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회

인천경기

포토뉴스

올해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난정리 마을이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마을 주민들이 손수 가꾼 10만 송이의 해바라기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사방이 탁 트인 난정리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은 입소문과 SNS을 통해 퍼져나갔다.

마을 주민들은 신이 났다. 소박한 축제를 개최해 마을 자랑을 한껏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태풍 '링링'이 먼저 찾아왔다. 한순간에 모든 게 바뀌었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었다. 다시 희망을 그러모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실의에 빠진 교동면 주민들에게 힘을 주고자 한 시민이 쓰러진 해바라기 밭에 모형 꽃을 달아놓았다. ⓒ 류선주

해를 닮은 아름다운 노란 물결

교동도 난정리 마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해바라기가 펼치는 노란 향연에 푹 빠져들게 된다. 태양을 향한 마음을, 태양을 닮은 마음으로 담아낸 해바라기가 아득하게 핀 풍경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하다. 화려하게 몸을 열어젖힌 꽃 사이를 거닐면 누구나 꿈같은 풍경의 주인공이 된다. 고혹적인 자태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준비를 마쳤다. 

해바라기 소문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사진작가 한두 명이 난정리를 찾은 후 며칠이 지나자, 버스 가득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서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무더웠던 지난여름 해바라기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했던 마을 주민들의 수고로움이 단박에 기쁨으로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이제, 올해 처음 이곳 난정리 마을에서 해바라기 축제를 개최할 일만 남았다. 노란 물감보다 진하게 물든 해바라기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노란 희망을 가득 품었다.
 
태풍이 몰려오기 전, 아름다웠던 '난정리 해바라기 마을정원'. ⓒ 임선후

10만 송이 희망, '난정리 해바라기 마을정원'

"난정리는 공기 맑고, 깨끗한 저수지와 넓은 평야, 북한 땅까지 내다보이는 좋은 지역인데도 특별한 볼거리가 많지 않아 찾아오는 방문객이 없던 곳이었습니다." 

박용구(49) 난정1리 이장은 교동을 찾는 사람들이 대룡시장을 휙 둘러보고 발걸음을 옮기는 게 못내 아쉬웠다. 난정리 마을을 교동의 자랑거리로 만들자는 마음을 모아 마을 주민들이 해바라기를 심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지난 2017년 시범적으로 심어본 해바라기가 잘 자라줬다. 

"우리 마을이 햇살도 좋고 바람도 좋아서 해바라기가 아주 잘 자란대요. 해바라기 씨앗은 모두 제주도 초콜릿 공장에서 가져가기로 계약했거든요. 올해는 10만 송이를 목표로 해바라기를 심었습니다."

교동면 난정리 마을은 45가구가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작은 동네다. 100여 명의 주민 중 청년은 8명밖에 안 되는 고령 마을이지만, 주민들은 마을을 살려보자는 뜻을 모아 농사를 짓지 못하는 난정 저수지 인근 공유수면 3만3000㎡에 해바라기를 심기 시작했다. 

먼저, 마을 주민들은 황무지였던 돌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흙을 메워 해바라기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비닐하우스에서 곱게 길러낸 해바라기 묘종을 저수지 근처로 옮겨 심었다. 유난히 가물었던 지난여름, 장마 기간 동안에도 비가 오지 않아 주민들은 호스를 끌어와 해바라기에 물을 주기도 여러 번이었다. 

"해바라기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는 고라니가 자꾸 해바라기 모종을 파먹더라고요.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자동차 불빛을 켜놓고 밤새 고라니를 쫓아내기도 했어요." 

그렇게 마을 주민들의 정성과 사랑 속에 '난정리 해바라기 마을정원'의 꽃들은 무럭무럭 자라갔다.
 
무더웠던 지난여름, 마을 주민들이 해바라기 밭을 조성하고 있다. ⓒ 박용구
 
태풍에 휩쓸린 해바라기와 축제

추석 연휴를 시작으로 9월 말까지 해바라기 축제를 개최할 계획이었다. 노래자랑, 가수 공연, 각종 체험 행사 등 다채로운 이벤트 행사도 신나게 준비했다. 해바라기 씨앗을 수확하기 전인 11월 초까지 활짝 핀 해바라기를 마음껏 뽐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축제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지난 9월 7일 새벽, 태풍 링링이 교동을 덮쳤다. 집과 창고는 부서지고 농작물을 키우던 시설물은 엿가락처럼 휘었다. 꺾이고 잘리고 태풍 링링이 몰고 온 강풍에 주민들이 함께 키운 10만 송이의 해바라기는 모두 속절없이 쓰러져버렸다. 

마을 주민들은 우비를 입고 난정리 해바라기 마을정원으로 몰려들었다. 밤새 해바라기가 걱정돼 한숨도 못 잔 눈을 부비고 맞닥뜨린 현실은 너무 비참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좌절할 수는 없었다. 꺾여버린 해바라기는 어쩔 수 없지만, 쓰러진 꽃들은 일단 세워보기로 했다. 

활짝 핀 해바라기는 볼 수 없더라도 그동안 애지중지 키워왔던 자식 같은 해바라기를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아직 호우 경보가 한창인 비가 오는 궂은날, 주민들은 농사로 굳어진 손으로 해바라기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막대에 고정시켰다. 

"속상하죠. 눈물도 나고요. 가뭄도, 고라니 공격도 이겨내고 이렇게 예쁘게 자라준 녀석들인데… 한 송이라도 꽃을 피웠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해바라기는 우리 마을 사람들의 희망이거든요." 

김화성(62) 어르신은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해바라기를 일으키느라 여념이 없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볼에 흘러내리는 물기를 연신 닦아낸다. 호우경보가 발효된 날에도 주민들은 태풍으로 쓰러진 해바라기를 일으켰다.
 
소박한 해바라기 축제를 개최해 마을 자랑을 한껏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태풍 '링링'이 먼저 찾아왔다. ⓒ 최준근 자유사진가
  
호우경보가 발효된 효된 날에도 교동면 주민들은 태풍으로 쓰러진 해바라기를 일으켜 세웠다. ⓒ 최준근 자유기고가
  
호우경보가 발효된 효된 날에도 교동면 주민들은 태풍으로 쓰러진 해바라기를 일으켜 세웠다. ⓒ 최준근 자유기고가

다시 기대하고 품어보는 노란 희망

마을 사람들의 의지를 모아 추석 연휴에 간단히 마을 축제를 열었다. 태풍이 오기 전 아름다움을 뽐냈던 해바라기의 사진을 행사장에 세워놓고 '이곳이 태풍 전에는 이렇게 예쁜 곳이었다' 서로 위로를 하기도 했다.

빗속에서 일으켜 세웠던 해바라기들도 모두 고개를 숙이고 아직 많은 꽃들이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지만, 간간히 눈에 띄는 노란 꽃송이 덕분에 내년엔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자며 다시 희망을 품어본다.

"난정리 주민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반신반의로 시작한 해바라기 마을정원은 이제 평화의 섬 교동도의 핫 플레이스가 될 것입니다." 

박용구 이장은 마을 주민들의 희망을 모아 내년 봄에는 이곳에 유채꽃을, 가을에는 해바라기를 심어 교동을 알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해바라기의 꽃말 중 하나는 '기다림'이다. 오직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그런 해바라기를 기다리는 난정리 주민이 묘하게 잘 어울리는 꽃말이다. 1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난정리 마을 주민들의 마음엔 이미 노란 희망이 가득하다. 이제, 내년에 교동 난정리 마을을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가 생긴 셈이다.

인천시 강화군이 제13호 태풍 피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인천시는 기록적인 강풍을 몰고 온 제13호 태풍의 피해 조사를 마무리한 결과, 10개 군·구에서 102억 원의 물적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으며, 그중 71억 원의 피해를 입은 강화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고 밝혔다.

<굿모닝인천> 바로가기
 
쓰러진 해바라기 밭 앞에 만개했을 때의 해바라기 사진을 걸었다. 내년에는 사진이 아닌, 진짜 해바라기가 활짝 필 것이다. ⓒ 류선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에서 발행하는 종합 매거진 <굿모닝인천> 10월호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해바라기, #해바라기마을정원, #교동도, #강화, #인천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굿모닝인천>은 인천시에서 발행하는 종합 매거진으로, 1994년에 창간해 인천시민과 함께해 왔습니다. <굿모닝인천>은 032-440-8306으로 구독 신청하면 매월 무료로 받아볼 수 있으며, 모바일북으로도 서비스합니다.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