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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은평구 한 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서울.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 문명이 생산한 "좀비부대"  10일 은평구 한 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서울.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 황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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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안부와 함께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친구야, 거긴 많이 춥니? 여긴 이제 시작이야."  

사방이 막막하다. 

제주도 번영로를 따라 중산간에 들어서면 사위를 에우는 묵직한 안개를 자주 만나게 된다. 심한 날이면 멀리 보이던 신호등도, 앞서 달리던 차도 안 보인다. 사방이 사라지는 경험이 도시에서는 흔치 않으니 철딱서니 없이 신도 났다. 김승옥 작가가 그린 '무진'이 거기가 아닌가 했다. 

4년 만에 돌아간 2018년 서울도 자욱하긴 마찬가지였다. 떠나기 전에도 이랬던가. 서울 대기가 혼탁하긴 했어도 중산간 안개 마냥 시야를 가리는 일은 없었다. 제주도 이사가 '기후피난'이었던 셈이다. 

고동도 미세먼지가 물러 간 그해 여름, 정수리에서 달걀 후라이가 가능할 것 같은 폭염이 왔다. 누가 드라이기를 얼굴 앞에 틀어놨냐는 농담을 주고 받는 동안 에어컨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다. 열대야 일수가 연일 갱신됐다. 다들 왠만하면 실내를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빛고운 가을 잠시 숨 좀 돌렸을까. 이듬해 3월 고농도 미세먼지가 일주일간 계속됐다. '문명이 뿜어낸 입김'에 모두가 헉 했다. 숨이 턱 막히는 재난이었다. 정부는 즉각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재정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범국가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도 설립했다. 정치권 문턱을 밟다 만신창이로 물러난 반기문 전 유엔총장이 위원장으로 호명됐다. 당시 다섯살이던 조카는 창문 없는 아파트를 어린이집에서 그려왔다. 혼탁한 틈에 '원전이 답'이라는 헛소리가 슬그머니 끼워졌다. 

'맑은 하늘'이 저편으로 저물고 있는 동안 한국은 중국탓, 야권은 정부탓,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환경단체탓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해는 갔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었다. 바람이 다시 시동을 걸길 기다리는 동안 정치권은 뭐라도 해야 했을 거다. 조카가 민주주의보다 미세먼지 재난을 먼저 배우는 동안 상경 후 두번째 겨울은 그렇게 물러 갔다. 

그리고 다시 "윈터스 커밍(Winter's coming.)" 

친구의 안부 인사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캐나다는 맑은 하늘이 일상이라 장벽 너머 생을 위협하는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곧 돌아가야 하는데, 올것이 왔구나.

'겨울이 오고 있다'는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유명한 대사다. 죽음(화이트워커)이 삶의 영역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의미다. 

겨울마다 진군하는 미세먼지는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화이트 워커(White Walker)' 존재 방식과 유사하다. '나이트 킹(근본)'이 만드는 '좀비 부대'라는 점, 죽은 자(재)를 되살려 부대를 결성한다는 점, 시간에 비례해 조직원이 증가한다는 점, 인간 한계를 벗어난다는 점, '나이트 킹'을 없애기 전까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가공할만한 존재와 붙으려면 국가간 협력이 필수라는 공략법도 닮았다면 닮았다. 
 
국내는 '화이트 워커'에 대항하기 위해 바삐 움직인 듯 보인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블로그를 만들어 42건의 포스팅을 올리는 동안 지난 9월 27일 미세먼지 특별법이 가동됐다. 최근에는 탈석탄, 탈내연기관, 탈플라스틱 등 경제·사회 전반의 녹색전환을 예고한 '제5차 국가환경종합계획' 발표도 있었다. 논란은 있지만 한중일 3국의 '동북아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 물질 국제공동연구(LTP) 요약 보고서'도 발간됐다. 

LTP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연평균 국내 초미세먼지(PM-2.5)의 32%는 중국발로 분석됐다. 국내 요인은 51%, 일본발은 2%다. 정부 주장대로 책임 공방을 줄이고 다자간 대안 마련 첫 삽을 떴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그런데 잠깐, 뭔가 찜찜하다. 

경유 버스를 버젓이 운행하는 마니토바 주에는 왜 고농도 미세먼지가 주둔하지 않나. 온실가스 배출 1, 2위를 다투는 미국과 캐나다의 하늘은 왜 이토록 맑은가.

서울시 대기환경정보에 따르면 지난 5년(2014년 12월~2019년 2월)간 겨울철 풍속과 초미세 먼지 발생량은 정확히 반비례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초미세먼지 발생 농도가 줄었고, 바람이 약한 날은 초미세먼지 발생 농도가 높았다. 고농도 미세먼지와 대기정체가 무관하지 않다는 증거다. 대기정체는 거대한 실린더가 대한민국 상공에서 거꾸로 착륙한 그림을 연상하면 쉽다. 밀폐된 공간에서 제철소도 돌리고 화력발전도 태우고, 자동차도 굴리고, 담배도 피우니 농도가 계속 짙어지는 거다.

그렇다면 좀비부대'는 왜 북미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에 진군했나. 

한반도 대기정체는 기후변화 요인이 크다. 빙하 감축으로 극지방과 유라시아 대륙과의 온도차가 줄었고, 이로 인해 풍속이 약해졌단다. 탄소배출이 기후변화를, 기후변화가 대기정체를, 대기정체가 고동도 미세먼지를 야기한다는 말이다. 

녹색 전환을 하겠다는 정부의 5차 환경 계획은 실린더 속 오염원, LTP 보고서대로라면 51%의 국내 요인을 줄이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실린더를 치우지 않으면 미세먼지와 폭염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이는 '나이트 킹'을 제거하지 못해 화수분 같은 '화이트 워커'랑 계속 싸우는 격이다. 

미세먼지는 싫다며 자동차는 굴리고 싶은 마음, 에어컨은 가동하며 중국탓은 하게 되는 심보, 전기세 올리면 정부를 원망할 심사 모두 미세먼지 앞에서 염치 없음을 안다. 그런데 온실가스 배출 1위를 자랑하는 미국이 "기후변화 주장은 망상"이라며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발을 빼는 모습에 염치 반성을 하다 만다. '나이트 킹' 앞에서 다같이 똥줄 타는 건 아닌 모양세다. 왜 기후악당의 하늘은 맑나.

원전이 아니라 바람이 답이다. 최근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국가가 배출한 올 이산화탄소 양만 431억 톤이라는데, 조카가 그려온 아파트에 창문을 그려도 되는 날이 과연 올까. 

태그:#기후변화와 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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