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왜 그런 학교에 가야 해?"

중학교 3학년이던 아들 진수에게 처음으로 꿈틀리인생학교 얘기를 꺼냈던 2015년 가을, 그의 반응은 그랬다. 남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다 고등학교에 가는데 엄마가 왜 자기만 특별한 학교에서 1년간 보낼 것을 권하는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학생들에게 1년간 '옆을 볼 자유'를 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꿈틀리인생학교(교장 정승관, 이사장 오연호)는 당시 2016년 2월 개교를 목표로 1기 학생들을 모집하는 중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학교에 아이를 보낸다는 것이 모험이긴 했지만 올바른 교육에 관심이 많은 대한민국의 한 엄마로서 나는 꿈틀리인생학교가 표방하는 '3가지의 괜찮아'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쉬었다 가도 괜찮아.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나 진수는 고등학교에 가기 전 1년 동안 인생을 설계하면서 쉬었다 가는 이 학교를 선택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꿈틀리인생학교에서 1년 쉬었다가 고등학교에 가면 한 살 어린 동생들과 공부를 해야 하고, 동갑내기 친구들을 선배라고 불러야 하잖아!"

그래도 한번 꿈틀리인생학교 캠퍼스를 방문해 보자고 하고 어느 주말 강화도에 있는 학교(강화군 불은면 넙성리)로 향했다.

"여기는 배우길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꿈틀리 4기 쉬는 시간
 꿈틀리 4기 쉬는 시간
ⓒ 꿈틀리인생학교

관련사진보기

 
옛 신성초등학교 자리에 있는 꿈틀리인생학교에 들어서자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주변의 농가와 밭들과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싸인 넓은 운동장이 눈에 들어오자 진수의 표정이 달라졌다. 1년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매일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맘껏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들뜨기 시작했다.

교실에 들어가 기다리던 선생님으로부터 일과를 비롯해서 1년 동안 진행되는 수업과 활동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진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원서를 쓰겠다고 말했다. 서류접수, 학생 및 부모님 면접을 거쳐 합격이 확정됐다. 입학 전에 오리엔테이션이 며칠 동안 진행됐다.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와서 진수가 가장 먼저 한 얘기는 이거였다.

"엄마, 1년 후배들이랑 학교 같이 다니는 거... 괜찮을 것 같아."

이렇게 시작된 꿈틀리인생학교 생활, 진수도 진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기대됐다. 진수가 집으로 오는 주말이 기다려졌다. 진수를 만나면 질문을 쏟아부었다. 너무 호들갑 떠는 건 아닌지 조심하면서.

진수는 주말마다 친구들 만나러 나갔기에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없었지만, 강화도에 있는 학교로 돌아갈 때 차로 데려다주는 날이 많아 그 시간에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선 친구들에 관해 진수가 얘기했던 내용이 기억난다.

"꿈틀리에서 만난 친구들 참 멋진 것 같아. 대부분 자기 생각과 주장이 분명해. 그리고 다른 사람 생각도 존중해 주고."

친구들이 개성과 재능이 다양해서 좋다고도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 노래를 잘하는 친구, 외국어를 잘하는 친구, 악기를 잘 다루는 친구, 뭔가를 배우고 싶은 친구들이 많아."

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옆을 볼 자유'에서 나오는 여유가 친구들의 장점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게 하는구나.

진수는 또 꿈틀리인생학교에서 자기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식당 음식 문제 등 자기 생각을 분명히 제시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이 학교는 '내 의견을 당당히 말할 자유'를 허락해 주는 곳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물론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풀이 죽어 있었다. 늘 좋을 수만 없다는 것을 알기에 먼저 말 안 하면 그냥 기다려 줬다.

진수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배고파! 심심해!" 였을 정도로 아들은 놀고 먹기 좋아하는 세상 단순한 막내였다. 그가 꿈틀리인생학교를 다니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에 안심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말에 학교 친구들과 함께 집에 왔다 가기도 하고 연휴나 방학 때면 떼로 몰려오기도 했다. 진수의 누나들은 "눈치 없이 좁은 집에 데리고 온다"고 눈총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로서 나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사회성이 높아지는 듯해 흐뭇했다.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생활규칙과 프로그램 등 모든것을 다모임에서 결정한다.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생활규칙과 프로그램 등 모든것을 다모임에서 결정한다.
ⓒ 꿈틀리인생학교

관련사진보기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는 아들... 꿈틀리에 보내길 잘했다

꿈틀리인생학교에서 1년을 잘 보내고 고등학교로 돌아왔다.

각오는 했지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학교가 집에서 멀기도 했지만 일단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대학을 갈지 말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꿈틀리인생학교에서의 자유로운 1년과 너무나 다른 일상을 보내야 했다. 힘들어서 지각을 하고, 배탈을 달고 살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1학년이 끝나 갈 무렵까지 대학을 갈까 말까 고민했고, 간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관련 학과를 가야 하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학과나 학교가 없다며 방황했다. 엄마는 옆에서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각도 줄이고 내신도 챙기는 게 어떠냐고 당위적인 이야기만 했다.

그러던 진수는 2학년 때부터 달라졌다. 목표를 정했다. 담임 선생님이 체육 선생님이었는데, 자기가 왜 체육 선생님이 되는 길은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며 목표가 정해졌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처럼 되기 위해 체육교육학과를 목표로 대학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물론 진득히 앉아서 공부해 본 적이 별로 없어 힘들어 했지만 자기 스스로 목표를 정하니 차츰 공부하는 습관이 만들어졌다. 과목별 학습방법을 정하고, 수시로 갈지 정시로 갈지, 어느 대학을 목표로 할지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최종적으로 본인이 유리한 조건을 찾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한 역할은 가끔 등·하교를 시켜주면서 하소연 들어주고, 필요한 학원비를 대주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는 것이었다.

3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조금씩 공부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자신감도 생겼다. 잠깐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단순하고 낙천적인 성격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큰 어려움 없이 수험생 시절을 보냈고 수능과 실기시험을 거쳐 지난 2월초 목표로 했던 대학교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난 확신한다. 진수가 꿈틀리인생학교에서 자신을 성숙시키는 1년을 보내지 않고 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면 자신의 진로와 삶에 대해 이렇게 주체적인 태도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리고 고등학교 3년 과정을 헤쳐나가는 것도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꿈틀리인생학교 개교식 및 1회 입학식
 꿈틀리인생학교 개교식 및 1회 입학식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나는 아들을 꿈틀리인생학교 1기생으로 보내면서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1년을 쉬었다 간다 하더라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몸에 익히면 훨씬 더 잘 간다는 것을 체험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당연한 순서와 과정을 흐트러뜨리고 자극을 주고 싶었다.

긴 방황이 있었지만,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학습방법을 찾은 끝에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은 날,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꿈틀리인생학교에 보내기 잘했다. 이제 아들도 성인이 됐으니 내 할 일은 끝났다. 나머지는 아들 스스로 알아서 할 테니까.

☞ 꿈틀리 인생학교가 5기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https://ggumtlefterskole.blog.me

태그:#꿈틀리인생학교, #옆을볼자유, #괜찮아괜찮아, #5기신입생모집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