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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수만 권 이상 책을 모은 일본 장서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서평 작가인 '오카자키 다케시'가 본인의 경험과 유명 장서가들의 일화를 모아서 정리했습니다. 책이 워낙 많아서 헌책방을 불러야 했다거나 마루가 내려앉아서 집을 새로 지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제 눈을 끕니다. 저자는 책이 많아서 괴롭다고 했지만 저에겐 자랑으로 읽혔습니다. 무척 부러웠죠.

저는 돈 많은 사람보다 책 많은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습니다. (돈이 없어서) 검소한 저에게 사치가 하나 있다면 그건 책을 사는 겁니다. 아내는 철마다 책을 한 무더기 사는 제게 "차라리 옷을 사 입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책이 엄청 많으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대략 세면 수백 권이 넘고 많아도 1천 권은 넘지 않는 정도니까요.

숫자가 많고 적음은 상대적이죠. 누구에게는 1천 권이 많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많지 않은 숫자일 수도 있으니까요. 책을 모으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면서 왜 아직 1천 권도 모으질 못했느냐 하면 그동안 책을 많이 버렸기 때문입니다.

버린 책들을 모두 세어보면 수천 권은 넘을 겁니다. (팸플릿까지 포함하면) 어쩌면 1만 권이 넘을 수도 있겠네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빼고 제 반백 년 삶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세 번 당했는데 모두 책을 버리게 된 사건들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왜 책을 버렸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제 의지와 상관없는 세상의 흐름 때문이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책이 많은 사람이 제일 부럽다
▲ 책으로 가득한 서재  나는 책이 많은 사람이 제일 부럽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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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건은 제가 군대에 가자마자 벌어졌죠.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난 얼마 후 갑자기 저는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기다렸다는 듯이 제 책을 정리했습니다. 편지에는 이사 때문에 책을 조금 정리했다고 쓰여 있었죠.

하지만 첫 휴가 때 넓어진 집만큼이나 황량해진 책장을 보고는 저의 오랜 친구들이 연락도 없이 사라진 아픔을 느꼈습니다. 초등학교 때 용돈을 아껴 한 권 한 권 산 '계림문고'는 물론, 1974년부터 모아온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그리고 '보물섬'까지 사라져 버린 겁니다. 별책부록까지도요.

마음이 더 찢어진 건 사라진 친구들 뒤에 숨겨놓았던 책들과 유인물들, 당시 정권이 불법, 불온이라는 딱지를 붙인 그 책들과 유인물까지도 싹 사라진 겁니다. 그 자료들이 아직 남아 있다면 어쩌면 1980년대를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되었을 텐데 말이죠. 가족들은 막내아들이 그 종이쪼가리들 때문에 이상해진 거라고 믿었나 봅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책들이 있었는데 두 번째 사건을 겪으며 그 아이들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1990년대 중반 즈음 저와 아내는 몇 년간 한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쓰던 가구와 가전제품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있었지만 책들은 주변에 맡길 수밖에 없었죠.

전공과 관련한 책들은 학교 후배에게 보냈고 다른 책들은 처가의 시골 창고에다 두었습니다. 모두 잘 지낼 거라 무사할 거라 믿었는데. 몇 년 후 돌아와 보니 후배는 유학을 가서 연락이 끊겼고 시골 창고에는 물이 들어 버렸습니다. 소식이 끊긴 책은 어디서 잘 지낼 거라 믿으면 되지만 물에 빠졌던 책 상자를 보는 마음은 참담했습니다. 차라리 보지 말 것을.

그래도 저는 책을 끊기는 어려웠습니다. 다시 한 권 한 권 모으기 시작했죠. 그렇게 십여 년 모으니 책장이 모자라서 책상 위는 물론 바닥에 쌓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세 번째 사건이 터졌습니다. 제가 계획했던 일들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집을 줄이게 된 거죠.

집을 줄인다는 건 이삿짐을 줄여야 하는 걸 의미했습니다. 당시 우리 집에서 짐을 줄여야 할 1번 타자는 제 책들이었죠. 누가 그러라고 하진 않았지만 제 잘못 때문에 벌어진 변화였기에 제가 나서서 정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에게는 보물, 어떤이에게는 무겁고 지저분한 쓰레기일 뿐이었다.
▲ 헌책들 누구에게는 보물, 어떤이에게는 무겁고 지저분한 쓰레기일 뿐이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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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서의 괴로움> 저자처럼 헌책방을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책 목록이 있냐 하더라고요. 그런 건 없다고 했더니 폐지 수집상에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믿기지 않았죠. 책을 다룬다는 사람들이 책을 그저 지저분하고 무거운 종이 더미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마침 어느 북카페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문학, 경영 경제, 인문학, 자기계발서 등을 따로 분류해서 한 권 한 권 정성스레 닦아 주었습니다. 그러곤 상자에다 한 권 한 권 마지막 인사를 하며 담았죠. 헤어지기 정말 싫은 아이들은 따로 챙기기도 했고요. 제가 사랑했던 책들은 그렇게 1톤 트럭을 타고 떠나버렸습니다.

그 순간을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찢어지고 눈에 습기가 차오르네요. 이사한 후 허전해진 책장을 보면 제 마음도 허전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다스리는 건 역시 책밖에 없더라고요. 마침 도서관이 가까이에 있어서 열심히 빌려서 보았죠. 그중에서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은 고민 고민하다가 한 권씩 샀습니다. 아내가 눈치를 주었지만 말리지는 않더라고요.

그렇게 또 시작했습니다. 책들은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서재가 따로 없었지만 책장과 거실 테이블은 물론 올려놓을 수 있는 모든 곳에는 책들이 쌓여갔죠. 책들이 집을 점령하는 모습을 본 아내는 책꽂이를 사주며 책이 책장 밖으로 나오지 않게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이사를 했습니다. 집이 좁다거나 불편하다는 이유 외에 서로의 공간을 갖고 싶었죠. 저는 오랜만에 서재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도 그녀를 위한 공간이 생겼고요. 아내는 가구 배치를 수십 번 바꿨지만 저는 책 배치를 수십 번 바꿨습니다.
 
난 책 배치를 장르별로도, 출판사별로도, 작가별로도 바꿔보곤 한다.
▲ 서재 책장 난 책 배치를 장르별로도, 출판사별로도, 작가별로도 바꿔보곤 한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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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별로도 꽂아보고 크기와 색깔별로도 꽂아보았습니다. 책을 책장에 꽂으면 책등만 보입니다. 시리즈로 나온 문학책은 디자인과 색상이, 정확히는 책등끼리 예쁘게 어울렸죠. 번역이 맘에 들지 않아도 특정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사게 되는 이유입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 제 뇌의 사유 영역과 닮은 것 같습니다. 책을 사던 당시의 제 마음을 엿볼 수 있고 세상 흐름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2000년대, 일에 푹 빠졌을 때는 경제경영과 자기계발서를 많이 샀던 것 같습니다. 책을 새로 모으기 시작한 약 10년 전부터는 문학과 인문학책이 많고요. 그리고 사회 현상과 관련한 책들도 많이 보입니다.

사회 현상에 관한 책 중 눈에 띄는 건 세상을 진보와 보수의 시각에서 본 책들입니다. 저는 두 시각을 비교하고 싶었나 봅니다. 어릴 때는 읽지 않았던 과학 분야, 특히 동물생태학 책들도 여럿 보이네요. 동화에 빠진 지금은 아동문학 책들만 따로 정리한 책장도 있습니다.

저도 <장서의 괴로움> 작가처럼 쌓이는 책 때문에 괴로워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자처럼 후회와 고생을 하더라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큰 거죠. 어쩌면 저는 책을 읽는 행위보다는 책이라는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것 같네요. 이 글을 쓰던 방금도 책장을 돌아보며 씩, 웃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책을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 #장서의 괴로움, #장서,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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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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