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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한국을 꿈꾸는 한국인의 가장 흔한 이유, 바로 '교육'입니다. 한국의 교육 현실을 벗어난 이들이 향하는 국가는 종래에는 영어권 국가가 압도적이었는데요. 영어만으로 경쟁력을 가지기 힘든 요즘, 선진 교육과 제2외국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목적으로 비영어권 국가로 유학을 떠나는 이들도 많습니다. 독일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비영어권 유학 대상 국가 중 하나입니다. 학비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선진화된 교육 철학과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수한 공교육으로 정평이 난 독일에도, 엘리트 교육을 열망하는 이들을 위한 사립학교가 존재합니다. 
 
최근 독일인의 사립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하는데요. 한 독일의 주간지는 과거와는 판이하게 재편될 미래의 산업 체계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독일의 사립학교는 어떤 철학과 커리큘럼으로 운영되고 있을까요? 또 이들은 한국의 특성화고, 자사고와 비교할 때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독일 사립학교의 이모저모를 듣기 위해, 헤센주의 슈타인뮐러(Steinmühle) 김나지움(Gymnasium, 한국의 인문계 중고등학교에 해당)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정예원 학생을 만나 보았습니다. 
      
헤센주의 마부르크(Marburg)에 위치한 슈타인뮐러(Steinmuhele) 학교의 정경
▲ 헤센주의 슈타인뮐러 정경 헤센주의 마부르크(Marburg)에 위치한 슈타인뮐러(Steinmuhele) 학교의 정경
ⓒ 슈타인뮐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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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특히 독일의 사립학교에 입학하게 된 배경, 동기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슈타인뮐러 김나지움에 다니고 있는 정예원입니다. 현재 한국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7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사립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초등학생 때 영어는 물론이고 중학교 과목을 선행 학습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특목고 준비를 했고요.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학업량이 많기도 했지만, 문제 풀이를 반복하는 식의 공부가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었거든요. 간혹 관심 있는 과목이나 분야가 있을 때도, 학원 스케줄과 시험 때문에 한 분야를 깊게 공부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진지하게 유학을 고민했습니다.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공부를 많이 하기 위해 부모님께 유학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께서도 큰 반대 없이 유학을 고려해 주셨고요. 지난봄, 독일에서 3개월 정도 머물면서 학교 견학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때 독일에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어요. 그렇게 해서 지난 8월부터 슈타인뮐러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 국공립학교와 다른 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학교에서는 어떠한 과목을 배우나요? "제가 다니는 학교는 외국어 특화 고교입니다. 모든 학생이 2개 국어 이상을 공부한다는 점이 일반 국공립학교와 가장 다릅니다. 단순히 언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고, 각 언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역사를 공부한다든지, 스페인어로 수학을 공부하는 그런 식입니다. 물론 어떤 과목을 어떤 언어로 수강할지는 학생이 스스로 결정합니다. 커리큘럼은 학년마다 다릅니다.   
 
제가 다니는 7학년의 경우 기본 과목으로 독일어, 수학, 영어, 스페인어를 배웁니다. 부가 과목으로 화학, 물리, 음악, 체육, 연극을 배우고요. 학년이 올라가면 지리, 사회, 종교, IT 등을 추가로 배웁니다. 이 외에도 '프로젝트 과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학기마다 한두 차례 학생들이 직접 주제와 형식을 정해서 발표하는 수업입니다. 교과 과목 외 특별활동(AG)이 있는데요. 특별활동은 독일의 모든 학교에서 다 하는 것이지만 우리 학교는 그 수가 조금 더 많아요. 요리, 수영, 승마, 골프, DIY 등 40여 가지가 있는데요. 학생들은 취향대로 그중 몇 가지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과학실험을 하는 학생들
 과학실험을 하는 학생들
ⓒ 슈타인뮐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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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있나요? 이유는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과 프로젝트 과목입니다.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학교에서 수학을 잘하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 과목은 제가 직접 주제와 형식을 정할 수 있어 재밌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중세시대'를 주제로 발표했는데요. 주제와 관련된 책과 자료를 읽고 전지처럼 큰 종이에 각종 사진도 붙이고 글도 적은 자료를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발표 내용도 제가 좋아하는 걸 고르고 만들 수 있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음에는 어떤 내용을 어떻게 발표해야 할지, 벌써 다음 프로젝트 시간이 기대됩니다."

- 한국인 유학생으로서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까지 학업 양이 많을 것 같아요. 한국에 있을 때의 학업 양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독일어에 영어, 스페인어까지 사실 공부할 내용이 많아요. 하지만 스트레스는 훨씬 적어요. 거의 없다고 할 수도 있어요. 관심이 없는 과목은 적게, 관심이 있는 과목은 많이 공부할 수 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걸 하니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아요. 저는 한국에서 반복적인 문제 풀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많고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진짜 공부를 하는 기분입니다. 내용을 알아야 수업 시간에 토론을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이곳은 석차를 매기지지 않아서 좋아요."
 
- 사립학교에는 외국인 학생들도 많을 것 같아요. 학생들의 국적 비율은 어떤가요? 
"사립학교라고 해서 외국인이 특별히 많은 건 아니에요. 대부분이 독일인과 유럽인입니다. 중국인도 꽤 많이 있는 편이고요. 한국인은 저를 포함해 총 3명입니다." 
 
- 학창 시절에 학업만큼 중요한 것이 교우관계가 아닐까 싶은데요. 학교 내에서의 교우관계는 어떻습니까? 한국에서 심각한 문제인 왕따 문제는 없는지요?
"실은 교우관계가 가장 어렵습니다. 우선 언어가 다르고, 제가 이들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왕따 문제는 없어요. 대신 끼리끼리 문화가 있습니다. 이미 그룹이 만들어진 경우 그 속에 끼어들기가 쉽지 않아요. 배척하는 건 아니지만 무관심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본인이 적극적이지 않으면 친구 사귀기가 힘듭니다. 저도 적극적으로 친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는 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거로 생각해요."

-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의 관계는 어떤가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사이는 친밀한 편이에요.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합리적이라는 점이 가장 좋고요. 아직은 학생들과 선생님 사이의 마찰을 본 적은 없어요."
 
- 학교 부설 기숙사에서 지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숙사 시설이나 규칙은 어떤가요? 
"기숙사 시설은 정말 좋습니다. 뭐든지 최신식이고요. 밥도 맛있고 좋은 음식도 많이 나와요. 규칙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엄격하지는 않습니다. 핸드폰 사용 시간에 제한이 있고, 수면은 반드시 오후 10시 이전에 해야 하고, 아침은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정도입니다. 그 외 규칙은 모두 학생 자치로 결정됩니다. 억압당하는 느낌은 받지 않아요."
       
슈타인뮐러 건물
 슈타인뮐러 건물
ⓒ 슈타인뮐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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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질의 교육을 받는 예원 양이 참 부럽네요. 장래 꿈이 있나요?
"저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실은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업 스트레스로 마음의 병이 있었거든요. 그때 상담을 받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의 병이 있는 어린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누구보다 제가 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보람도 클 것 같아요. 나중에 꿈이 바뀔 수도 있지만 무슨 일이 되었든, 타인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종류의 일을 하고 싶어요."
 
- 본인처럼 독일에서 유학하고 싶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글쎄요. 오기 전에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독일어도 배워야 하고, 외국에서 부모님도 없는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어떤 유의 고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해결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니 확실한 목표만 있다면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고 결단을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나고 행복해요. 독일로 유학을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야 한다면 '본인만의 확신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네요." 

양질의 교육을 받는 정예원 학생이 참 부럽고, 또 그 미래가 무척 기대되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시고 최선을 다해,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인재로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태그:#독일유학, #독일사립학교, #슈타인뮐러, #마부르크, #김나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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