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판> 메인포스터 영화 <심판> 메인포스터

▲ 영화 <심판> 메인포스터 영화 <심판> 메인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영화 <미치고 싶을 때>로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파티 아킨 감독은 독일 변방에 놓인 터키계 공동체에 대한 면밀한 성찰로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은 바 있었다. 당시 함께 경합했던 감독들이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던 켄 로치, 테오 앙겔로풀로스, 리처드 링클레이터, 패티 젠킨스 등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한 작품으로 평단의 진심을 얻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라 다름없었다. 이는 감독 자신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쾌거였다. 파티 아킨 감독은 이후, 영화 <천국의 가장자리>, <뉴욕, 아이 러브 유>, <소울 키친> 등의 작품을 통해 특정 문화 속에 흘러 들어와 자리하고 있는 이민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제70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은 이번 작품 <심판> 또한 그가 만들어온 세계관과 유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의문의 폭발 테러로 하루 아침에 남편과 아들을 잃고 진실을 추적하던 여자가 복수와 용서 사이에 서게되기까지의 과정과 결단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독일에서 발생했던 일련의 살인사건을 – 독일 내 네오나치 집단 NSU 소속 3인이 지난 2000년에서 2007년 사이에 10명의 시민을 살해했고, 그 중 8명은 터키에서 온 이민자이거나 쿠르드인이었다. – 모티브로 이 작품을 연출한 파티 아킨 감독은 이민자 출신인 부모의 영향으로 이와 관련된 소재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02.
영화는 크게 '가족'과 '심판', '바다'라는 소제를 가진 총 3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심에 놓이게 되는 인물은 바로 카티아(다이앤 크루거 분)다. 남편의 가게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인해 남편 누리(너맨 아카 분)와 아들 로코(라파엘 산타나 분)를 함께 잃게 되는 그녀는 챕터 각각의 지점을 지나며 태도를 바꾸어가는 반응형 인물로 그려지며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인물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인물로 변화해 나간다.

파티 아킨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번 작품을 총 3장으로 나눈 것은 영화가 슬픔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그에 따라 주인공 카티아의 감정 변화와 각 챕터에서 전하고자 했던 자신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치 집단 소속의 인물의 테러로 가족을 잃게 되는 내용의 1장과 진짜 범인을 찾아내기 위한 법정 싸움이 그려지는 2장, 그들에 대한 적절한 심판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위해 완성된 3장의 내용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되며 하나의 큰 이야기를 완성시켜낸다.
 
영화 <심판> 스틸컷 영화 <심판> 스틸컷

▲ 영화 <심판> 스틸컷 영화 <심판>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03.
분리된 각각의 장을 이어내는 것은 핸드헬드(Handheld)로 촬영된 홈 비디오 형식의 영상(실제로는 핸드폰으로 촬영된 영상)이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영화의 오프닝 영상과 1막과 2막이 끝나고 난 직후, 카티아의 마지막 선택 직전까지 총 4번에 걸쳐 등장하는 이 영상에는 단란했던 때의 가족 모습이 담겨있다. 영상 속 이러한 장면들은 영화 메인 스토리에서 드러나는 상실과 아픔, 분노의 감정 반대 지점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고 이전의 모습을 그려내는 역할을 한다.

이 영상들로 인한 가족의 안위와 평화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되는데, 하나는 영화 속 사건이 개인의 잘못이나 원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남편인 누리가 출소 이후 근면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점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사고의 기점이 되는 전자의 내용은 2막에서 이어지는 법정 드라마와 연결되고, 터무니 없는 의심의 발단이 되는 후자의 내용은 3막에서 이어지는 개인적 복수와 이어진다.

04.
감독이 이번 작품을 통해 보다 깊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지점은 개인적 감정의 동요보다는 그 동요를 유발하도록 하는 요소들이다. 영화적으로 보자면 남편의 출소 이후 범죄 조직 가담 및 마약 밀매를 염두에 두고 계속해서 괴롭혀 오는 공권력의 태도와 피해자인 그들을 비난하려 드는 이들로 인한 상처가 되겠다. 이는 테러를 감행한 묄러 부부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에도 계속되며 심지어는 범국가적으로 퍼져있는 나치 네트워크를 통해 사건 자체를 무마하려는 시도에까지 이르게 되며 희생자의 유족인 카티아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상황을 회피하거나 왜곡하려는 외부의 시도가 아니라, 테러로 인해 맞이하게 되는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상황 역시 그녀를 괴롭히는 요소가 되는데, 극 중에서는 용의자 묄러 부부의 재판 장면을 통해 묘사된다. 법의학자로 보이는 인물이 증인으로 나서 희생자인 아들 로코가 어떤 모습으로 사망 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 아들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해부학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만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던 카티아가 말이다. 감독은 이 두 지점의 교환을 통해 외부적 가해 이전에 존재하는 원형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 <심판> 스틸컷 영화 <심판> 스틸컷

▲ 영화 <심판> 스틸컷 영화 <심판>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05.
그러니까,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려지는 카티아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용의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과는 별개로, 또 특정 상황에 놓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적 고통과 별개로 이를 외면하고 회피하는 이들의 모습에 대한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폭탄 테러라는 사건 자체의 시작점부터가 이민자에 대한 혐오에서 시작, 어떤 적합한 사유도 없이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들을 단죄함으로써 나의 평안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짓밟은 이들을 처단하지 않고서는 다음을 걸어낼 수 없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기회가 된다면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아들이 저지른 짓은 무모하고 어리석었습니다.


이는 2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용의자 안드레 묄러의 아버지, 그가 건네는 짤막한 사죄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과도 연결된다. 자신의 피붙이이기는 하나, 잘못된 믿음과 그릇된 가치관으로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자식의 행동에 대한 사과에는 영화의 바깥에서 아파해왔을 실제 유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짧은 대사로 그들의 다음을 회복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영화 <심판> 스틸컷 영화 <심판> 스틸컷

▲ 영화 <심판> 스틸컷 영화 <심판>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06.
삶을 회복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는커녕 더욱 무너뜨리고자 하는 이들과 사회에 대한 단죄를 행하는 주인공 카티아의 행동은 이 영화의 타이틀인 '심판'의 의미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파티 아킨 감독이 이 영화를 연출함에 있어 제도 하의 공적인 심판과 그 이후의 사적인 심판에 대한 균형감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에 그 모습은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관객들은 모두 알고 있다. 영화 속 '심판'이 결코 '합리적인 정의'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카티아의 마지막 선택은 분명히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낸다. 배우 다이앤 크루거의 짙은 연기와 함께 말이다.
영화 넘버링무비 심판 다이앤크루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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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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