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Notorious)' 코너 맥그리거(32·아일랜드)가 돌아왔다. 맥그리거는 19일(한국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T-모바일 아레나서 있었던 'UFC 246' 메인이벤트 웰터급매치서 '카우보이' 도널드 세로니(37·미국)를 1라운드 TKO로 잡아냈다. 경기를 끝내는 데까지 40초밖에 걸리지 않았고, 지켜보던 팬들은 빅스타의 귀환에 큰 함성으로 화답했다.

맥그리거는 세로니와의 경기를 앞두고 연 기자회견에서 "그는 동화책처럼 읽기 쉽다"라고 말했다. 자신보다 상위체급에서 뛰던 파이터지만,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에 세로니는 "알파벳 학습지를 가져오라"고 맞대응하며 기자회견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결과적으로 맥그리거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누가 이기든 만만치 않은 접전이 예상 되었던 것과 달리 맥그리거는 세로니를 아주 가볍게 눌렀다. 2018년 10월 하빕 누르마고메도프(32·러시아)전 패배의 여파는 없었고 우려했던 연패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불어 페더급, 라이트급, 웰터급에 걸쳐 3체급에서 넉아웃 승리를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승리 후 맥그리거는 언제나 그랬듯 거만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세로니는 허탈함이 큰 기색으로 고개를 떨궜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패했던지라 아쉬움이 가득해보였다. 네이트 디아즈처럼 함께 빛날 수 있었던 기회에서 맥그리거를 띄워주는 조연 역할에 그치고 말았다.

슈퍼스타 맥그리거의 승리에 많은 동료 파이터들이 SNS를 통해 축하 및 본인의 의견을 기재했다. 특히 '원더보이' 스티븐 톰슨(37·미국)은 최근 들어 맥그리거와 경기를 갖고 싶다는 희망을 계속해서 밝히고 있는데 이날도 평소의 차분한 이미지답지 않게 약간의 도발성 멘트까지 섞어 쓰며 맥그리거를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맥그리거와 맞붙고 싶어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닌지라 도발여부와 관계없이 경기 성사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인상 깊었던 것은 NBA(미 프로농구)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36·LA 레이커스)의 SNS다. 맥그리거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제임스는 이날 '챔피언의 귀환을 환영 한다'며 승리를 축하했다. 종목을 넘어선 맥그리거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악명 높은(Notorious)' 코너 맥그리거가 돌아왔다.

‘악명 높은(Notorious)' 코너 맥그리거가 돌아왔다. ⓒ UFC 아시아 제공

 
어깨공격에, 킥까지… 맥그리거의 진화
 
이날 경기 전까지만 해도 맥그리거가 펀치거리를 만들 수 있느냐와 세로니가 사이즈의 이점을 살려 원거리 타격을 효율적으로 펼칠 수 있느냐 등이 승부의 키포인트였다. 그동안 양 선수가 보여온 파이팅 스타일과 서로간 장단점을 감안한 전망이었다. 세로니의 노쇠화, 맥그리거의 공백 기간 등도 변수로 꼽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경기는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자신보다 체격은 작지만 펀치 테크닉이 빼어난 맥그리거를 맞아 세로니는 주먹 싸움을 벌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를 입증하듯 맥그리거의 선제공격이 빗나가기 무섭게 클린치 싸움을 걸었다. 킥과 그래플링에서 앞선 선수들이 그렇듯 어설픈 중거리를 허용하지 않은 채 원거리 아니면 근거리를 정하고 나온 듯했다.

오랜만의 복귀전이었지만 맥그리거는 준비를 잘하고 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클린치로 달라붙는 세로니의 안면을 이른바 어깨치기로 공략했다. 어깨치기는 케이지 구석에서 클린치 싸움을 벌일 때 간혹 나오는데 데미지 자체를 많이 주는 경우는 드물다. 상대와의 거리를 벌리거나 다음공격을 이어나가는 용도로 보통 쓰인다.

맥그리거의 어깨치기는 달랐다. 옥타곤 중앙에서 과감하게 쓰인 것도 놀라웠지만 정확하게 연달아 들어가는 어깨치기에 세로니가 적지 않은 충격을 입었다. 당황한 세로니는 흔들렸고 이어진 대치상황에서 맥그리거에게 또다시 허를 찔렸다. 데미지를 입은 상대를 맥그리거가 추격할 때는 십중팔구 펀치가 나간다. 세로니도 이를 의식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맥그리거가 선택한 공격은 하이킥이었고 세로니의 안면에 제대로 들어갔다. 세로니가 크게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자 그제야 펀치에 이은 파운딩 연타를 퍼부으며 경기를 끝내버렸다. 전략 싸움 및 작전수행능력에서 맥그리거가 완전히 압도한 순간이었다.

맥그리거가 하이킥을 통해 승기를 잡았다는 부분은 의미가 크다. 그간 맥그리거에게 킥은 보조옵션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경기 중 맥그리거는 큰 동작으로 사이드 킥이나 프런트 킥을 차든가, 아니면 기습적인 뒤돌려차기를 구사한다. 정교함보다는 압박해서 케이지 구석으로 모는 효과가 컸다. 크게 킥을 차면 상대는 뒤로 물러났고 이를 뒤따라가 펀치로 공격하는 패턴이었다.

연속적인 어깨치기로 데미지를 준 부분 역시 신선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어깨치기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 대부분 파이터라면 쓸 줄 아는 기술이다. 경기의 승패를 가를 만큼 효과적인 경우가 많지 않아 활용도 높은 공격은 아니다.

하지만 맥그리거는 어깨치기도 사용 여하에 따라서 강한 타격을 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예전 료토 마치다, 앤더슨 실바가 앞차기를 활용해 하이라이트 장면을 만들어낸 장면이 떠오른다. 세로니가 예상치 못한 부분도 있었겠으나 옥타곤 중앙에서 클린치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연속해서 클린히트가 들어갔다는 것은 맥그리거가 전략적으로 어깨치기 공격을 많이 훈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의 맥그리거는 강력한 카운터 펀처 이미지가 강했다. 실제로 그는 최고의 펀치 테크니션이다. 특별히 무시무시한 펀치 파워를 가졌다든가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체시력과 반응속도가 좋아 정확하게 빈틈에 정타를 넣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른바 맞추는 솜씨가 빼어나다고 할 수 있다.

맥그리거는 효율성 있는 공격의 대가다. 단발성으로 툭툭 건드리듯 공격을 펼치면서 상대의 허점을 끌어낸 후 정타가 들어갔다 싶은 순간 순도 높은 연속공격을 쏟아낸다. 앞손, 뒷손,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 등 어떤 식으로 펀치가 나가도 파괴력 있는 펀치 연타를 이어가는 게 가능하다.

'언더그라운드 킹' 에디 알바레즈(36·미국)를 잠재워버린 경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치고나가면서 넣는 공격조차 매우 정확한 편이다. 통산 86%의 넉아웃 승률을 자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렇듯 정확성, 타이밍 위주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맥그리거에게 언제부터인가 팬과 관계자들은 '핀포인트 타격가'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세로니 전에서 드러났듯 만약 맥그리거가 펀치 외에 다른 무기들을 효과적으로 장착했다면 그 까다로움은 한층 더할 것이 분명하다. 맥그리거와 맞서는 상대가 킥을 견제하다 펀치를 허용하는 그림도 그려진다.

물론 아직은 속단하기 이르다. 앞으로 맥그리거와 빅매치를 벌일 선수들은 세로니보다 강한 랭커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과의 경기에서 통하느냐가 중요하다. 과연 세로니전 넉아웃 승리는 맥그리거에게 진화의 시작일까 아님 맞춤전략의 승리일까. 흥행머신의 다음 경기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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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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