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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수비대가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 등 이라크 내 미군 주둔 기지 여러 곳을 향해 탄도미사일 수십발을 발사한 지난 8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 등 이라크 내 미군 주둔 기지 여러 곳을 향해 탄도미사일 수십발을 발사한 지난 8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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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늘 숭고하고 아름다운 가치들과 함께 시작된다. 민주주의, 정의, 미래, 평화 같은 단어가 전쟁을 일으키는 명분으로 동원된다. 그래야 사람들이 전쟁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결정하는 사람은 정치권과 군부의 소수 엘리트지만, 그들도 국민의 지지나 동의가 없다면, 최소한 국민들이 반대하지는 않아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민주적인 절차가 갖춰진 국가에서는 의회에서 전쟁이나 파병을 승인받아야 하고, 독재국가라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협조가 없다면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군인들에게 필요한 물자나 서비스 같은 것들은 후방의 국민들이 생산한다. 그런데 국민들이 전쟁에 부정적이거나 비협조적이면 이런 것들이 원활히 지급되지 않고 전쟁을 수행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쟁은 늘 사람들이 전쟁을 찬성하게끔 만드는 뭔가를 말하면서, 사람들이 알게되면 전쟁을 반대할 것 같은 뭔가는 말하지 않는다.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된 대량살상무기가 전쟁이 말한 것이었다면, 이라크 전쟁으로 헬리 버튼이 1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사실은 전쟁이 말하지 않은 것이다. 전쟁이 말한 것은 거짓이었고, 전쟁이 말하지 않은 것이 진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에 동원되는 대의명분을 의심하고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전쟁, 정의롭지 않은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은 소수의 정치인과 군인에게 있지만,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시민들에게 있다. 우리는 이 힘을 잘 사용해야 한다. 꼭 전면적인 전쟁뿐만 아니라 파병처럼 전쟁에 동참하는 행위, 그리고 갈등을 유발하고 키우는 군사행동 모두에 해당한다.
  
파병이 말하는 것과 그 이면  
 
미국과 이란의 무력충돌 우려가 일단 잦아든 지난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 종합상황실에서 관계자들이 호르무즈해협, 페르시아만에 있는 우리 선박들의 위치 등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 호르무즈 해협 우리 선박 주시하는 해수부 미국과 이란의 무력충돌 우려가 일단 잦아든 지난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 종합상황실에서 관계자들이 호르무즈해협, 페르시아만에 있는 우리 선박들의 위치 등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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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다양한 통로로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 파병을 요청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14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한국군 파병을 요청하기도 했다.

미국이 이란의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암살하고,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공격하면서 전면전으로 확전될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강경화 장관은 "미국과 입장 반드시 같을 수 없다"라며 파병하지 않는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전면전으로 확산될 조짐이 해소된 뒤 정부의 입장은 미묘하게 달라졌다. 여러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정부는 아덴만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를 호르무즈 해협 근처까지 변경해 청해부대를 파견하려고 하고,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단독작전을 수행, 즉 '독자적 파병'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병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쪽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원유수송로를 확보해야 하고, 유조선에 탑승한 한국 승무원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 대의명분 역시 얼핏 듣기에 그럴싸해 보인다. 원유 수송이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가 응당 해야 할 일이고,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동맹국과의 관계를 통해 국익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대의명분들의 이면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조금 다른 결론에 도출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전 세계 원유 유동량의 20%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들의 이해가 얽혀 있는 곳이다. 이곳에 너도나도 군대를 파견하면 군사적 긴장도가 올라가게 된다. 긴장이 올라간 상황에서는 별 거 아닌 일이 별일이 되기도 하고, 실수나 우연으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얼마 전 이란이 우크라이나의 항공기를 실수로 격추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란과 미국 사이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치달은 데서 기인한 비극이었다.

정부는 호르무즈 파병을 통해서 원유수송로를 확보하고 한국 승무원들의 안전을 지키겠다고 하지만, 오히려 파병은 군사적 긴장도를 높여 승무원들의 신변을 위험하게 하고 수송로 또한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킬 수도 있다. 파병을 하며 내세운 명분들을 진정으로 달성하기를 바란다면 한국 정부는 파병 대신 다른 행동을 고려해야 한다.

파병이 말하지 않는 것 - 전쟁 이후의 반성과 성찰 
 
지난 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 등이 연 '미국의 이란 공격 규탄, 호르무즈해협 한국군 파병 반대'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이란에 대한 공격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 등이 연 "미국의 이란 공격 규탄, 호르무즈해협 한국군 파병 반대"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이란에 대한 공격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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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직후 미국과 영국, UN 등은 자체 보고서를 작성했다. 미국 의회의 9.11진상조사위원회는 2004년 7월 최종보고서에서 9.11 테러가 이라크와 연관이 없다는 공식 결론을 내렸고, 미상원 정보위원회는 2004년 7월 1차보고서에서 "이라크 전쟁은 잘못된 정보로 시작됐다"라고 결론내렸다. 핵 프로그램, 생화학 무기, 무인기 등을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다는 미 행정부의 주장이 대부분 과장됐거나 근거가 없다고 인정한 것이다.

영국 또한 상원 의원 버틀러를 책임자로 조사위원회를 만들었는데 버틀러 조사위원회는 2004년 7월 보고서를 내며 "45분 이내 대량살상무기를 실전배치할 것"이라는 정보는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전쟁의 명분이 됐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영국 정부의 정보가 '심각한 결함'을 가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의 군대를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은 이라크 전쟁과 파병에 대해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흔히 안 좋은 맥락에서 쓰인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실수와 실패로부터 배우고 반성하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과 파병에 대해 미국과 영국은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쳤는데, 한국 정부는 외양간도 고치지 않은 셈이다.

국익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를 핑계로 파병을 했지만 실제로 어떤 국익에 어느 정도로 발생했는지, 아니면 파병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한국 정부는 제대로 성찰이나 반성을 하지 않은 채 또 다시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을 검토하고 있다.

파병이 말하지 않는 것 - 병역거부 
 
전쟁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전쟁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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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이 말하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다. 한국군을 파병할 때마다 이에 저항하는 적극적인 반대 시위나 시민 불복종이 존재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반전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거세게 일었고 한국에서도 많은 시민이 국회 앞에서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며 파병동의안이 통과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역 군인 중에서도 시민불복종으로서 전쟁반대, 파병반대를 외친 이도 있었다. 당시 이등병이었던 강철민은 2003년 11월 21일, 휴가 마지막날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파병 반대를 외치며 농성을 시작했다. 자신은 가장 계급이 낮은 이등병이지만 그런 자신이 보기에도 이라크 전쟁은 정당한 전쟁이 아니며 침략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해서는 안 된다고,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군대의 일원이기를 거부한다며 병역거부를 했다.

전쟁과 파병에 맞선 병역거부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전쟁 당시 권투 세계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왕좌의 게임> 원작자 조지 R.R. 마틴을 비롯한 수많은 미국 젊은이가 전쟁을 반대하며 병역거부를 했을 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인들도 병역거부를 했다. 한국 국적으로 미국에 입양돼 미군에 입대한 김진수는 베트남으로 파병이 되자 휴가지인 일본에서 탈영해 쿠바 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행하고 있는 현재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오늘날의 한반도의 비극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어, 확실한 변혁의 가능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그래서 현재의 한반도 사람들에게 재통일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뭔가를 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탈영이라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김진수가 미군이었다면, 한국군에서도 파병에 저항하며 병역을 거부한 군인들이 있었다. 제주도 출신 김이석은 1964년 베트남 파병이 결정되자 이를 거부하며 탈영을 감행한다. 김이석은 이후 일본으로 밀항하여 가족과 함께 지내다 일본 정부에 발각돼 1982년 한국으로 강제송환 된다. 감리교 신자이기도 했던 김이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앙으로 보아도 양심으로 보아도 베트남까지 가서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용납할 수 없었다."
 
김동희는 한국 전쟁 이후 가난 때문에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1960년 한국으로 강제송환되고 입대하게 된다. 전역을 6개월 남긴 시점에서 베트남 전쟁에 파병이 결정되고 김동희는 탈영을 한다. 이후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일본에 망명신청을 한다.
 
"일본국 헌법 전문 및 제9조의 전쟁 포기를 규정한 평화주의를 관철하려 노력하는 일본국에 망명한 것입니다."
 
일본이 과연 평화주의 국가인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겠다. 하지만 김동희가 병역거부를 평화주의에 입각한 반전운동으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칼이 쟁기가 되는 기적이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일어나길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24일 오후(현지시각)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24일 오후(현지시각)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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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세계가 함께 한반도에서 칼이 쟁기가 되는 기적을 만들자'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칼이 쟁기가 되는 기적을 신의 힘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이루려면 그에 합당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노력에는 국경선이 존재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칼이 쟁기가 되려면 호르무즈에서도 칼이 쟁기가 돼야 한다. 우리가 호르무즈 해협의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동참한다면, 과연 우리가 한반도에서 기적에 동참해달라고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기적을 만들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을 변경해 호르무즈에 '꼼수 파병'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한국군 파병의 역사에서 말하지 않은 것을 이제라도 국민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한국군이 참전한 그 전쟁들이 과연 정당했는지, 우리 젊은이들을 그 사지로 몰아넣은 일이 온당했는지, 파병으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파병된 한국군이 해당 지역에서 어떤 일을 했고 그 중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없었는지 등 이제라도 해야 할 말들이 너무 많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용석씨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유튜브 채널 'speaker for peace'의 영상 <호르무즈해협 파병 이슈, 천천히 들여다보기>(https://youtu.be/PwwPpsJPvSE)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 글 <[베트남전쟁과 평화운동] 병역거부라는 ‘빗금’을 그리다 – 베트남전쟁 시기의 병역거부>(http://www.withoutwar.org/?p=14270)를 참고했습니다.


태그:#파병반대, #호르무즈 해협, #전쟁이 말하지 않는 것
댓글9

모든 전쟁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신념에 기초해 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활동하는 평화주의자?반군사주의자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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