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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7일 고아로 자랐고 법적 가족이 없는 고 이아무개님의 무연고 장례식이 있었다.
 지난 10월 27일 고아로 자랐고 법적 가족이 없는 고 이아무개님의 무연고 장례식이 있었다.
ⓒ 류허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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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생 이영호(가명)님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2017년 서울역 쪽방주민공동체 동자동 사랑방이 운영하는 주민밥상공동체 '식도락'에서였다. 그는 마른 몸에 모자를 눌러 쓰고 친절한 웃음을 띤 얼굴로 식도락에 들어왔다. 동자동 주민활동가의 권유로 식도락을 찾아온 것이다.

자꾸 넘어지고, 넘어지면 혼자 일어나지 못하는 병(전정 기능 장애)이 있어서 집 밖에 잘 안 나온다고 했던 그가 건강이 호전되어 자활 일자리를 얻었다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병이 생긴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문 배달하던 시절에 누군가에게 귀를 심하게 맞았다고 했다.

그는 늘 신문을 읽는다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조용히 말했다. 그의 말씨는 늘 겸손했으며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힘든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지나 자활 급여를 압류 당해 사랑방에 찾아온 그는 실망이 컸다. 동자동 주민 중 적지 않은 분들이 기초생활 수급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도 통장이 압류돼 고초를 겪곤 하는데 영호님도 그러한 경우였다.

우유배달을 하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내지 못했던 병원비에 대해 압류가 들어온 것이다. 압류 해지를 위해서는 통장 잔액이 150만 원 이하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는데 은행에서 서류를 발급받는 일도 순조롭지 않았다.

영호님은 어렵게 얻은 직장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로 여러 차례 휴가를 내야 했다. 그렇게 한 고비가 넘었을까. 새로 이사 온 옆방에서 매일 밤새도록 소음이 심해 출근에도 지장을 받게 되고 실랑이가 이어졌다. 이사가려고 방도 찾아 놓았는데 주인이 보증금을 빼주지 않아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어 했다.

집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그에게 어느 날 전세 임대주택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내가 동자동을 떠났을 때였다. 그에게 다시 희망이 찾아 왔고 일자리를 구했을 때처럼 매우 기뻐했다.

10월 11일 안타까운 이별
 
고 이아무개님의 마지막 길을 이웃이었던 동자동 주민들이 배웅했다.
 고 이아무개님의 마지막 길을 이웃이었던 동자동 주민들이 배웅했다.
ⓒ 류허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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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중순, 그의 부고를 들었다. 동자동 주민들이 그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는 세차장 자활 일자리를 얻어 아주 기뻐했다고 했다. 그런데 새로 입사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괴롭혀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힘들어 했다고 한다.

2018년 1월 18일 자 <서울&> 기사에서 그는 "저도 도움을 받아 이만큼 왔으니 저같이 힘든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요, 그게 새로운 소원이에요"라고 했다. 그는 배달 사고로 인한 산재보호도 받지 못했고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자활을 반복하다 자신과 같이 힘든 사람을 돕고 싶다는 소원을 간직한 채 사망했다.

이씨를 극진히 돕던 한 사회복지사는 그가 입원하게 되자 키우던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위해 그의 집에 찾곤 했는데 고양이는 주인이 오지 않자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고양이 돌볼 사람을 찾아보자는 제안에 영호씨는 "내가 8년 키운 고양이니 퇴원하면 내가 돌볼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동자동 주민들이 이씨를 다시 찾았을 때 그는 의식불명 상태였고, 입원치료 중에 연명 치료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혀 2019년 10월 11일 애틋했던 고양이와도 안타까운 이별을 했다. 사인은 흡인성 폐렴이었다.

고 이영호님은 고아로 무연고 장례를 치렀다. 사망 시 법적 가족 사항이 없는 사람은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무연고 장례를 치르게 된다. 무연고 사망자는 주변에 잘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도 사망 소식이 전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무연고 사망자,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 등 어려운 사람들의 존엄한 장례를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나눔과 나눔'은 고인과 단절되었던 가족들이나 이웃들에게 연락이 취해지도록 애를 쓰지만 손이 닿지 않는 한계가 많다.

무연고 사망자 중 동자동 주민이 있을 경우에는 주민 공동체인 동자동 사랑방과 동자동 주민협동회에 연락을 취한다. 그렇게 연락이 닿으면 동자동 주민들은 장례에 참석하여 이웃이 가는 길에 애도를 표한다.

상위 부유층, 기득권 세력을 지키기 위한 지독한 아귀다툼 바깥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의 삶과 역사를 써간다. 동자동 사랑방과 동자동 주민협동회는 매년 추석 오전에 동자동에서 살다 돌아가신 주민들을 위해 합동 추모를 한다.

매년 동지에는 동자동 주민들과 반빈곤연대단체들과 공동주관으로 홈리스추모제를 한다. '나눔과 나눔'은 일주일에 수차례의 무연고 장례를 치른다. 이들의 장례에는 영정사진 없이 위패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익명의 사망자가 있는 장례식도 있다.

무연고는 쉽게 처리된다

그러나 본래 그리고 실제 무연고인 사람이 있을까. '사회적 가난'으로 인해 가족이나 가까웠던 이웃과 단절되었거나, 법적으로 가족이 등록되어 있는 사람이 없으면 무연고자가 된다.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되면 가까이 지내던 이웃에게는 연락이 가지 않는다. 무연고는 그렇게 쉽게 처리된다. 법과 행정이 그렇다.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고 자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법적으로 가족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가난을 성찰하지 않은 지는 오래이고 고독·고립사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만약 고아들이 성장하여 결혼이나 출산을 선택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무연고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 현 제도는 이들에게 자신의 장례에 대한 선택 권한을 빼앗는다.

부모 부재나 가정불화 속에 자란 아이들이 오랜 세월 단절되었던 부모의 부고를 듣고 시신을 위임하게 되는 상황에 닥쳤을 때 겪게 되는 세월과 마음의 간극은 어떻게, 얼마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메워갈 수 있을까. 법과 행정은 자신이 모르는 사람의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도록 허가를 받았는가.

가난과 고립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들에게 차라리 홀로 아무도 모르게 죽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린다면 우리 사회의 가치는 이미 수명을 다해 가고 있는 것 아닐까.

무연고 장례에 함께 참석했던 한 자원활동가는 "장례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라며 고통을 토했다. 그에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아픔이 남아 있는 듯했다. 

삼가 그의 명복을 빈다
 
고 이아무개님은 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되어 용미리 추모의 집에 10년간 봉안된다.
 고 이아무개님은 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되어 용미리 추모의 집에 10년간 봉안된다.
ⓒ 류허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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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논하는 것은 모순된 삶을 통찰하기 위해서이다. 가난을 논하는 것은 가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직시하고 하루빨리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삶과 죽음과 가난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늦어질수록 개인들의 고통은 증폭된다. 

봉건 신분 사회 수준의 빈부격차, 가난을 잊어버린 의식, 차별과 편견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없어도 될 생애적 고통과 멍에를 부과하는 위계와 폭력 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가 죽음으로 가는 똑같은 존재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좋은 이웃이었고 좋은 이웃들을 가졌던 무연고 사망자 고 이영호님이 남기고 간 삶의 자취와 소원을 나누어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서울&> 기사를 통해 그에게 다방 디제이 시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 번 찾았던 그의 방에 오래된 음반도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고 이영호님은 음악을 좋아하는 소년이었고, 신문을 즐겨 읽는 건강한 청년이었고, 착실하게 모은 돈을 애인에게 뜯긴 순진한 사람이었고,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갖는 사람이었고, 희망이 생기면 낙천적이 되는 사람이었고, 부당하게 당한 피해들을 회복하려고 애쓴 사람이었다.

그의 소원이 가리키는 길은 명확하다. 가난으로 인한 삶들을 기억하는 일이고 가난한 사람들과 우리들이 겪는 권리 부재를 바로잡는 일이고, 죽어 가는 사회 공동체의 가치를 되살려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이다.

삼가 고 이아무개님의 명복을 빈다.

태그:#빈곤, #동자동, #쪽방촌, #무연고사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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