

경산시민들은 "농촌마을의 한적한 모습과 연못, 여기에 왕버들과 짙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봄부터 겨울까지 일년 내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곳"이라고 반곡지를 자랑한다.

그럴 만도 했다.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이기도 하다. 또한 풍경이 빼어나 영화나 TV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이 되기도 한다. <아랑사또전>, <허삼관 매혈기>, <대왕의 꿈> 등이 반곡지에서 촬영된 영화와 드라마들이다.

인근엔 조그만 푸드 트럭도 있으니 향기 좋은 커피 한 잔을 들고 가을날 정취를 호흡하며 흙길을 걸어보길 권한다. 연인과 함께라면 좋겠지만 혼자라도 나쁠 것 없다. 물빛을 바라보며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영남대학교 부근 남매지와 대구대학교 앞 문천지도 반갑다. 경산은 '예쁜 저수지의 도시'라 불러도 좋은 곳이다.
 
선본사 종루. ⓒ 경북매일 자료사진
    
환성사 초입. ⓒ 경북매일 자료사진
 
환성사의 소박한 풍경. 동자상이 귀엽다. ⓒ 홍성식
 
환성사와 선본사에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더위에 힘겨워하는 계절이 가고, 산 속 나무가 붉고 노란 옷을 갈아입는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이런 시기에 조그만 사찰로 향하는 오솔길을 걸어본다는 건 인간인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 중 하나가 분명하다.

경산시 하양읍 팔공산에 자리 잡은 환성사는 신라 흥덕왕 때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한 절이다. 고려 말기에 소실된 것을 1635년 중건했다고 한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매력을 지닌 사찰로 보였다.

일주문을 지나면 확인할 수 있는 '3단 형태의 대지'가 특히 이색적이었다. 대웅전과 수월관, 심검당과 요사체가 ㅁ자 모습을 이루는 환성사는 수미단, 석탑, 석등, 부도 등의 유물이 적지 않아 경내를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환성사를 찾아간 날은 보슬비가 내렸다. 그 비가 선물한 고요함과 평화로운 감정이 도시에서 받은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시원스럽게 날려줬다.

팔공산 관봉 아래에 위치한 선본사 역시 역사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빼놓을 수 없는 경산의 볼거리다.

491년 창건된 이 절에는 '진정한 효(孝)'의 의미를 알려 주는 보물 제431호 '관봉석조여래좌상'이 우뚝 서 있다. 높이가 4m를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 어떤 것의 높이가 효심의 진성성보다 높을 수 있을까?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삼층석탑의 미려함도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가족과 함께 팔공산을 찾아 등산과 사찰을 둘러보는 즐거움을 함께 맛보던 여행자들은 약수 한 잔에 오르막길을 걸어온 힘겨움을 어렵지 않게 떨쳐 내고 있었다. 오랜 시간 환성사와 선본사에서 자리를 지킨 유물 앞에서는 아이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도 볼 수 있었다.

만산홍엽(滿山紅葉),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인 10월. 유서 깊은 경산의 사찰들을 찾아 마음 속 묵은 때를 씻어내고자 하는 이들이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주말의 가을 산행을 고대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환성사, #선본사, #경산, #반곡지,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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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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