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영화 포스터

<경계선> 영화 포스터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스마트 폰이 생기고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영화와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됐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이야기와 이미지를 소비하는 지금, 우리는 하나의 콘텐츠가 주는 여운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새로운 콘텐츠에 노출되어 이전의 감동을 쉽게 잊는다. '새로움'은 이제 과거에서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된 것일까? 

그럼에도 새로운 영화는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다. 

지난 10월 개봉한 스웨덴 영화 <경계선>은 (개인적으로) 올해 국내에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독특하고 강렬한 영화였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는 판타지, 멜로, 드라마, 스릴러가 뒤섞인 SF장르(신화와 현실의 결합)로 스칸디나비아 민담에 등장하는 '트롤'을 21세기 스웨덴으로 가져왔는데 독특한 소재를 현실적으로 (특히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과 이들이 겪는 갈등에 대한 묘사가 지독히도 현실적이다) 묘사한 덕분에 개연성을 획득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진 힘이기도 하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남들과 조금 다른 외모의 출입국 세관 직원 티나(에바 멜란데르)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냄새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인데, 이 특별한 재능으로 그녀는 마약 탐지견이나 엑스레이도 잡아내지 못하는 범죄자를 구분해 낸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한다. 수상한 사람들(대부분은 밀수범들)을 잡아내고, 동료들과 사적인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과 과묵한 언행에는 처연한 외로움과 슬픔이 묻어있다. 

그녀는 남자친구 롤랜드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함께 산다는 말 보다는 롤랜드가 그녀의 집에 얹혀 산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롤랜드는 맹견을 훈련시키고 가꾸어 대회에 출전시키는 일을 하고 있지만 백수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티나에게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묻지 않는다. 마주보고 식사를 할 때도 그의 시선은 잡지를 향하고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사랑 때문이 아니라 절박함 때문에 그와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게 느껴져 그녀의 포기한 듯한 얼굴이 더욱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자연 속에서 안정과 위로를 얻는다. 숲속을 맨발로 걸으며 야생 동물들과 교감하는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미소 짓는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입국하는 사람들의 냄새를 통해 수상한 사람을 골라내던 중, 티나는 전에 맡아본 적이 없는 낯선 냄새를 맡게 되고 냄새의 주인공을 멈춰 세우는데, 보레(에로 밀로노프)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그녀 앞에 선다. 어딘지 모르게 그녀와 많이 닮아 있는 그는 마치 그녀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그녀를 보고 미소 짓는다. 티나는 혼란스럽다.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도대체 누구 길래 자신을 이토록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일까?

티나와 보레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그와 함께하면서 티나는 평생 그녀를 구속하고 괴롭혔던 고뇌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나가는 동시에 새로운 혼란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와 티나 사이의 경계는 불분명하고, 정체성에 대한 티나의 고민은 체념으로 이어진다. 남들과 다른 자신이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바람은 사회에 적응해나가면서 처참히 무너졌으며 사람들은 눈짓으로 때로는 잔인한 말로 그녀를 배척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보레가 나타나고 그녀는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위로받는다.

스스로를 괴물이라 부르며 평생을 자기혐오 속에서 살아온 티나가 자신이 불완전하고 열등한 인간이 아니라 사실은 '트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녀 속에 내재되어 있던 본능과 욕망, 그리고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 또한 깨어나는데, 인간 사회에서 그녀가 인간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인간 사회에서 트롤은 생체실험의 도구로 전락, 멸종 단계에 이르렀다. 일부는 자신의 정체를 모른 채 티나처럼 인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일부는 보레처럼 인간에 대한 혐오로 복수를 계획하며 떠돌이로 살아가는데 둘 모두 인간 사회에 완전히 편입되지 못하고 사각지대, 혹은 영화의 제목처럼 경계선 언저리를 맴도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트롤'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휴머니즘'이라는 보편적 주제의식이 결합된 <경계선>은 관객에게 낯선 감각을 전달하는 강렬한 영화로 우리에게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까지 인류가 해왔던 배척의 방식이 아닌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개성 있는 연출과 트롤 분장을 뚫고 감정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배우들의 열연이 특히 돋보이는 영화는 느리게 진행되는 서사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 내내 숨소리를 크게 내는 것마저 조심스러울 만큼 긴장감이 넘친다. 서늘함과 뜨거움이 공존하는 영화 <경계선>. 새로운 영화를 찾고 있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로 이 영화는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그는 영화 <렛미인>(2008)의 원작자이자 각본가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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