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일본 지바 조조 마린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 2차전 대만과 한국의 경기. 8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한국 박병호가 삼진아웃 당한 뒤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12일 일본 지바 조조 마린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 2차전 대만과 한국의 경기. 8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한국 박병호가 삼진아웃 당한 뒤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야구의 2019 프리미어12 2연패와 2020 도쿄올림픽 진출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지난 12일 일본 지바 조조마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리미어 12 슈퍼라운드 2차전 대만과의 경기에서 0-7로 완패했다.

예선 라운드부터 4전 전승으로 순항하던 대표팀의 첫 패배였다. 2008 베이징올림픽부터 이어오던 김경문 감독의 국제대회 연승행진도 13승에서 멈추게 됐다. 그것도 상대가 하필 도쿄올림픽 본선티켓을 놓고 경쟁하는 대만이라는 게 더 뼈아팠다. 이번 프리미어12에는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도쿄올림픽 출전권이 1장 걸려 있는데, 한국은 대만과 호주보다 무조건 높은 성적을 거둬야만 티켓 획득이 가능하다.

대만전 패배 이후 많은 미디어와 야구팬들이 경기 결과를 '충격' '참사'라고 표현하는데는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첫째는 대만 야구를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우월감'이다. KBO리그의 수준이나 위상, 시장규모는 모두 대만에 비하여 크게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표팀 레벨에서 한국야구가 대만을 쉽게 이긴 적은 별로 없다. 아시아 야구에서 '한국의 라이벌' 하면 흔히 일본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국제전에서 일본보다도 더 한국에 대하여 강렬한 라이벌 의식과 승부욕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팀이 대만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미 선동열 감독이 이끌었던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프로 1군 정예멤버를 내세우고도 대만 실업야구 투수들에게 망신을 당해 1-2로 패한 데 이어, 이번 프리미어 12까지 최근 국제대회에서 대만에 2연패를 당했다. 대만에 2연패 한 건 2006년 대륙간컵 예선(7-9)과 도하 아시안게임(2-4)에 이래 12년 만이었다. 심지어 한국은 대만을 이겼던 2008 베이징올림픽이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에서도 동점과 역전을 오가며 경기끝까지 접전을 펼쳤을 만큼 대만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특히 이번 패배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은 경기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대만은 이날 투타에서 모두 한국을 압도했다. 국내 최고 에이스라는 김광현(3.1이닝 8피안타 3탈삼진 3실점)이 4회조차 채우지 못한 채 강판됐다. 홍이중 대만 감독은 김광현을 맞아 오른손 타자만 7명을 선발 출전시켰는데 김광현이 2019시즌 KBO리그 우타자 상대타율이 0.280으로 좌타자(.250)를 상대할 때보다 좋지 않은 것을 파악한 결정이었다. 대만 장타자들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 등판한 원종현은 2사 후 3점 홈런으로 쐐기포를 얻어맞았다.

반면 김경문 감독은 전날 승리한 미국전과 변화가 없는 라인업을 들고 나왔는데 믿었던 타자들이 투수 전향 2년째에 불과한 대만 선발 장이를 상대로 7회 2사까지 무득점으로 꽁꽁 묶였다. 구원투입된 천관위-천홍위에게도 점수를 내지 못한 채 선발 5안타에 그치며 끝내 영패를 피하지 못했다. 대만은 한국 투수와 타자들에 대한 정보분석이 잘 되어있는 듯 했고, 집중력과 파이팅에서도 오히려 한국 선수들보다 앞섰다.

대만전 패배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우리 선수들에 대한 실망감'이다. 물론 중압감이 큰 국제전에서 매 경기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대만전 한국 선수들은 마치 1군과 2군의 경기를 보는 듯 지나치게 무기력했다.
 
 12일 일본 지바 조조 마린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 2차전 대만과 한국의 경기. 4회초 추가 실점한 김광현이 교체돼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다.

12일 일본 지바 조조 마린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 2차전 대만과 한국의 경기. 4회초 추가 실점한 김광현이 교체돼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다. ⓒ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앞선 경기에서 비교적 손쉽게 연승행진을 이어간 게 대만전에서는 오히려 독이 된 모양새다. 한국은 예선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이 0.33으로 참가 12개국 중 1위였다. 전날 미국전에서도 13개 안타를 허용했지만 단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타선이 활발하게 터지지는 않았지만 안정된 투수력을 바탕으로 선취점을 뽑아내고 '지키는 야구'를 했다.

하지만 이날은 선발이 너무 일찍 무너지면서 그동안 가려져왔던 '타선의 응집력 부족'이라는 약점까지 덩달아 두드러졌다. 전반적으로 모든 타자들이 타석에서 상대 투수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끈기가 부족했다. 찬스 자체가 워낙 부족하기도 했지만 대타 작전이나 주루플레이 등을 통하여 어떻게든 출루해서 점수를 뽑아내겠다는 적극성 자체가 매우 부족했다.

상대 선발 장이가 한국 타자들이 공략하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투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심성 없이 초구에 방망이가 쉽게 돌아가거나 맥빠진 플레이로 일관한 모습은 우리 선수들이 계속된 연승으로 '자만심'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김광현에겐 최근 공개적으로 언론을 통하여 '메이저리그 진출'을 원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게 오히려 부메랑이 됐다. 선수의 입장은 이해해도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대표팀 경기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시점에 프리미어12가 김광현의 메이저리그행을 위한 쇼케이스같은 분위기가 되면서 스스로가 부담을 자초했다. 김광현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5.2이닝 3실점)을 비롯하여 대만전에서 의외로 고전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불과 닷새만에 가장 중요한 대만전에서 김광현을 다시 선발등판시킨 것은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선택이 되고 말았다.

지나간 결과를 돌이킬 수 없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앞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저력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인 개최국 일본도 이날 미국에게 3-4로 패했다. 일본 역시 대회 첫 패배를 당하며 4연승을 마감했다. 나란히 패한 한국과 일본은 슈퍼라운드 성적 2승 1패로 공동 2위로 내려앉았다. 단독 1위는 3승을 기록한 멕시코다.

한국은 오는 15일 멕시코, 16일 일본을 만난다. 모두 쉽게 이기기 어려운 강팀이다. 멕시코는 오프닝라운드에서 도미니카(6-1), 미국(8-2), 네덜란드(10-2)를 제압했고, 슈퍼라운드에서도 대만(2-0)과 호주(3-0)를 각각 제압했다. 일본은 한국에 지난 초대 대회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하여 이를 갈고 있다. 한국은 대회 결승행과 도쿄올림픽 진출을 위하여  잔여 경기를 무조건 모두 이겨야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상황이 어렵지만 이 위기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도 순항만 했던 경우는 없다.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2008 베이징올림픽만 해도 최약체 중국과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을 치르는 등 1점차 승부만 5번이었다.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예선전에서 일본에게 콜드게임 패배를 당하는 수모를 딛고 결승까지 올랐다. 2015 프리미어 준결승에서는 0-3으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던 경기를 9회에 뒤집는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이처럼 한국 대표팀은 언제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오히려 똘똘 뭉치는 저력을 보여줬다.

멕시코나 일본같은 강팀과의 대결은 오히려 느슨해져 있던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 특히 언제나 치열한 경기가 펼쳐지는 최고의 라이벌전이다. 대만전 패배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이번 대회에 임하는 '초심'을 되찾게 만들어주는 쓴 약이 되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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