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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지난해 11월 15일 오전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고사장에 시험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지난해 11월 15일 오전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고사장에 시험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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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해당 과목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사실상 시험 전체를 포기하는 선택과 다를 바 없어 응시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

변호사시험이나 국가기술자격시험 도중 응시자들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건 인권침해라는 인권위 결정이 나왔다.

"화장실 때문에 시험 전체 포기하라는 건 지나치게 가혹"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 아래 인권위)는 27일 법무부 장관과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에게 변호사시험과 국가기술자격시험 응시자들이 시험 도중에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시험 운영 방법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지난 10월 14일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시험 응시자들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건 일반적 행동자유권,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인격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변호사시험은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시험 시간이 각각 3시간, 3시간 30분인 두 과목만 시험 시작 2시간 뒤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지난 2019년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했던 한 수험생은 시험 20분 전 입실해야 하는데 2시간이 넘지 않는 과목이라도 화장실 이용을 금지하는 건 과도한 제한이라고 인권위에 진정했다.

지난해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진행하는 국가기술자격시험에 응시한 한 수험생도 1시간 30분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이 금지돼 소변을 참느라 시험에 집중하지 못해 결국 불합격했고, 올해 응시한 또 다른 수험생은 2시간 30분짜리 시험 도중 화장실에 가려고 어쩔 수 없이 시험을 포기해야 했다. 이들도 시험 도중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험운영방식은 인권침해라며 각각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법무부는 "변호사시험 중 화장실 이용 제한은 부정행위 방지, 시험의 공정성, 일반 응시자들이 방해받지 않고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한 것"이라며 "화장실을 가는 경우 다시 입실할 수는 없지만 퇴실 시까지 작성된 답안지는 정상적으로 채점되고 임산부, 장애인 등 불가피한 경우 따로 고사장을 마련해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역시 "화장실 내에서의 부정행위 가능성 방지, 응시자가 소음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도록 정숙한 시험장 분위기 조성 등의 차원에서 시험 중에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입수능, 미국 변호사시험도 화장실 허용" 

하지만 인권위는 "시험 중 수험생의 화장실 이용을 허용할 경우 부정행위나 다른 수험생들의 집중력 보호와 관련한 문제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불가피하게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생리적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헌법상 보호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물론 응시자들이 시험에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면서도 "비록 극히 소수가 이용하는 결과가 되더라도 누구나 그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험생들이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시험 방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인권위는 변호사시험의 경우 화장실 이용으로 부정행위가 사실상 어렵고, 5년 내 5회로 응시 기회가 제한하는 상황도 고려했다. 인권위는 "시험 유형과 난이도 특성 상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더라도 부정행위를 통해 이익을 볼 가능성이 유의미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해당 과목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사실상 시험 전체를 포기하는 선택과 다를 바 없어 응시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논술형 시험을 포함한 미국 변호사시험(Bar Exam)도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인권위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비롯해 토익(TOEIC), 공인회계사 1차 시험 등 시험시간이 2시간이 넘지 않는 다른 시험에서 금속탐지기를 거치거나 감독이 동행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감안했다.

인권위는 지난 2015년과 2016년에도 국가기술자격시험과 공무원 선발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라고 권고했고, 인사혁신처 등에서는 지난 2017년도부터 일부 지방공무원 선발시험, 7급 국가공무원 공채 시험, 5급·7급 민간경력자 일괄채용 시험 등에서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 시간을 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률은 1% 안팎으로 나타났다.

변호사시험의 경우 4일 동안 10과목으로 나눠 진행되는데, 시험시간은 짧게는 1시간 10분에서 길게는 3시간 30분까지 다양하다. 수험생은 시험시작 35분 전까지 입실해야 하고 시험 시작 20분 전부터는 이동을 할 수 없다. 시험 도중에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고, 시험시간이 2시간을 넘는 민사법 기록형(3시간), 사례형(3시간 30분) 시험만 시험시작 2시간 뒤부터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산업인력공단도 국가기술자격시험 1차 필기시험 494개, 2차 필답형 실기시험 172개 가운데 시험시간 2시간 이내인 554개(83%)는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2시간을 초과하는 112개(17%) 시험은 2시간 이후부터 감독관이 동행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태그:#인권위, #변호사시험, #화장실, #국가기술자격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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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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