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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자 정치인들로부터 도착한 문자 메시지.
 새해가 되자 정치인들로부터 도착한 문자 메시지.
ⓒ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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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 되면 스스로 유명인사가 된 듯한 착각에 휩싸인다. 하루가 멀다고 정치인들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도착하기 때문이다. 일면식조차 없는데도, 이들은 자상하게 안부를 묻고 덕담까지 아끼지 않는다.

올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해가 되자 전직 지자체장과 국회의원 등 전·현직 정치인들로부터 '만사형통을 기원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투표일인 4월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문자 빈도도 잦아졌다.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회사 선배는 그가 속한 지역구 국회의원뿐 아니라 지역구 출마 후보자들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했다.

머릿속에서 의문과 걱정이 함께 커져갔다. 국회의원 후보자는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까? 혹시 불법적인 방법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은 아닐까?


후보자가 전화번호를 얻는 세 가지 방법

현직 국회의원 비서관 A씨와 지역구 총선 출마를 결정한 한 후보자의 일을 돕는 B씨의 말을 종합하자면, 후보자들이 전화번호를 얻는 데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후보자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명함을 모으는 게 첫 번째 방법이다. 지역구를 돌면서 만나는 이들의 번호를 자연스럽게 얻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지자들이 후보자에게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는 전화번호를 '통으로' 넘기는 경우다. A씨는 2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전화번호를 건네는 이들은) 단순한 열성 지지자라기보다 후보자가 국회의원이 되면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번호를 넘겨준다"라고 말했다. A씨는 또 "후보자와 평소 친하게 지냈던 종교지도자들이 민원 처리를 부탁하면서 신도들의 번호를 넘기기도 한다"라며 "굉장히 흔한 경우"라고 덧붙였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서명부'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번호를 얻는 방식이다. 현직 국회의원들이 재선에 나설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서명부란 곧 '서명한 목록'이다. 지역 주민들은 종종 '철도를 놓아 달라' '아파트를 지어 달라'며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가 적힌 서명부를 국회의원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받은 서명부를 잘 모아뒀다가 선거철이 되면 전화번호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수신거부 할 수 있다던 080 번호, 사실은 가짜?

이렇게 받게 된 선거홍보 문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더 이상 문자를 받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해, 메시지 하단에 '수신거부를 원하면 연락하라'며 080으로 시작하는 번호를 달아뒀다는 점이다. 기자 휴대전화로 온 홍보용 문자 속 080 번호로 연락해보니 실제로 '수신거부 등록 서비스'라는 자동응답시스템(ARS)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선거홍보 문자에 수신거부용 번호를 적는 건 공직선거법 제82조의5에 따른 의무사항이기도 하다. 문자를 보낼 때 지켜야 할 양식을 정해둔 이 법에 따라, 후보자는 문자를 보낼 때 제목에 '[선거운동정보]'를, 내용에 불법 수집정보 신고번호(118)와 수신거부 문구, 수신거부용 전화번호 등을 표시해야 한다.

하지만 비서관 A씨는 "누군가 직접 080 번호로 전화해 ARS로 수신거부를 요청한다 하더라도 그가 실제로 후보자의 문자 송신 목록, 일명 '전화번호 데이터베이스'에서 빠질 가능성은 적다"라고 전했다. "ARS는 페이크(가짜)"라는 것이다.

그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수신거부용 ARS 번호를) 만들어뒀지만, ARS를 통해 자동으로 문자가 수신거부되는 시스템을 갖춘 후보자들은 많지 않다"라며 "이 때문에 수신거부를 했는데도 계속 문자를 받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말 문자를 받고 싶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는 "선거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야 한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많은 누리꾼들이 "수신 거부를 해도 문자가 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컴퓨터 관련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누리꾼 C씨는 "080 전화번호로 수신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다음날 또 다음날 같은 번호로 어김없이 선거 문자가 도착했다"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은 문자메시지에 수신거부할 수 있는 번호만 적도록 하고 있다"라며 "실제로 수신거부 처리가 이뤄지는 시스템을  후보자가 갖추고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라고 밝혔다.  

010 번호, 후보자 개인번호일까?

선거홍보 문자의 또 다른 공통점은 문자를 보내는 휴대전화 번호 대부분이 '010'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언뜻 후보자 개인 휴대전화 번호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21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한 후보자를 돕는 B씨는 "대부분의 후보들이 선거철에 휴대전화를 새로 만든다"라며 "쓰리폰(휴대전화 3개)을 쓰는 후보자도 봤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해당 번호로 연락했을 때, 후보자나 관계자가 전화를 받을 확률도 '제로'에 가깝다고 했다. B씨는 "전화가 온다면 대부분이 문자를 보낸 데 대한 '항의 목적'일 텐데 누가 받고 싶겠냐"라고 되물었다.
 
선거 홍보 문자는 대부분 '010'으로부터 온다. 언뜻 후보자 개인 핸드폰 번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선거 기간이 되면 대다수의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홍보용 핸드폰을 따로 만들어 이용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말이다.
 선거 홍보 문자는 대부분 "010"으로부터 온다. 언뜻 후보자 개인 핸드폰 번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선거 기간이 되면 대다수의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홍보용 핸드폰을 따로 만들어 이용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말이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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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후보자들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A씨와 B씨는 입을 모아 "홍보 효과가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는 "문자 반응이 좋든 나쁘든 노이즈마케팅을 하는 것"이라며 "(유권자들이) 공보물은 보지 않지만 문자는 욕을 하더라도 일단 본다, 마케팅 효과가 좋다"라고 말했다.

B씨 역시 "문자는 사람들이 욕을 하면서도 본다"라며 "공직선거법상 문자 전송 규정은 꽤 까다로운데, 그만큼 문자가 홍보에 효과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태그:#총선, #선거운동정보, #총선 문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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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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