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은 퇴근길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그날따라 길이 밝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레 옆을 봤다. 공사가 끝난 아파트 전 세대에 불이 켜져 있었다. 달동네라 불린 구역을 갈아엎고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 느껴졌다.
"내가 이 동네에서 나가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서울특별시 북서부에 위치한 은평구. 이곳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14년째 살면서 많은 변화를 목격했다. 현재 백련산 힐스테이트와 그 주위 아파트가 들어서며 가게들이 부동산으로 바뀌고 편의점이 하나 더 생겼고, 새절역과 아파트를 오가는 마을버스 은평 08-1, 02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한곳에 오래 머물면 나도 모르게 스며들게 된다. 학교를 가던 길,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연신내, 따릉이를 타고 불광천을 달린 기억, 가을을 느끼려고 올랐던 은평 둘레길, 백련사를 지나 은평정에 올라서 바라본 은평구.
사소하지만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응암동, 대조동, 갈현동 곳곳에 붙어있는 이전고시, 지역주택조합, 조합원 모집 현수막을 보면 섭섭하고 마음이 이상해진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이 동네를 떠나야 한다. 지금은 마음만 이상하지만 몇 년 후엔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현실적인 문제들과 부딪힐 테고, 떠나지 않더라도 현재와는 다른 은평구에 살게 될 것이다. 좁은 골목과 빨간 벽돌, 작은 시장, 예스럽다 느꼈던 간판들을 추억으로만 남겨야 한다.
최근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서 동네를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더 많이 보고, 찍고, 남기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사진을 보면 많은 것이 떠오를 것이다. 사람이라는 이유로 기록을 '하는' 주체 같지만 우리도 하나의 기록이다. 은평구에 사는 기록이 남기는 우리 동네의 기록.
덧붙이는 글 | 현재 트위터 계정 [은평필름(@eunpyeongfilm)]에서 은평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은평구에 사시는 분, 놀러 오신 분, 지나가다 보신 분들, 모든 분들의 사진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