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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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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오후 5시 7분]

대법원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방송에 대한 제재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시민방송 RTV가 방송통신위원회 제재를 취소해달라고 한 소송에서 RTV의 손을 들어줬다. "제재가 옳다"는 내용의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다수의견은 전원합의체 13명 중 7명(김명수 대법원장, 김재형·박정화·민유숙·김선수·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이었다. 반면 6명(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날 선고는 지난 2013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가 RTV에 제재 명령을 내린 지 6년 3개월만의 말이다.

[어떤 일이 있었나] <백년전쟁> 방송했다 제재 명령 받아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RTV는 2013년 1~3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55회 방송했다. <백년전쟁>은 역사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2012년 제작한 것이다.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편에서는 이 전 대통령을 악질 친일파로 묘사했다. 여기에는 '이 전 대통령이 독립운동자금을 장악하기 위해 하와이 깡패의 본색을 드러냈다',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을 단독으로 점령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백년전쟁> '프레이저 보고서(제1부)' 편에서는 1978년 미국 의회에 보고된 '프레이저 보고서'를 바탕으로 '박정희는 수출주도형 전략을 제시한 적이 없었다', '박정희가 해방 후에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는데, 동료들을 전부 밀고해서 죽게 만들고 자신의 목숨을 건졌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를 두고 당시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객관성과 사자명예훼손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면서 "해당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및 경고" 명령을 내렸다.

RTV는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고, 이후 서울행정법원에 제재를 취소해달라고 청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제재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백년전쟁> 방송을 두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없이 부정적인 사례(기사 등)와 평가(역사학자의 인터뷰 등)만으로 구성하고, 제작 의도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였으며,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루면서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양한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지 못했다"라고 판단했다.

RTV는 항소했지만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판단은] "중요한 부분 사실과 합치, 명예훼손 아니다"

대법원은 "방송의 객관성·균형성을 심의할 때는 매체별·채널별·프로그램별 특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라고 봤다.

RTV의 <백년전쟁> 방송을 두고 "시청자의 자유로운 접근이 제한된 유료 비지상파 방송 매체를 통해 방영됐고, 시청자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므로, 무상으로 접근 가능한 지상파방송이나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 또는 보도 프로그램과 달리 상대적으로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한 "제작자의 관점과 다른 관점을 가진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모두 반영한 역사 다큐멘터리만 방송하여야 한다면, 주류적 통념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는 방송에서 다루기 힘들 뿐만 아니라 자칫 역사적 관점에 대한 단순한 나열에 그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 방송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충분히 알려져 사실상 주류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므로,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라고 봤다.

대법원은 또한 RTV가 사자명예훼손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도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은 "방송 내용은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신문 기사 등의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서, 표현 방식이 다소 거칠고 세부에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있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기는 하나, 방송 전체의 내용과 취지를 살펴볼 때 그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므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또한 "이 사건 각 방송은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논쟁과 재평가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신문 기사, 관련자 및 전문가와의 인터뷰 등을 기초로 하였다는 점에서 진실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반대의견의 내용은] "이승만, 박정희 인격 훼손 목적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6명의 대법관이 낸 반대의견은 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이들은 <백년전쟁> 방송을 두고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부분만을 발췌하여 마치 그 부분만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방영함으로써 그 방송내용이 공익과는 무관하게 주로 이승만, 박정희 개인의 인격을 훼손하려는 악의적인 목적이나 동기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수의견을 따를 경우, 선별되고 편향된 일부 자료만을 근거로 특정 역사적 인물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내용의 방송을 하더라도 '역사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취하기만 하면 방송법에 따라 아무런 제재조치를 할 수 없게 되는 결론에 도달한다"라고 비판했다.

[RTV 반응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당연한 판결"

RTV는 대법원 선고 이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방송의 독립성과 다양성,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RTV는 이날 선고를 두고 "방송심의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사실에 근거한 검증과 확인과정 그 자체에 있다는 것과 역사적 사안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RTV는 2013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를 두고 "납득할만한 근거 없이 RTV의 의견진술절차요구도 묵살한 채 중징계 결정을 강행했다. 심지어 <백년전쟁>을 '대한민국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저주의 역사관을 심어주는 해악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하며 감정적이고 일방적인 시각을 보여줬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규제기관의 이 같은 행태가 앞으로 RTV에게도, 다른 방송사에게도 없었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RTV는 "이번 판결은 '공공적 공간에서의 소통' 그리고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재차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도 RTV는 우리 사회 소수·약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태그:#백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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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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