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가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스타의 자녀 즉 2세들의 활약이다. 스타였던 부모들의 향수를 기억하고 있는 팬들에게 그 피를 이어받은 주니어의 존재는 등장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노력 못지않게 재능이 큰 영향을 끼치는 스포츠 계에서 '과연 자녀들이 부모만큼 할 수 있을까'는 2세들이 선수생활을 하는 내내 시선을 받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아들 제프리와 마커스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모의 모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2세들도 많다. '차붐' 차범근 아들 차두리같은 경우도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등 나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갔으나 아버지의 명성과 비교하면 많이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 프로 스포츠계로 눈길을 돌려봐도 이같은 사례는 허다하다. 프로농구 고양오리온 포워드 최진수는 남다른 신체조건에 빼어난 운동능력으로 꾸준히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버지와 비교하자면 조금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의 아버지 김유택은 한국 남자농구 빅맨계보의 한획을 긋는 선수다. 한때 아버지를 능가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았으나 시간이 적지 않게 흐른 지금 쉽지 않은 상태다.

그나마 차두리, 최진수는 양호한 편이다. 빠른 발과 장타력 거기에 센스까지 갖췄던 야구스타 이순철의 아들 이성곤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은 부모님의 명성을 이어가기는커녕 프로무대에서 살아남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부모에게 좋은 운동 유전자를 받고 어릴 때부터 운동하기 좋은 환경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내내 자의반 타의반으로 부모와 비교가 되어야하고 난무하는 팬들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싸워야한다. '00의 자녀가 저것밖에 못해'라는 비교 섞인 핀잔을 듣기 일쑤다. 스타의 자녀이기에 얻을 수 있는 혜택 못지않게 불이익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멘탈적으로 강해지지 않으면 제대로 성장하기 힘들다.

최근 프로농구와 프로야구에 남다른 스타 2세들이 맹활약을 펼치며 주목을 받고 있다. '농구 천재' 허재의 차남이자 부산 KT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자리를 굳힌 허훈(24·180㎝)과 '야구 천재' 이종범의 장남으로 키움 히어로즈의 간판스타로 커나가고 있는 이정후(21·외야수)가 그 주인공들이다.

'천재'라는 닉네임을 썼던 아버지들의 높은 위상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벅차지만 어린나이부터 범상치 않은 기질을 뽐내며 성장 중인지라 '도전하는 아들'로서 충분히 주목해볼만하다. 
 
 허재의 차남 허훈은 최근 부산 KT의 간판스타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허재의 차남 허훈은 최근 부산 KT의 간판스타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 부산 KT

 
허훈, 아버지 배짱 쏙 빼닮은 겁 없는 아들
 
'농구 9단', '농구천재', '농구대통령', '한국의 마이클 조던' 등 선수 허재를 지칭하는 단어는 수없이 많다. 그만큼 농구선수 허재(54·188cm)는 농구를 잘했다. 단순히 잘한 수준을 뛰어넘어 한국농구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타 종목 선수들을 제치고 남자 선수 대표로 페어플레이 선서를 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농구를 넘어 국내 스포츠 최고의 스타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허재는 사이즈(당시 기준), 체력, 기술 등에서 남다른 경쟁력을 과시하며 중앙대학교 시절부터 성인무대를 맹폭격했다. 그도 그럴 것이 180cm후반 빅맨이 뛰고 있던 시절, 그만한 사이즈를 가진 가드의 출현은 상대팀 입장에서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화려함과 안정감을 두루 갖춘 드리블 실력을 바탕으로 내 외곽을 휘젓고 다니는 허재의 득점 본능을 국내 수비수가 일대일로 제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포인트가드도 겸할 정도로 넓은 시야와 패싱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던지라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게임을 지배하기 일쑤였다. 거기에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 등 각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들이 함께하며 시너지 효과가 극에 달했다. 중앙대 동문인 이들은 이후 차례로 기아자동차에 입단하며 실업농구 최강의 왕조를 만들었다.

물론 그러한 국가대표 사단 속에서도 에이스는 단연 허재였다. 워낙 라이벌을 찾기 힘든 독보적 테크니션이었던지라 다소 나태한 모습도 노출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한번 승부욕이 발동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1995~1996 농구대잔치 시절 막강 고려대 베스트5(신기성, 양희승, 김병철, 전희철, 현주엽)가 맹위를 떨치던 때 현주엽이 승리 인터뷰에서 "전승으로 우승하고 싶다"는 발언을 내뱉은 바 있다. 이는 다소 무기력한 상태에 있던 노장 허재를 자극했다. 허재는 다음 경기에서 고려대를 무참하게 박살냈다.

당시 기아자동차의 전략은 단순했다. 허재를 이용한 일대일 공격이었다. 이같은 패턴은 전반을 넘어 후반 초까지 계속됐다. 고려대는 전문 수비수 박규현까지 동원해 허재를 막아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허재는 장기인 파워 드라이브인은 물론 스탑 점프슛에 외곽슛까지 펑펑 터트리며 고려대 진영을 전 방위로 폭격했다. 박규현의 밀착마크를 드리블로 따돌린 후 3점슛을 꽂아 넣는 허재의 모습은 그야말로 언터처블이었다. 결국 후반 중반 경을 넘어가면서 고려대는 사실상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한창 기세가 오른 젊은 고려대 멤버들이 전성기가 꺾여가는 노장 허재의 원맨쇼에 농락당한 한판이었다.

프로농구가 생겼을 당시 허재는 저물어가는 해였다. 특유의 센스는 여전했으나 운동능력, 체력 등에서 예전 같지 않았다. '허재의 시대는 끝났다'는 평가가 이어지던 1997~1998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농구천재는 다시 한번 사고를 친다. 당시 허재의 소속팀 기아는 주전 센터 저스틴 피닉스의 태업으로 인해 외국인 선수를 한명만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현대는 한창 물이 오른 '이조추(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트리오'에 조니 맥도웰, 제이 웹의 외인 트윈타워가 건재했다. 파워포워드 클리프 리드가 남아있었지만 노장중심의 기아가 외인센터가 없는 상태로 최강 전력의 현대에 맞서기에는 여러모로 불리해보였다. 워낙 전력차가 컸던지라 일방적인 시리즈가 될 것이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기아는 아쉽게 패하기는 했으나 7차전까지 가는 대혈전을 펼치며 현대를 턱밑까지 위협했다. 그러한 배경에는 노장 허재가 있었다. 허재는 플레이오프 들어 이를 악물었고 외인 포함 실질적 에이스로 팀을 이끌었다. 시리즈를 치르면서 오른손이 골절됐고, 발목과 허벅지에도 부상을 당했다.

5차전에서는 맥도웰의 팔꿈치에 맞아 눈썹 부위가 찢어지는 등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나 허재는 간단한 지혈만 마치고 코트에 나서 팀의 승리를 이끄는 등 전천후로 맹활약을 펼쳤다. 현대의 두 외국인 사이를 뚫고 득점을 성공시키는가하면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한 패싱플레이를 통해 팀 전체를 이끌었다. 그 결과 준 우승팀 선수로는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 MVP에 오르는 위엄을 토하기도 했다.

이렇듯 압도적 실력과 스타성을 두루 겸비했던 허재인지라 허웅·허훈 형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높을 수밖에 없었다. 천재의 유전자를 받은 2세들에 대한 시선은 멈출 줄을 몰랐다. 허웅·허훈 형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들 형제는 아버지의 담대한 성격을 닮은지라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통해 본인들만의 플레이를 잘 만들어갔다.

장남 허웅과 차남 허훈 중 누가 더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갈지는 아직 예상하기 힘들다. 슈팅가드와 포인트가드로 각각 포지션도 다르거니와 둘 다 선수생활이 길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좀 더 주목받고 있는 쪽은 허훈이다. 형 허웅이 부상으로 주춤한 사이 폭발적 득점력을 앞세워 양홍석(22·195㎝)과 함께 부산 kt의 쌍끌이 간판으로 거듭나고 있다.

허훈은 탄탄한 근육질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력과 파워풀한 플레이가 장기인 공격형 1번이다. 신장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워낙에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는지라 공격을 펼쳐나가는데 있어 거침이 없다. 특히 올 시즌에는 약점으로 꼽혔던 외곽슛에 물이 오르며 무시무시한 득점 본능을 뽐내고 있다.

지난 19일 창원 LG전에서 32득점(자신의 한 경기 최다 득점)을 올리더니 하루 만인 20일 원주 DB전에서는 자신의 한 경기 최다 3점슛 9개를 터뜨리며 31점을 몰아쳤다. 특히 3점슛을 연속으로 9개를 성공하며 신들린 슛 감각을 과시했는데 이는 2004년 1월 17일 조성원(전 KCC) 이후 처음 나온 기록이다. 거기에 어시스트도 6개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하며 전 방위 활약을 펼치고 있다.

26일 KGC전에서도 10점 10어시스트 4리바운드 4스틸로 맹활약했다. 허훈은 현재 국내선수 득점 1위(전체 7위, 17.75득점), 어시스트 전체 2위(6.38개)에 올라있다. KT의 간판스타를 넘어 국가대표로서도 큰 활약이 기대되는 최근이다.

물론 아버지 허재가 워낙 대단했던지라 그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부친을 뛰어넘는 명성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물오른 모습이 반짝이 아닌 꾸준함이 된다면 '허재 아들 허훈'이라는 꼬리표를 '허훈 아빠 허재'로 바뀌지 말란 법도 없다. 올 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허훈이다.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기량이 늘고 있다.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기량이 늘고 있다. ⓒ 키움 히어로즈

 
천재의 아들, 어디까지 성장할까?
 
야구팬들과 관계자 사이에서 우스갯소리처럼 나오는 소리가 있다. '투수는 선동렬,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농구의 허재와 더불어 '천재'라는 단어를 공식 별명으로 사용한 유일한 야수 이종범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종범! 많은 팬들은 아직도 일본에 가기 전 이종범의 플레이를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수비의 꽃이라는 유격수 포지션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도 4할-200안타-100도루에 도전했던 유일한 선수였다. 부상과 잦은 허슬플레이에 따른 체력저하 등으로 바로 문턱에서 아쉬움을 삼켜야했지만 당시 그의 엄청난 전 방위 활약은 향후에도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는 평가다.

역대 최고의 도루 능력에 무자비한 안타행진, 큰 경기에 강한 클러치 본능, 거기에 홈런의 아이콘과 같은 거포 이승엽과 홈런왕 경쟁을 펼치는 유격수 톱타자의 존재는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기 힘든 그야말로 '만화캐릭터'같았다.

유격수 뿐 아니라 외야수에 포수까지 전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이종범의 천재성을 더욱 빛나게 했다. 상당수 야구 전문가들 사이에서 '30승 선발 투수'와 맞먹는다는 평가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꾸준함의 대명사 양준혁 조차 예능프로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 나를 2인자로 만든 거물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타이거즈와 이종범 부자의 관계는 썩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구단의 배려 깊지 않은 행보로 인해 이종범이 등을 떠밀려 강제 은퇴한 모양새가 된 것이 그 이유다. 양준혁, 박정태 등 타팀 레전드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타의 말년 은퇴는 아쉬운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프랜차이즈급 스타들은 은퇴 후에도 친정팀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팬들 때문이다.

이종범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한 양준혁같은 경우 삼성구단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게 되었지만 입단을 거부하고 상무에 입대해야만했던 상황이 그랬고 이후에도 곽채진, 황두성과 함께 현금 20억 원까지 더해져 임창용과 트레이드되는 굴욕(?)을 겪었다. 이종범과 마찬가지로 은퇴 과정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

하지만 무수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양준혁은 스스로를 "푸른 피가 흐르는 남자다"고 칭하며 삼성에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양준혁 역시 친정팀 삼성에 서운한 감정이 없을리는 없다. 하지만 선수와 팀과의 관계에는 구단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이 존재한다. 양준혁은 바로 그러한 팬들을 위해서 많은 아픔을 툭툭 털어낸 것이다.

이종범은 조금 달랐다. 은퇴를 선언하기 무섭게 교육상의 이유를 들어 자녀들부터 수도권으로 전학시켰고 이는 결과적으로 이정후의 히어로즈행으로 이어졌다. 이정후 또한 자신의 미니홈피에 타이거즈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고, 한 인터뷰에서 "내 고향은 나고야다"라며 타이거즈는 물론 자신이 성장한 광주마저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에 대해 이정후는 이후 "그때는 어려서 다소 감정적이었다"고 다소 담담하게 밝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타이거즈 팬들은 연고지에서 자란 이정후에게 무한한 응원과 사랑을 보내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비록 팀은 다르지만 팀 레전드의 2세라는 것만으로도 남다른 애정을 느끼는 분위기다.

아버지가 워낙 엄청난 전성기를 보낸지라 이정후가 전설의 그림자를 따라잡을지는 알 수 없다. 일단 타격 재능은 아버지를 닮아 날카롭기 그지없다. 2017년 데뷔하기 무섭게 타율 3할2푼4리, 안타 179개(3위)로 신인왕을 거머쥐더니 매해 3할 이상, 160안타 이상을 기록했다. 3시즌 성적은 무려 타율 3할3푼8리, 535안타에 이른다. 안타생산능력은 아버지와 비교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이종범은 거기에 더해 리그 최고의 도루왕이자 중심 타선에 놓아도 손색없는 장타력을 자랑했다. 포지션도 유격수와 외야수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졸 이종범에 비해 이정후는 고졸이다. 그만큼 발전가능성도 더 높고 무엇보다 누적기록 페이스가 무시무시한지라 큰 부상 없이 롱런할 수만 있다면 각종 리그 신기록에 도전해볼만하다. 좌타자라는 부분도 이점으로 꼽힌다.

이정후는 자신의 첫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이라는 아픔을 겪은 상태다. 소속팀 넥센이 기세등등하게 한국시리즈에 올라왔지만 경험 많은 두산 베어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4-0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이정후는 잘했다. 큰 경기에도 떨지 않고 4경기에서 타율 4할1푼2리(17타수 7안타)로 제몫 이상을 해냈다. 현재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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