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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부터 다시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9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로 일합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 - 기자말
 
100명이 모여서 하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군산 한길문고
 100명이 모여서 하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군산 한길문고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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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프로그램은 기획할 때부터 다르다. "재밌겠다!"는 느낌이 팍 온다. 당연히 모객 걱정도 하지 않는다. 웹 포스터를 만들어서 SNS에 올리기만 하면 신청전화가 폭주한다. 한길문고에서 하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가 그렇다.

1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최저시급 상품권을 주는 대회, 의자에서 엉덩이를 5초 이상 떼지 않아야 하는 대회, 한 번이라도 참가한 적 있는 사람들의 무용담이 두고두고 전해 내려오는 대회. 지난해 12월부터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열었던 한길문고는 네 번째 대회를 앞두고 있었다.

"11월 16일에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한다는 소식 들었는데요, 지금 신청해도 되나요?"

10월 말부터 한길문고로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점에서는"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채로 이 유쾌한 대회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중하게 접수 날짜를 조율했다. 
 
매력있는 대회는 모객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다.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군산 한길문고
 매력있는 대회는 모객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다.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군산 한길문고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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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열흘을 남겨두고 한길문고 문지영 대표님이 페이스북에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연다는 글을 올렸다. 나는 한길문고에 와서 책 읽고 에세이를 쓰는 선생님들에게만 알렸다. 그리고 한 명 더, 11월부터 '군산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권나윤님에게 소식을 전했다. 밤 9시 넘어서였다.

"내일 한길문고 가서 직접 접수할게요."

태평하게 대답한 나윤님. 다음 날 오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경솔했는지를 깨달았다. 한길문고 김우섭 점장님은 몹시 미안해 하면서 "마감 됐어요"라고 했다. 맙소사! 몇 시간 만에 신청자 100명이 다 찬 거였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한길문고 작가 강연회와 북클럽, 에세이 쓰기에 참여하는 김유림, 이은미 선생님도 참가 자격을 얻지 못했다. 셋째 아이가 어려서 책 읽기에 도전 못하는 박효영 선생님까지 이 세 명은 자원봉사를 자처했다.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입기로 하고, '안내'라는 자원봉사자 목걸이를 스스로 마련했다.
 
자원봉사를 해준 김유림, 이은미 선생님. 박효영 선생님도 자원봉사 해주었는데 사진에 없다.
 자원봉사를 해준 김유림, 이은미 선생님. 박효영 선생님도 자원봉사 해주었는데 사진에 없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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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업 받듯이 한길문고 강연회에 다니는 독자 몇 명은 치밀하게 '노쇼'까지 예상했다. 늦었지만 신청을 받아달라고 졸랐다. 대학 합격도 아닌데,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행스럽게도 "사정이 생겨서 대회에 참석 못합니다"라는 사람들이 생기긴 했다.

11월 16일 오후 1시 40분. 진열된 책을 치우고, 테이블과 의자 100개를 놓는 사이에 참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남학생들은 무대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여럿이 온 사람들도, 혼자 와서 주뼛거리는 사람도 함께 어울려 앉았다.

"이번에는 진짜 엄격하게 진행할 거예요. 의자에서 5초 이상 엉덩이를 떼면 탈락이에요. 자원봉사자가 어깨를 두드리면 울지 말고 책을 챙겨서 나가야 합니다. 당 떨어졌다고 책 읽다가 과자를 먹어서도 안 되고요, 몇 분 남았냐고 저한테 계속 물어봐도 안 됩니다. 오줌 마려운 것도 참아야 하니까 화장실은 지금 다녀오세요."

나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세 번이나 진행했던 사람. 네 번째는 진짜로 봐주는 거 없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오후 2시. 여전히 목이 마르고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2시 8분에 타이머를 눌렀다. 서점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가져온 책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은파소년소녀합창단 어린이들. 아침 9시부터 금강중학교에서 공연하고 바로 책 읽으러 서점으로 왔다고 한다.
 은파소년소녀합창단 어린이들. 아침 9시부터 금강중학교에서 공연하고 바로 책 읽으러 서점으로 왔다고 한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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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엉덩이의 들썩거림을 감지한다. 오래 보아야 고개를 숙이고 조는 걸 알아챈다. 팬티가 자꾸 엉덩이에 끼는 건가. 살살 몸부림치는 아이들은 테이블마다 있었다. '은파소년소녀합창단' 옷을 입은 어린이 한 명은 졸다가 아예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책 읽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 지났을 때였다.

나는 발소리를 내지 않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같이 온, 옆자리에 앉은 어린이들이 내 얼굴을 봤다. 차마 "탈락!"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아침 9시부터 금강중학교에서 공연하고 온 그 아이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아이는 눈을 비비고 다시 책을 읽었다.

15분!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한다. 2시 20분 넘어가자 몸을 배배 꼬는 어린이들이 몇 명이나 보였다. 책을 보는 시간하고 내 얼굴을 보는 시간이 비슷했다. 그때가 2시 25분. "몇 분 지났어요?"라고 간절하게 묻는 게 느껴졌다. 나도 덩달아 초조해졌다.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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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탔다. 책 읽기 시작한 지 30분 째. 분위기를 감지한 문지영 대표님은 생수 100병을 사왔다. 테이블마다 사람 수 대로 물병이 놓였다. 물 뚜껑을 돌려서 따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렸다. 물을 마신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었다. 그러지 못하고 흐트러진 사람들은 온 몸으로 묻는 게 있었다. 졌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타이머를 보여주었다.

한 손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남은 시간은 5분. 나는 무대 앞에서 한 손을 쫙 폈다. 책에 시선을 두지 못한 아이들 몇은 소리 내지 않고 내 눈을 보며 크게 웃었다. 여전히 책에 빠져서 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4분 남았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접었다. 3분 남았다. 검지손가락을 접었다. 2분 남았다. 중지손가락을 접었다. 1분 남았다. 새끼손가락만 남았다. 아이들 몇은 호들갑을 떨 때처럼 두 주먹을 쥐고 기쁘게 흔들었다. 남은 시간은 2초. 나는 타이머 종료 벨 소리가 크게 들리도록 스마트폰에 마이크를 갖다 댔다.

"뜨르르르! 뜨르르르!"
 
 
1시간 동안 엉덩이를 떼지 않고 책을 읽으면 8,350원 짜리 상품권을 준다.
 1시간 동안 엉덩이를 떼지 않고 책을 읽으면 8,350원 짜리 상품권을 준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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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터졌다. 모두가 1등인 대회. 2등은 아예 없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는 끝났다. 1시간이 얼마나 긴지를 생생하게 체험한 참가자들은 후련해 보였다. 문지영 대표님은 장한 일을 해낸 사람들에게 8350원짜리 상품권을 선물로 줬다.

수십 명의 아이들과 어른들은 각자 신중한 자세로 서가와 문구점 앞에 서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독자들의 숨결을 느끼는 한길문고는 생물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눈길과 손길을 받으면서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100명이 모여서 한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100명이 모여서 한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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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군산 한길문고,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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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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