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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헌고등학교 학생들은 몇 년 전부터 강당에 모여 '지혜 모으기 토론회'를 여러 번 열어왔다. 사진은 과거 토론회 모습.
 서울 인헌고등학교 학생들은 몇 년 전부터 강당에 모여 "지혜 모으기 토론회"를 여러 번 열어왔다. 사진은 과거 토론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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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256명이 강당에 모였다. 이른바 '반일 좌편향 노리개 교육' 폭로 사건을 학생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교사들은 강당 밖에서 서성였다. 29일 오전 11시,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이하 인헌고) 학생회에서 벌인 '인헌고 지혜 모으기 토론회'가 열린 것이다.

이 토론회를 주관한 학생회는 학교에 두 가지를 요청했다. 학생들의 의견 나눔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선생님들이 개입하지 말 것'과 '교장은 사전 훈시를 하지 말 것'이다.

이 학교 교원들과 학생회에 따르면 이날 토론회는 모둠별로 나눠 90분간 원탁토론 형태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토론 결과를 의견판에 모았다. 포스트잇으로 개인 생각을 적는 한편, 의견이 모인 내용은 글자로도 적었다.

이 학교 학생회 담당 교사는 "우리 학교는 학생과 관련된 주요 논의사항이 있을 때마다 오늘과 같이 학생 전체가 참여하는 '지혜 모으기 토론회'를 벌써 몇 년째 열어왔다"고 설명했다.

마라톤의 진실
 
서울 인헌고 학생들의 토론회 의견판
 서울 인헌고 학생들의 토론회 의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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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마이뉴스>는 인헌고 학생회 17개 모둠이 토론 결과를 정리한 17개 의견판 전체를 살펴봤다. 이 의견판은 학생회가 29일 오후 학교 게시판에 공개한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니 학생들 가운데 대부분은 '반일 좌편향 노리개 교육'을 주장한 학생수호연합(이하 학수연), 보수언론 등에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하지만 학수연 주장에 동의하는 듯한 의견도 일부 있었다.

먼저 '마라톤대회'를 주제로 논의한 모둠이 만든 알림판을 살펴봤다. 이 알림판의 제목은 '마라톤의 진실'이었다. 학수연은 지난 23일 기자회견 등에서 "마라톤대회에서 반일 정치 강요가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알림판엔 노란색 포스트잇이 모두 35개 붙어 있다. 이 가운데 학수연 주장에 동조하는 의견은 한 개도 없었다. 다만, "학교 측에서 신중하지 못했지만 이렇게까지 커질 일은 아니었다"는 식의 중립 의견이 두 개 보였다. 나머지는 "(어깨) 띠 제작은 우리의 자유였다", "마라톤에서 사상 주입이나 교사들의 정치적 강요는 없었다" 등 '강요가 없었다'는 포스트잇이 4개였다.

"진실을 말한다며 '거짓'을 폭로했다"
 
서울 인헌고 학생들의 토론회 의견판
 서울 인헌고 학생들의 토론회 의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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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그만 왜곡하고 진실된 기사를 써서 오해를 풀자."
"앞으로 언론, 기사 등 허위 내용을 막는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
"왜곡되지 않은 과장되지 않은 기사를 제대로 내야 한다."


뜻밖에도 학생들은 언론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또한, 문제를 제기한 학생수호연합을 향해 "진실을 말한다며 '거짓'을 폭로했다"며 일침을 가했다.

다른 안내판에서는 교문 앞에서 학생수호연합 동조 시위를 벌인 우익단체에 대한 비판 글이 많이 보였다. "외부인들은 학교를 다녀보고 입을 열었으면 좋겠다", "학교 사건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외부인들의 개입이 너무 심한 것 같다", "수업방해, 일베, 빨갱이 소리를 들음. 초상권 침해, 도촬(도둑촬영)"이라고 적어놓은 포스트잇이 그것이다.

'우리의 생각'이란 주제로 토론한 모둠 원들은 "집회 때문에 수업을 못해요", "아무 뉴스나 다 믿지 말자", "뉴스는 진실 X", "학수연은 과장된 정보를 사실인 양 말하고 있다", "청소년은 쉽게 세뇌당하는 우매한 집단이 아니다"고 적어 자신의 뜻을 내보였다.

학수연에 동의하는 글도 보였다. "이 사건은 학생과 학교가 모두 잘못했다", "마라톤 전에 만세삼창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한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포스트잇이 그것이다.
   
29일 서울 인헌고 학생들은 토론회 뒤 운동장에서 '친구 업고 달리기' 등 학생의 날 행사를 했다.
 29일 서울 인헌고 학생들은 토론회 뒤 운동장에서 "친구 업고 달리기" 등 학생의 날 행사를 했다.
ⓒ 인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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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포스트잇을 통해 어른들에 대한 요구나 대안도 제시했다. 

"인헌고를 먹잇감으로 삼지 말라."
"물론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것은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점차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날 토론회를 마친 1~2학년 학생들은 오후 1시부터 학생회가 운동장에서 준비한 학생의 날 행사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장애물 달리기, 놋다리밟기, 그리고 '친구 업고 뛰기'를 했다. 친구를 등에 업은 학생들은 좌우로 흔들렸지만, 밝은 얼굴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나경원 "교사들이 아이들 영혼 검게 물들여"
 
서울 인헌고 학생들의 토론회 의견판
 서울 인헌고 학생들의 토론회 의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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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헌고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 의견판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던 29일 비슷한 시각,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최근 서울 인헌고에서 벌어진 사태는 교육 파괴의 위험한 현주소를 보여줍니다...오죽하면 학생들이 직접 나섰어야 했겠습니까?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정치 교사의 만행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검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이 연설 다음 날인 30일 오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서울시교육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른바 '인헌고 사태'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태그:#혁신교육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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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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