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시선- 공채의 종말

다큐 시선- 공채의 종말 ⓒ EBS



취업 준비생 70만 시대다. 그런데 웬걸, 정작 그들이 두드리는 문이 사라져간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하반기 정기 공채가 11.2%나 줄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기업 공채가 폐지되거나 축소되고 있는 중이다. 

지난 2월 현대자동차는 대규모 정기 공채를 폐지한다고 선언하며 최신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을 신속하게 확보하여 적재적소에 배치, 시장 변화에 빨리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처럼 대규모로 인력을 채용해선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갈 수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대졸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채 문을 점차 좁히다보니, 그나마 남아 있는 공채들의 경쟁률은 더욱 오를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PD 2명, 방송 기술직 2명, 기자 6명, 경력직 6명을 뽑는 EBS공채 시험에 2000명이 몰렸다. 평균 150대 1, 하지만 들여다 보면 신입직 경쟁률은 더 높고, 그중에서도 PD 부문은 무려 1000명이 몰려 500대 1이다.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 나와 같은 꿈을 가진 또래 500명을 제쳐야 하는 현실. 2019년 상반기 구직자 1인당 평균 입사 지원 횟수 13회, 서류 합격 그 중 2회, 최종까지는 합격률 26%, '공채가 복권 당첨보다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등장할 정도다. 

지난 10월 24일 방송된 EBS <다큐시선-공채의 종말>에 출연한 <당선, 합격, 계급>의 저자 장강명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문학 공모전이 한국 사회 채용 제도의 또 다른 버전이라 정의내렸다. 그는 "공채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채용 제도다. 동일한 시험을 통해 적합한 사람을 뽑을 수 있다는 전제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채의 시초는 1957년 삼성 물산이다. 당시 27명 모집에 1200명이 지원하며 공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50년대 이후 빠른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 기업 환경에 많은 사원이 필요했고 공채는 우리 사회의 '계급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다큐 시선- 공채의 종말

다큐 시선- 공채의 종말 ⓒ EBS

 
장강명 작가는 이런 공채를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벌판에 있는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이라는 몇 채의 성으로 비유한다. 그나마 그 성에 들어가야 좀 살기가 났기에 1년에 한 번 성문을 열 때 너도 나도 그 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가겠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기에 구직자 입장에서 '공채의 종말'은 '사다리 걷어차기'라 여겨질 것이라는 했다. 

공채의 종말, 그 시작은 IMF다. IMF 이후 노사정 3자가 구제 금융 한파와 급박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고용 조정(정리 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의 법제화를 합의함으로써, '대기업 정규직 중심 소수의 좋은 일자리'와 '질이 좋지 않은 비정규직 중심의 다수 일자리'라는 '이중 구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제일 먼저 보장된 일자리에 매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방송에 나온 공무원 시험 준비 2년차에 들어선 이인선씨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른바 노량진 공시생인 그녀는 오전 6시에 눈을 떠서 밤 12시까지 공부, 공부, 또 공부로 이어진 일상을 이어간다. 끝이 없다는 절망감, 상실감에 헤매지만, 그 길의 끝에서 청춘을 다바친 보상이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 또한 가지고 있다. 

지방이라고 다를까. 고향인 충남 예산에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세연씨는 매일 매일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쓰고 넣는다. 1년 6개월 동안 넣은 이력서만 100개가 넘는다. 면접도 15번이나 봤다. 최근의 그녀는 혹시나 도움이 될까 다시 기사 자격증 시험을 본다. 공채에 합격하기 위해 또 다른 시험을 봐야 하는 슬픈 현실이다. 

인선씨나 세연씨는 공채의 문이 좁아지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도대체 어디서 '직무 전문성'을 키워야 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변화하는 세상
 
 다큐 시선- 공채의 종말

다큐 시선- 공채의 종말 ⓒ EBS


현대자동차 공채 폐지 소식이 전해진 지난 2월 채용포털 서비스 사이트 인크루트가 청년 1144명을 대상으로 물은 결과, 공채 폐지에 찬성한 50%(매우 찬성 13%, 찬성에 가까움 37%) 중 36%는 '공채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구직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을, 17%는 '공채보다 채용 전형이 짧아 빠른 취업이 가능해질 것', 28%는 '연중 지원 기회가 늘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반면 공채 폐지에 반대한 50% 중 41%는 '채용규모가 줄어들 것'을, 29%는 '일정 파악과 대비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22%는 '수시채용이 된다면 수요가 있는 직무만 뽑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신여대 겸임교수이자 취업전문가 이시한 교수는 일찍이 이런 상황을 예측해 공채가 아니더라도 취업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에 대해 강의를 해왔다. 이 교수는 "대다수의 취준생들이 대기업에 몰리는 이유 중 하나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가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중소기업은 어떤 곳인지조차 잘 알려지지 않는 곳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결국 수시 채용으로 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더 높은 차원의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기업 정보와 구직자 정보를 공유하는 비즈니스 네트워킹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가 몇 년 후에 없어질 수도 있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자신의 회사를 넘어 인맥 네트워킹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업무 능력 중심의 사회로의 변화
 
 다큐 시선- 공채의 종말

다큐 시선- 공채의 종말 ⓒ EBS


그렇다면 방법은 없을까? 이제는 가격 비교 플랫폼 커뮤니티 대리가 된 8년차 직장인 송기훈씨의 방식은 어떨까? 그도 한때는 남들 다하는 언론사 공채를 준비했었다. 서류 전형조차도 쉽지 않자 스스로 현장을 찾아다니며 찍은 보도 사진 포트폴리오로 길을 뚫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매번 좌절, 사진 기자인데도 일반 신문 기자와 똑같은 방식을 통해 뽑는 언론 고시에 대한 반발심도 생겼다. 

그래서 한 회사의 사보를 시작으로 이직에 이직을 거듭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았다. 콘텐츠 회사를 거쳐 지금의 회사에서 대리까지 단 그는 자신의 경험을 취준생들과 나눈다. 그가 정의한 '공채'는 제일 먼저 눈에 띈 통로이다. 하지만 그저 먼저 눈에 띄었을 뿐 가까이 가보니 들어가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신 옆에 있는 작은 통로를 통해 앞으로 전진하는 중이다. 그는 충고한다. "'공채'를 준비한 시간을 '허비'했다 하지 말고 진정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을까 '도모'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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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시선- 공채의 종말 ⓒ EBS


아예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은 이혜인씨도 있다. 그는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팀장이지만 겨우 입사 4개월차이다. 하지만 '직무 능력'에 맞춰 이곳에 들어온 그녀이기에 업무 순환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학을 나와 자신이 원하던 일을 하다보니 콘텐츠 기획 마케팅의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혜인씨에게 공채는 다른 세상이야기이다. 그녀 역시 회사보다 '직무'가 먼저다. 

다큐는 여전히 고단한 '공채'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수시 채용을 모색하는 변화하는 산업 환경을 짚는다. 그렇게 이미 와있는 새로운 세상에서 '공채'에 발이 묶이는 대신 다른 길을 모색해보라고 조심스레 조언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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