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먹을 것이 다양하지 않았던, 다양했어도 먹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던 1980년대 초반 중학생이었던 우리에게 최고의 간식은 떡볶이와 핫도그였다. 학교를 마치고 신나게 놀다 학교 앞 허름한 가게에서 친구들이 먹는 짜장 떡볶이와 핫도그 한 입 얻어먹는 즐거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 얻어먹을 수는 없었다. 그들도 나보다 형편이 조금 좋을 뿐이지 매일 같이 반찬으로 쏘세지와 계란말이를 싸 오는 아이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얻어먹는 것이 미안해질 즈음 그 당시 떡볶이 가게에서 돈으로 통용되던 회수권(버스 이용권으로 한 장에 80원에 구매했던 것 같다)을 내고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사주었다. 회수권을 내고 떡볶이를 사 먹으면 난 꼼짝없이 50분을 걸어가야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먹는 떡볶이의 맛과 회복된 자존심은 그 고단함을 잊게 했다. 떡볶이와 핫도그로 회수권을 교환하면 할수록 하교 후 그 가게 앞을 지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회수권과 교환한 떡볶이의 맛에 중독될수록 나는 회수권보다 더 큰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습서나 학교 준비물을 사야 한다고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해서 돈을 타냈다. 거짓말로 부모님을 속였다는 죄의식은 떡볶이와 핫도그, 아이들과 즐거움으로 점점 옅어졌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나는 내가 먹고 아이들에게 떡볶이, 핫도그를 사주는 데 쓴 그 회수권과 돈이 나 때문에 상급 학교에 진학을 못 한 작은누나에게서 나온 돈이라는 것을 알았다. 작은누나가 옷 만드는 공장에서 받은 월급으로 막냇동생 걸어 다니지 말고 버스 타고 다니고, 공부 잘하고, 친구들에게 기죽지 말라고 사준 회수권이었고 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너무 나 자신이 미웠다. 그리고 작은누나에게 미안했다.

얼마 전 아내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보는 내내 형을 위해 희생된 큰누나와 나를 위해 희생된 작은누나가 떠올랐다. 누나들의 강요된 희생을 당연시했던 내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 견딜 수 없었다. 떡볶이, 친구들 앞에서 체면 등 말도 안 되는 이유에 집착해 누나들의 아픔을 모른 척했던, 또 그 당시 누나들의 희생을 희생인지도 모르고 당연시했던 나 자신이 싫었다. 누나의 희생에 고마움을 느끼기에 아직 나는 너무 어렸으며 나밖에 모르는 어린아이였다고 해도 미안한 마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제는 누나들의 아픔을 아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누나들은 현재 잘살고 있으니 된 거 아니냐고, 과거는 과거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나에게 깜짝 놀란다.

영화관을 나서며 작은누나에게 전화하려다 말았다. 작은누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이번 주말 누나들 손을 슬며시 잡아야겠다. 누나들은 순간 당황하겠지만 곧 말하지 않아도 내가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비난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상대를 비하하고 특히 일부 남자 또는 여자들의 이상 행동을 남자나 여자들로 확대하여 생각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전과 같은 남녀의 불평등은 사라졌다지만 그렇다고 서로 간의 이해도가 넓어진 것 같지도 않다. 잘못 말했다가는 양쪽 모두에게 적으로 취급받을 것 같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누나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대다수 아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는다. 내 이야기는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먼 과거로 들릴 뿐인 것 같다. 이런 아이들에게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상대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어쩌면 좋을지 아내와 딸, 아들과 이야기해 봐야겠다.

태그:#남녀 차이, #김지영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