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집에서 본 장도 풍경(가운데 긴 섬이 장도다).
ⓒ 임현철
남도의 바다는 툭 트인 동해와는 다른 아기자한 맛을 선사한다. 이 맛을 음미하다 보면 저 섬에 누가 살고 있을까, 무엇을 하며 살까 등의 궁금증을 갖게 되고, 결국 섬을 찾게 된다.

하루도 빼지 않고 거의 매일 보는, 바다 가운데 자리한 섬. 집에서 아무 때나 보는 지척거리의 섬. 여수시청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 이내에 위치한 섬. 과연 어떤 섬일까? 궁금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서게 되었다.

▲ 선소 지나 오솔길을 걸으면서 접하게 되는 섬, '장도'
ⓒ 임현철
@BRI@이순신 장군이 나대용 장군과 함께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선소(船所)'를 거쳐 오솔길을 가다보면 그 섬이 보인다. 그 섬 '장도'는 여수시 웅천동과 다리로 연결되어 '섬 아닌 섬'이다. 하여, 아무 때나 갈 수 있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다리 높이가 낮아 물이 찰 때는 건널 수 없기 때문이다.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다리 옆 바닷가에서 아낙이 조개를 캔다. 옆으로 웅천 택지개발 현장이 보인다.

"조개 좀 있나요?"
"요새, 통 업써."
"저 섬에 몇 가구나 사나요?"
"다섯 가구. 섬사람들 고생이지. 물 때 맞춰야지, 바람 불 때 피해야지. 저 사람들은 배로 많이 다녀. 시내가 지척인디도 고생이지."

다리에 올라 찬바람을 헤집고 종종 걸음으로 걸어간다. 물이 들면 잠기는 다리여서 녹조류가 끼어 미끄럽다. 앞섰던 아이들이 "미끄러워요 조심하세요" 한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며 걸어간다. 3분여 만에 '장도'에 닿는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건너 소호동에 유명 대기업의 사택들과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갯것을 한다. 조개와 굴이 껍질 채 담겨 있다.

▲ 장도로 향할 때는 물 때를 잘 맞춰야 한다. 바닷물이 넘나드는 다리 위에는 따개비와 녹조류가 붙어 있어 조심해야 한다.
ⓒ 임현철
▲ 물이 빠져 다리가 드러난 장도 초입에서 갯것하는 아낙(좌). 다리가 물에 잠기면 본래의 섬이 된다(우).
ⓒ 임현철
"저 다리 언제 놨어요? 건널라믄 때를 잘 맞춰야겠네요?"
"아이들 학교 보내기 힘들었제. 한 30년 됐는갑다. 다리 노코(놓고) 첨모냐는(처음에는) 간조 때 뽀도시(겨우) 드러나 걸어 댕기기도 힘들었꾸마. 동네 사람들이 돈 모아 1m 정도 올렸꾸마. 글고 괜찮어. 만조 땐 못 댕기지만 배가 이쓴께 밸 문제업써."
"아, 그래요. 섬 이름이 뭐예요?"
"장도여 장도. 섬이 질다(길다) 해서 장도여."

섬을 둘러 본다. 여느 섬과 똑같이 해안가에 어구들이 늘어져 있다. 시청과 가까운 곳에 있다 뿐 섬의 모습이다. 육지와 가까운 섬이라서 다른 섬과 색다른 모습을 기대했나 보다. 사람 모습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그 틈을 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강아지도 사람과 놀고 싶었겠지.

▲ 어구와 어울린 소호동의 아파트.
ⓒ 임현철
국유지라는 옆의 가덕도가 예쁘게 다가온다. 우물을 지나 언덕배기로 오른다. 집이 한 채 보이고 소가 길 가운데서 풀을 뜯고 있다. 집에 사람이 있나 봤더니 외양간이다. 밭에는 당귀, 떡쑥, 배추, 파, 갓, 시금치 등이 자라고 있다. 떡을 해먹는 떡쑥을 전문적으로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에 걸린 수세미가 인상적이다.

밭과 밭 사이 경계 구분으로 쳐 놓은 그물을 넘어 다도해 경치를 감상한다. 보통 아니다. 섬에서 느끼는 정취 때문일까? 또 다르다. 집에서 매일 보는 일상인데 위치에 따라 이리 맛이 다르다니. 육지에서 보는 섬과 섬에서 보는 육지의 차이 같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여유를 선물로 주는 듯하다.

배가 들어온다. 부부가 말쑥하게 차려 입은 걸 보니 시내에 일 보고 오는 길이다. "계 치르고 온다"는 그들을 따라 들어간다. 정정훈(69)씨가 소 여물을 주고 옷을 갈아입는다.

▲ 나무에 걸린 수세미와 어울린 소호동 아파트(좌). 찾아온 자식들 먹이려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뭐가 끓고 있을까?(우)
ⓒ 임현철
▲ 장도에서 본 다도해.
ⓒ 임현철
"시내가 코앞인 섬사람 애환 좀 들어보면 좋겠는데요?"
"뭘라고 물어 본다요. 말 허믄 반영이 돼야제, 반영도 안되는 거 말해 뭐 하긋쏘."
"가슴이라도 시원허게 말 한 번 해보세요?"
"전에는 여천군 돌산면 경호리 장도에서, 80년 땐가 경도가 여수로 바뀌자 여기는 가차운(가까운) 여천시로 편입됐지. 그리고 3려가 통합돼 여수로 됐고. 옛날 경도에 있을 때가 젤 좋았제. 그땐 (바지락 등) 양식장 허가도 공동 소유로 우리끼리 해 묵고, 섬 자체를 우리 맘대로 했는디…….

여천시로 변경됀께 바다, 조개, 홍합 양식장도 다 (육지 어촌계에) 뺐개 불고, 다시 찾을라 해도 안돼. 여그는 우덜꺼시(섬 사람 것이) 아니여, 육지 사람 덜꺼지. 우리가 헐 수 있는 건 업써. 조상 때부터 살아 왔는디, 고기 안 잽히지, 양식장도 뺐개 부렀지, 이제 농사 밖에 헐 게 업써.

행정구역 변경 전에는 돈도 많이 벌고, 우리끼리 재밌게 살았는디 인자는 사람 사는 디가 아니여. 사람이 없으니 시에서 통 하나도 안해줘, 시내와 가까와 섬 혜택이 통 업써. 지금까장 다리 보수공사만 했쓴께. 즈그들만(육지 사람) 잘 묵고 살지."

▲ 소 여물을 챙겨주고 있는 정정훈씨.
ⓒ 임현철
"아이들, 학교는 어디로 다녔나요?"
"아그들 갤치는 게 젤 문제였지. 통학 땜에 골치 아팠써. 쌍봉초등학교로 댕겼는디 노를 저어 통학시켰지. 글고, 중학교부텀 방 얻어 공부했고. 두 집 살림이 얼매나 힘든지나 알어?"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도 아니고, 코 앞인데 방 얻어 공부해요?"
"그럼 어쩌, 할 수 없지. 초등학교와 중학굔 달라. 그래야 공부허지."

아이들 가르치려고 중학교부터 유학(?)시키는 걸 보니 역시 섬은 섬이다. 다리를 건넌다. 물이 차고 있지만 넘실거리기엔 아직 여유가 있다. 따라 다니던 개가 막무가내로 쫓아온다. 돌을 몇 개 던지고서야 다리로 간다. 우릴 멀끔히 바라보는 개. 씁쓸히 다리를 건너다 뒤돌아보고, 건너다 뒤돌아보고를 반복한다.

오솔길에서 짐을 들고 바삐 장도로 가는 사람을 만난다.

"장도 가세요?"
"예."
"아직 괜찮으니 쉬엄쉬엄 가세요."

아는 체를 한다. 풍경으로만 보던 섬, 장도. 육지에 채여 숨 쉴 틈새를 찾으려 애쓰는 장도. 이렇게 섬을 알아간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장도에 가자 조른다. 아이들이 이름 지었던 따라다니던 개 뽀삐가 보고 싶다고 한다. 뽀삐, 외로움 잘 견디고 있겠지?

▲ 개와 어울리는 아이들.
ⓒ 임현철
▲ 장도로 돌아가는 아주머니의 발걸음이 날래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