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어쩌면 허진호 감독의 욕심이었을 것이다. 한국영화 부흥기를 이끈 배우 최민식과 한석규를 한 작품에 다시 풀어놓는 일 말이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아래 <천문>)는 그렇게 허 감독의 머리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물론 부담이 꽤 있었다. 전작 <덕혜옹주> 개봉 당시 역사 표현 문제에서 일부 지적을 받기도 했고, <나랏말싸미> 등 먼저 개봉한 영화에 세종이 등장하기도 했다. 배우 한석규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역할을 이미 소화했고 말이다. 감독의 뚝심과 배우들의 결심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덕혜옹주>를 제작했던 김원국 대표가 제의했는데 처음엔 제가 해낼 수 있는지 고민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하게 됐다. 이야기에 일단 흥미가 있었다. 누구나 다 아는 사람에 대한 거고, 여기에 상상력과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더라.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지금 이 시대와 같이 갈 부분도 있을 것 같았다.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 생각할 때 딱 최민식, 한석규가 떠올랐다. 누가 무슨 역을 하든 내 조건은 두 배우가 같이 했으면 좋겠다였다. 혹시라도 한 사람이 안 한다고 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세종과 장영실 역을 정하지 않고 두 사람이 고민하도록 했다. 아마 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고민했을 것이다." 


역사를 대하는 감독의 마음

결론은 한석규의 세종, 최민식의 장영실이었다. 형인 최민식이 한석규에게 선택권을 줬고, 한석규가 드라마와 또 다른 세종을 표현해보고 싶다며 제안한 결과다. 허진호 감독은 "최민식의 세종도 새로운 선택이고 재밌었을 것 같지만, 임금을 향한 절절한 마음을 떠올렸을 때 최민식의 장영실이 더 어울릴 것 같더라"며 두 배우 선택에 힘을 보탰다. 

가장 부담이 됐던 역사의 고증 문제.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 때 경험을 살려 논란과 영화에 대한 불필요한 비판을 줄이고자 했다.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하는 장영실의 최후를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그리고자 했는데 근거가 바로 실록 등에 표현된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였다. 

"상상력과 극화의 경계에 대해 생각했다. 이 정도까지 상상해도 되지 않을까 한 거지. 사실 <덕혜옹주>를 아주 재밌게 작업한 건 아니다. 영화라는 게 현장성이 중요하고 저 역시 현장에서 대사나 어떤 상황에 변화 주는 걸 좋아하는데 사극은 그게 불가능하거든. 자유롭지 못하지. 근데 시간의 힘인지 역사의 힘인지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크게 상상력을 발휘한 건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사고를 과연 누가 냈냐는 것이다. 기록을 보면 세종이 자신을 위협했던 존재라도 필요하면 등용했거든. 황희도 그렇고, 장영실의 발탁도 당시 시대와는 안 맞는 거니까. 자격루, 관측기 등을 장영실이 만들었을 때 세종이 엄청 기뻐했다고 돼 있는데, 그리고 내관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 장영실을 불러 얘기도 했다는데 과연 그를 마지막에 내쳤을까 싶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 생각할 때 딱 최민식, 한석규가 떠 올랐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래서 지금의 묘사가 가능했다. 허진호 감독은 의리와 능력을 중시했던 세종과 충심과 열정이 가득했던 장영실을 굵은 선으로 놓고 각 인물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여기엔 분명 배우들의 공도 컸다. 영화를 본 상당 관객들이 <나랏말싸미>에서 세종을 맡은 송강호와 다른 매력을 한석규의 세종에서 봤다고들 평을 남기고 있다. 

"<나랏말싸미>와 우리 영화가 촬영 시작 시기는 비슷했다. 우리가 좀 더 빨랐을 걸. 제 입장에선 한석규가 이미 했던 세종과 어찌 다르게 갈지가 컸다. 장영실과의 관계가 핵심이었지. 벗의 관계였다. 두 사람이 누워서 별 보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후원에서 걸으면서 찍기로 돼 있던 거다. 근데 한석규 배우가 영실과 나란히 앉고 싶다더라. 그래서 세트를 준비했는데 이번엔 같이 눕고 싶다고 하는 거다(웃음). 

고민하다가 부암으로 갔다. 거기에 근정전 세트가 있는데 별 보기 좋은 장소거든. 그래서 두 사람이 누울 수 있었던 거지. '신분이 뭐가 중요한가. 같은 꿈을 꾸고 바라보는 게 중요하지'라는 대사가 그래서 살 수 있었다. 군신 관계만이 아닌 벗으로서 더 평등한 관계로 가게 되는 계기였다."  


배우들의 아이디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허진호 감독은 촬영 전 시나리오 각색 단계부터 최민식, 한석규가 참여한 사연을 전했다. 임금의 침실에서 창호지에 먹칠을 하는 것도 이들의 아이디어였다. 별을 보고 싶다 하는 임금을 위해 손수 벽지를 검게 칠해 극적 효과를 내는 장면이 탄생할 수 있던 이유다.

"그 장면에서 감정이 확 살더라. 두 배우 덕이다. 사실 기질이 서로 다르거든. 한석규는 연기하기 전에 생각하는 타입이고, 최민식은 스태프랑 말도 섞고 말 푸는 타입이다. 서로 다르지만 그걸 인정해준다. 그런 모습이 30년 가까이 쌓이면서 조화가 되는 거지. 영화에도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또 한 분, 신구 선생님이 계시지. 배우들이 갖고 있는 존경심이 있다. 허준호, 김홍파 배우 등 다들 너무 좋아했다. 신구 선생님과 연기하고 있구나 하는. 또 젊은 배우들은 최민식, 한석규을 보며 그런 생각할 거 아닌가. 최민식과 신구, 허준호와 신구, 한석규와 신구 이렇게 대립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유 쟁쟁했다. 용호상박이라고 해야 하나. 신구 선생님이 최민식 배우와는 연극 <에쿠우스>, 한석규 배우와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인연이 있더라. 모시고 싶다 해서 제가 직접 찾아갔지."


<천문>은 허진호 감도 본인에게도 큰 자극이었다. 아시아 프로젝트였던 <위험한 관계>(2012), <덕혜옹주>(2016) 등 3, 4년 만에 개봉작을 내놓고 있는 그는 보다 도전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한석규, 심은하, 배용준, 손예진 등 당대 내로라하는 스타와 함께 한 만큼 신인과 중진 배우 발굴에도 힘을 쏟고 싶은 마음을 인터뷰 중 드러냈다. 

"제가 데뷔했던 1998년과 비교했을 때 지금이 어려운 시기는 맞는 것 같다. 그땐 한국영화 르네상스라는 말처럼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감독이 많이 나왔던 시기였던 것 같다. 점점 그런 영화가 나오기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 자본의 문제인지 시스템 문제인지 아니면 가치관 문제인지 고민하고 있다. 또한 주류가 될 순 없겠지만 다양한 영화가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도 한번 그렇게 찍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요즘 제작비가 굉장히 올라 어려운 선택이겠지만, 충분히 고민해야겠다. 영화라는 게 학연, 지연 이런 거 없잖나. 그런 점에서 참 평등한 것 같다. 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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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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