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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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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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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잼을 졸이다>
 히라마쓰 요코
 이영희 옮김
 바다출판사
 2017.7.21.

 
"좀 와 봐. 빨리 도와!" 요리하는 도중 엄마가 큰소리로 부르는 이유는 알고 있다. 엄마가 초밥용 밥을 밥통에 담아 놓으면 기운차게 부채질하는 게 나의 몫이다. (12쪽)

저는 제가 쓴 글을 읽으면서 곧잘 눈물에 젖습니다. 어떻게 이런 글을 내 두 손으로 쓸 수 있었나 하고 돌아보면서 찡할 때가 있습니다. 잘 쓴 글이라서 눈물에 젖지 않아요. 예전 어느 때에 살아낸 어느 하루를 이렇게 고스란히 담아내었네 싶어서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무렵 아이들하고 어떤 나날을 지었네 하고 새삼스레 떠올라서 파르르 떨립니다.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아이들을 곁에서 돌보거나 지켜보는 하루를 살아내며 글을 쓰고 사전을 짓는 마음이 무엇인가 하고 되새깁니다. 아무래도 스스로 제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어난다고 할 만해요. 스스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눈을 뜬다고 할 만해요. 둘레에 아름다운 이웃님 책도 삶도 숱하게 있습니다만, 바로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가꾸는 살림이 바탕이 되어 무엇이든 할 수 있구나 싶어요.
 
"씻기 쉬운 솥이 좋은지, 씻기 어려워서도 밥맛에 집착하는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밥 짓는 방법이나 솥의 종류도 자연히 결정되지 않을까요?" (106쪽)

저는 '남이 차려 주는 밥'이나 '맛집이라는 곳에서 사다 먹는 밥'보다 손수 지어서 차리는 밥이 가장 맛있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땅에서 얻어 스스로 땅에서 거두고 스스로 부엌에서 지은 밥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구나 싶어요. 이 얼거리처럼, 다시 말해, 제가 손수 지은 밥을 스스로 먹으면서 몸에 기운이 돌듯, 제가 손수 쓴 글을 스스로 읽으면서 마음에 기운이 돌지 싶어요.

살림살이 이야기를 다루는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히라마쓰 요코/이영희 옮김, 바다출판사, 2017)를 읽고서 책상맡에 그대로 둡니다. 옮김말은 퍽 아쉬워서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온통 연필로 이 말씨는 저렇게 고쳐 놓고 했는데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는 동안 이 책을 가만히 읽고 같이 누리면 아름답겠다고 느꼈습니다.

이 책은 대단한 밥짓기를 다루거나 들려주지 않습니다. 글쓴님이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누리는 손맛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대단한 멋밥이나 맛밥 차리기가 아닌, '모든 사람이 저마다 손수 느긋하게 집에서 밥을 차려서 조촐히 누리면 스스로 몸이며 마음에 가장 빛나는 하루가 된다'는 이야기를 펴요. 책을 읽는 내내 빙긋빙긋 웃었습니다. 이렇게 살뜰히 밥살림을 다루는 밥책(요리책)은 드물구나 하고요. 드문 만큼 한결 값지고, 드물기에 참 곱구나 하고요.
 
해마다 봄이면 누리는, 봄철 밥상. 들딸기하고 나물 한 줌
 해마다 봄이면 누리는, 봄철 밥상. 들딸기하고 나물 한 줌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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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요, 최종적으로는 애정이에요. 맛있는 밥을 먹이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맛있게 지어져요." (108쪽)

아이들한테 늘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서 스스로 누리면 가장 아름답단다, 하고요. 너희가 스스로 놀이를 짓고 놀이감을 지어서 누리면 그때에 가장 신난단다, 하고요.

봄에 아이들하고 우리 숲터에서 들딸기를 훑습니다. 이 들딸기는 멋진 밥차림이 되는데, 아이들은 들딸기를 손가락에 살살 꿰며 놀아요. 숲터에서 들딸기를 훑을 적에는 그릇에 담아 모으기보다 입에 넣기 바쁘더니, 집으로 와서 서로 밥상맡에 둘러앉아 접시로 옮기고 '우리 집 나물'을 슬쩍 곁들여서 먹을 적에는 놀이를 끼워서 더 재미나게 누리더군요.

아하, 그렇지요. 밥 한 끼를 빨리 먹어치워야 하지 않습니다. 여느 일터에서는 밥때를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사이에 끝내야 하니 느긋이 이야기하며 누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집에서만큼은 두 시간쯤 넉넉히 이야기꽃을 피우며 한 끼를 누려도 즐거워요.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를 쓴 분은 스스로 지은 밥을 바로 스스로 기쁘게 누린다고 해요. 이 기쁨을, 느긋하면서 넉넉히 누린 하루를, 고스란히 글로 옮겨서 '요리책 아닌 요리책', 그러니까 '고스란히 밥책이자 삶책'을 여민 셈입니다.
 
들딸기 훑는 동안 벌써 배를 채운 아이들은 밥상에서 손가락놀이를 하며 웃는다.
 들딸기 훑는 동안 벌써 배를 채운 아이들은 밥상에서 손가락놀이를 하며 웃는다.
ⓒ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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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또는 '대충', 이것이 제일 어렵다. 생각해 보라. '적당히'란, 즉 '적절한 조절'이기 때문에 좋은 것, 나쁜 것, 맛있는 음식, 맛없는 음식 모두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딱 좋은 곳에 착지할 수가 없다. 주위에서 보면 흐름에 맡기는 눈대중으로 보이기 쉽지만, 손가락과 눈과 코와, 자신의 혀와, 부모로부터 배운 맛과 어린 시절부터 먹어 온 맛과, 모든 감각과 경험과 지혜가 총동원돼야 비로소 냄비에 넣을 고춧가루 한 숟가락의 질과 양이 정해진다. 즉, 개개인의 솜씨가 무서울 정도로 드러난다. 레시피의 숫자를 믿고 만든 요리보다 훨씬 엄격하게. (116쪽)

잘난 밥이나 멋진 밥을 짓지 않는다고 해요. 스스로 기쁘게 누리면서 마음이 환하게 피어오르도록 북돋우는 밥을 느긋하게 짓는다고 합니다. 남한테 자랑하거나 선보이거나 가르칠 새롭거나 놀라운 밥이 아니라, 날마다 수수하게 즐기면서 몸을 가꾸고 마음을 다스릴 밥 한 그릇을 지을 뿐이라고 합니다.

글쓰기도 이와 같지 싶어요. 말하기도 이와 같을 테고요. 모든 살림이, 모든 배움이, 모든 일하고 놀이가 이와 같지 싶습니다.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즐거울 일을 하면 되어요. 우리는 뜻깊은 일을 찾아나설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기쁘게 웃고 춤추면서 어깨동무할 일을 하나하나 하면 넉넉하지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s://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마음을 읽는 책, #숲책, #밥책,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 #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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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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