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포스터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포스터 ⓒ (주)미디어캐슬


2018년 한 편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 애니메이션 마니아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를 모았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펭귄 하이웨이>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의 상상력을 애니메이션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풍부한 표현력으로 스크린에 옮겨놓으며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스토리보드, 장면 기획, 원화, 시나리오, 애니메이션 감독 등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온 베테랑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힘이 있었다.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를 통해 원작 만화의 캐릭터들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해내는 재능을 보여주었던 그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물론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마인드 게임>, <킥-하트>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풍부한 표현력과 화면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작화로 인정을 받고 있다. 12월 개봉을 앞둔 그의 신작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제21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애니메이션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시나리오 전개에 따라 세 가지의 감정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청량함이다. 서핑을 좋아하는 대학 신입생 히나코는 해변 근처의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그곳에서 서핑을 즐기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는 건 소방관 미나토이다. 히나코를 자신의 히어로라 말하는 미나토는 불법 불꽃놀이로 히나코가 사는 맨션에 불이 난 사건을 계기로 만나게 된다.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 (주)미디어캐슬

 
첫눈에 미나토에게 반한 히나코는 그에게 서핑을 가르쳐 주면서 서서히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간다. 푸른 바다의 물결과 여느 젊은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즐기며 밝은 리듬이 인상적인 GENERATIONS from EXILE TRIBE 의 'Brand New Story'는 보고 듣는 것만으로 청량음료를 마신 듯한 산뜻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이런 달달한 두 사람의 사랑은 미나토의 죽음을 계기로 전혀 다른 감정을 준다.
 
두 번째는 애상이다. 바다에서 시작된 사랑은 미나토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 생명을 잃으면서 마치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히나코는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히나코는 'Brand New Story'를 부를 때마다 물속에서 미나토가 나타나는 걸 보게 된다. 물병과 돌고래 모양 튜브에 미나토를 넣고 다니는 히나코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히나코는 비록 손을 잡지도, 입을 맞출 수도 없지만 미나토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을 느낀다. 이런 히나코의 모습은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애절한 감정을 물속에 존재하는 형상으로 표현하면서 짙은 애상의 감정을 표출한다. 앞서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한 만큼 이별 후에 히나코에게 닥친 고통은 그 감정의 차이 때문에 더욱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애상의 정서를 보여준다.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 (주)미디어캐슬

 
세 번째는 아련함이다. <목소리의 형태> <리즈와 파랑새>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을 통해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여운이 있는 이야기를 보여준 각본가 요시다 레이코는 이번 작품에서도 사랑의 아름다움과 이별의 슬픔을 통해 깊은 여운을 만들어 낸다. 그 여운의 핵심적인 정서는 아련함이다. 히나코는 바다에서 미나토와 사랑을 나눴고 바다 때문에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바다를 이루는 물은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물은 우리의 일상에서 절대 떨어질 수 없다. 그래서 히나코의 주변에는 항상 미나토가 존재한다. 히나코가 미나토를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고 미나토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여긴다. 이 슬픔과 기쁨의 공존은 만날 수는 없지만 항상 곁에 있다는 아련함의 정서를 보여준다. 이런 아련함은 제목과도 연관되어 있다. 작품이 말하는 '파도'는 고난과 역경을 의미한다. 자립심이 부족한 히나코는 미래를 걱정하고 미나토는 그런 히나코를 위해 말한다.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스틸컷 ⓒ (주)미디어캐슬

 
혼자 파도를 탈 수 있을 때까지 곁을 지켜주겠다고 말이다. 바다 위의 파도는 두려울 게 없지만 삶의 파도가 두려웠던 히나코에게 미나토는 등대가 되어주고자 하였고 죽음 후에도 잔상으로 남아 그 곁을 맴도는 그의 모습은 비록 이뤄질 수 없는 가정이지만 항상 네 곁에 있어주겠다는 강한 메시지로 여운을 남긴다.
 
유아사 마사아키는 이런 감성적인 내용에 풍부한 표현력으로 질감을 더한다. 푸른 바다의 색과 생동감이 넘치는 인물들의 모습은 밝고 청량한 느낌을 강하게 보여준다. <셰이프 오브 워터>를 연상시키는 히나코와 물이 채워진 돌고래 튜브 안에 미나토가 춤을 추는 장면이나 물속으로 들어간 히나코가 그 안을 헤엄치며 비록 만질 순 없지만 느낄 수 있는 미나토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감독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풍부한 색감이 돋보이는 배경과 아름답고도 아픈 찬란한 사랑의 여운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반부의 청량함이 미나토의 사고로 감정적으로 어두워지거나 정적일 수 있었음에도 특유의 밝은 색감을 유지하며 애상과 아련함의 정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서정적인 감성과 진한 여운을 전해주는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장점을 풍부한 표현력으로 담아낸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제21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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