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 2019 서울 아시아선수권 대회 (2019.8.18)

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 2019 서울 아시아선수권 대회 (2019.8.18) ⓒ 박진철

 
말 그대로 국가적 총력전이다. 목표는 오직 하나 '한국 격파'다.

엄한주 아시아배구연맹(AVC) 경기위원회 위원장이 태국 여자배구의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태국 방콕에서 실시된 여자배구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대륙별 예선전)'의 조 추첨식을 진행했다.

이번 여자배구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은 2020년 1월 7일부터 12일까지 태국 나콘랏차시마에 있는 꼬랏 찻차이 홀에서 열린다. 꼬랏 찻차이 홀은 5000석 규모의 경기장이다.

한국, 태국 등 아시아 국가가 여자배구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이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을 해야 한다. 오로지 우승 팀에만 본선 티켓이 주어진다. 이미 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한 중국과 일본(개최국 자격)은 출전하지 않는다. 때문에 한국과 태국이 마지막 남은 본선 티켓 한 장을 놓고 '끝장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엄 위원장은 지난 1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태국은 현재 배구협회뿐만 아니라 정부 체육부까지 나서 여자배구의 도쿄 올림픽 티켓 획득에 국가적으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며 "태국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죽기 살기'로 올림픽 예선전 준비에 올인하고 한국전에 임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태국 배구계 관계자들도 태국과 한국이 똑같이 100% 전력으로 붙으면 자신들이 진다는 걸 알고 있다"며 "그러나 태국이 국제대회에서 한국을 이겨본 적도 많고, 한국의 경기력도 기복이 있기 때문에 준비를 철저히 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리그 연기, 친선 대회, 일본 전지훈련 '대표팀 올인'

실제로 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은 현재 일본 오카야마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태국 대표팀의 정예 멤버 18명이 전원 참가했다. 지난 2일 일본에 도착했고, 오는 16일까지 실시한다.

태국배구협회도 여자배구 대표팀을 위해 과감한 조치를 단행했다. 올 시즌 태국 리그를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이후로 대폭 연기해 버렸다. 그에 따라 올 시즌 태국 리그는 2020년 1월 18일 개막해서 3월 29일까지 열린다. 태국 리그가 다음해 1월 중순에 개막하는 건 초유의 일이다. 그동안 통상적으로 매년 10월 또는 11월 초에 개막을 해왔다. 

이번 연기 조치는 대표팀 선수들이 리그 경기에서 체력 저하와 부상을 당할 우려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오로지 대표팀 훈련과 한국 선수 분석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2019 여자배구 월드컵 대회에서 선전하는 동안에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4개국 초청 친선 대회'를 만들어 경기를 치렀다.

4개국 친선 대회는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이 지난 9월 20일부터 10월 6일까지 태국 나콘랏차시마에서 1라운드를, 필리핀에서 2라운드를 각각 풀리그로 진행했다. 그 결과 태국이 '6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에 강한' 삠삐차야, 부상에서 대표팀 복귀
 
 '태국 대표팀 복귀' 삠삐차야(16번)... 2018 세계선수권 대회 경기 모습 (2018.10.2)

'태국 대표팀 복귀' 삠삐차야(16번)... 2018 세계선수권 대회 경기 모습 (2018.10.2) ⓒ 국제배구연맹

 
4개국 친선 대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태국 대표팀의 라이트 주 공격수였던 삠삐차야 꼬끄람(21세·178cm)이 부상에서 복귀했다는 점이다.

삠삐차야의 복귀는 태국 대표팀의 전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특히 한국전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삠삐차야는 2018 아시안게임과 2018 세계선수권에서 태국 대표팀의 주 공격수로 맹활약하며, 두 대회에서 모두 한국을 꺾는 데 선봉장 역할을 했다. 아시안게임에서 13득점으로 공격 삼각편대의 한 축을 담당했고, 세계선수권에서는 양 팀 통틀어 최다 득점(25득점)을 기록했다.

삠삐차야는 지난해 10월 세계선수권 대회까지 태국 대표팀의 에이스로 가장 높은 득점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2일 세계선수권 트리니다드토바고전에서 3세트에 무릎 부상을 당해 코트 밖으로 실려 나갔다. 이후 올해 VNL,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 서울 아시아선수권 등 주요 국제대회에 모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앞두고 대표팀에 복귀했다. 한국 대표팀 입장에서는 정밀한 분석과 대비가 반드시 필요한 선수다.

삠삐차야는 플레이가 빠르고 기습적인 공격에 능하다. 한국 대표팀은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삠삐차야 같은 빠른 스타일의 공격수에게 뚫리기 시작하면, 크게 당황하며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삠삐차야 외에도 아차라뽄 등 부상으로 고전했던 선수들도 모두 이번 일본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부상 선수들이 어느 정도까지 경기력이 올라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확보해 놓고, 부상 회복과 경기력 향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점은 분명하다.

다나이 감독 "1월에 최강 상태 만들겠다"

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4개국 친선 대회가 끝난 이후 본격적으로 도쿄 올림픽 준비 체제로 돌입했다.

태국 대표팀은 지난달 21일 태국배구협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도쿄 올림픽을 향한 성대한 출정식을 가졌다. 이어 지난달 28일 실시된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조 추첨식'에도 참석했다. 한국을 꺾고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2일부터 일본 오카야마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 여자배구 리그의 오카야마 팀과 연습경기 등을 통해 빠르고 조직적인 플레이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태국 대표팀의 윌라반(35세·174cm)도 태국 언론들과 인터뷰에서 "일본 전지훈련에서는 특히 수비적 경기에 관한 전술을 익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태국 대표팀은 일본 전지훈련에서 다져진 경기력을 바탕으로 12월 3일부터 9일까지 필리핀에서 열리는 '2019 동남아시안 게임(SEA GAMES)'에 출전한다. 이 대회에서 국제대회 실전 경기 감각을 끌어올릴 예정이다. 

태국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최상의 경기력과 컨디션으로 한국을 상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나이(49세) 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지난달 31일 태국 스포츠 전문 매체인 'SMM SPORT'와 인터뷰에서 "내년 1월에 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가장 강한 상태가 되도록 기술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대표팀 훈련 '태국 3개월 vs 한국 10일'... 사용 공인구도 달라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은 현재 2019-2020시즌 V리그에 출전하며, 빡빡한 경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을 준비하는 대표팀 소집훈련은 12월 22일로 예정돼 있다. 그러나 주말 휴식과 태국으로 이동일 등을 감안하면, 실제 대표팀 훈련 기간은 10일에 불과하다. 현재 이탈리아 리그 팀을 맡고 있는 라바리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도 그때 합류한다.

태국 대표팀 선수들이 3개월 동안 오로지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위한 훈련과 한국 선수 분석에만 매진하고 있는 것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태국 대표팀 선수들은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 사용할 공인구를 가지고 훈련을 하고 있는 반면,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현재 V리그에서 다른 공으로 경기를 하고 있다.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은 한국과 태국 모두 큰 부담감과 압박감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회가 열리는 태국은 여자배구 인기가 '국민 스포츠'급이다. 자국 홈팬들의 엄청난 응원을 등에 업고 경기를 한다. 

태국은 현재 세계랭킹이 14위다. 한국(세계랭킹 9위)이 만만하게 볼 상대도 결코 아니다. 실제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2018 아시안게임부터 2019 VNL까지 태국에게 내리 4연패를 당한 바 있다. 지난 8윌 서울 아시아선수권에서 그나마 연패를 탈출했다. 한국이 객관적인 전력만 믿고 안일하게 준비했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간절함 vs. 안일함... 이래도 괜찮을까

태국의 국가적 총력전을 보면서 국내 배구계 일각에서 "한국 대표팀의 준비 상황이 너무 안일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 나온다.

국제대회 흐름에 밝은 한 배구계 관계자는 4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스포츠는 모두가 다 이긴다고 말할 때가 위험하다. 결과가 반대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라며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는 기간이 10일밖에 안된다는 건 분명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공인구도 다르고, 심지어 원정 경기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 다른 배구 관계자는 "올림픽은 다른 국제대회와 차원이 다르다. 프로 리그 흥행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여자배구가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다면 가장 큰 수혜를 보는 집단도 프로 리그를 관장하는 한국배구연맹(KOVO)과 프로구단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표팀의 올림픽 준비를 배구협회만 하는 일이라고 착각해선 안된다. 배구계 전체가 합심하고 협조를 해야 되는 사안"이라며 "태국 대표팀의 준비 상황과 비교하면, 현재 배구협회, KOVO, 프로구단 등 한국 배구계는 '태국은 이기겠지'라고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 말고는 여자배구 대표팀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이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안타까워했다.

스포츠는 적극적인 투자와 철저한 준비, 그리고 땀을 흘린 만큼 성과도 나오기 마련이다. 안일함이 간절함에 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스포츠다.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모습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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