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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나는 대전에서 성장하고 활동하다가 노년기를 맞이했다. 지금 사는 도마동에서 외지로 벗어나지 못한 채 유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이곳에서 다녔다. 그리고 집 가까운 대전대신고등학교에 취직하여 35년 동안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했다. 도마동에서 자라나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한 뒤 학교 가까운 곳에 집을 장만하여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다. 대전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나가보질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도마동 주변을 맴돌며 일생을 살았는데 돌아보니 그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가끔 친구들이 향우회 모임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을 때면 은근히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향우회는 고향을 떠나 외지에 살면서 동향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상부상조하는 모임이다. 향우회원들은 모여 고향의 이야기와 추억담을 쏟아내며 정을 나누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서로 도와가면서 형제들처럼 살갑게 지내는 것 같아 샘이 나기도 한다.

어렸을 때 나는 대전시민이 아니라 충청남도 도민이었다. 내가 살던 충청남도 대덕군 유천면 도마리가 1963년 1월 1일 대전시로 편입되어 대전시 도마동이 되는 바람에 나와 가족도 대전시민이 되었다. 그 뒤로 1989년에 대전직할시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 대전광역시로 개편되어 지금은 광역시민으로 살고 있다.

도마동의 지형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서쪽으로 솟아있는 연자산(鷰子山207m)과 도솔산(兜率山)을 따라 구릉과 평야지대로 이루어진 농촌지역으로 땅이 비옥하여 농사가 주업이었다. 동쪽으로 유등천이 있어서 이를 경계로 중구 유천동, 서쪽으로는 서구 도안동, 남쪽으로 복수동, 정림동, 북쪽으로 변동과 접하고 있다.

지금은 도마동과 인근 지역에 학교가 여러 곳이 있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50∼60년대에는 유천초등학교 한 곳뿐이었다. 그래서 도마동 북쪽으로 내동, 변동, 가장동과 남쪽으로 정림동, 복수동, 사정동, 안영동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먼 거리를 걸어 유천초등학교에 다니면서 함께 공부했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등하교 때면 늘 뛰어다니기 때문인지 사정동, 안영동, 변동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가을철 운동회 때는 달리기 상을 휩쓸곤 했다.

현재 도마동은 도마1동과 도마2동으로 나뉘어졌고, 인구도 3만5천 명이나 되는 지역이다. 교육기관은 유천초등학교, 도마초등학교, 삼육초등학교, 도마중학교, 버드내중학교, 삼육중학교, 제일고등학교, 서대전여자고등학교, 배재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도마동 앞을 흐르는 유등천은 금산군 진산면 청정리 산기슭에서 발원하여 금산군 복수면에서 진산천을 받아들이고 도마동에 이르러 동북 방향으로 흐른다. 그리고 삼천동 유역에서 대전천과 합류하고, 갑천과 만나서 금강으로 흘러간다. 어렸을 때 유등천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여름철이면 냇가에서 헤엄치고 물고기를 잡았으며, 겨울에는 얼음판에서 썰매를 타고 놀았다.

연자산이라고도 부르는 도솔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도마동은 작은 부락이 여러 곳이다. 유등천 맞은편의 산 모양이 마치 도마뱀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 일대를 도마다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마다리 외에도 제비네, 수피, 산적골, 송촌, 고랫재, 신촌, 공장마을과 같은 작은 부락들이 있었고, 아이들이 학교를 오가면서 텃세를 부려 가끔 부락별로 나뉘어 패싸움도 했다. 도마동에는 전통사찰인 내원사가 있다. 내원사 절 뒤를 감싸고 있는 산은 도솔산으로 봉오리는 두루봉이라고 부른다. 배재대학교 뒤를 감싸고 있는 산은 연자산으로 봉오리는 연자봉, 계곡은 연자골이다.

복수동에 있는 대전대신중·고등학교 뒷산은 오량가산(五樑家山 116m)으로 '들보가 다섯 개 있는 커다란 집이 있는 산'이란 뜻인데 모양이 마치 개가 누워서 강아지들에게 젖을 먹이는 형국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에는 오랑캐산이라고 불러서 6·25동란 중에 중공군과 전투가 치열했을 때 적군들의 은거지로 쓰여서 오랑캐산으로 부르는 줄 알았다. 이런 일을 보면 말과 글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봄·가을로 접어들면 연자산이나 오량가산에 올라가 전쟁놀이도 하고 놀았으며, 조금 성장하여서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다가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유등천의 서쪽은 논농사를 주로 하는 비교적 넓은 들판이었다. 유등천의 수량이 풍부하여 논농사에 안성맞춤이었고, 연자산과 오량가산 쪽은 밭농사가 이루어지는 농업 위주의 시골마을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한국조폐공사 대전조폐창, 대전피혁, 원미섬유, 동방산업과 같은 제조업체들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고 상권이 형성되자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 경남아파트를 건설하면서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공존하는 주거형태를 이루는 곳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도마동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한 상업지역과 배재대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을 따라 이루어진 주거지역으로 살아가는 데 불편한 것이 없는 안정된 주거공간으로 발전했다.

태그:#대전그곳을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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