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부터 메이저리그는 사인 훔치기 논란으로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가장 큰 논란을 빚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대해서는 후속 조치를 한 상태다.

후속 조치로는 단장과 감독에게 책임을 물어 무보수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는데, 애스트로스는 구단 징계 차원에서 계약기간이 남았던 단장과 감독을 모두 교체했다. 애스트로스는 더스티 베이커 감독이 새로운 시즌을 맡는다.

애스트로스 이외에도 논란을 빚고 있는 팀이 보스턴 레드삭스다. 2017년 애스트로스의 벤치 코치였던 알렉스 코라 전 감독이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레드삭스의 감독을 맡았던 탓이다. 코라 전 감독은 2018년 월드 시리즈에서도 사인을 훔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조사가 끝나지 않은 레드삭스, 레니키 "임시" 감독 선임

메이저리그 2020 시즌의 스프링 캠프는 13일(이하 한국 시각)에 시작한다. 그런데 사인 훔치기 의혹에 대한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레드삭스에 대한 후속 조치가 최종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라 전 감독만 물러난 상태다.

그러나 조사는 조사이고, 메이저리그 시즌에는 참가해야 하기 때문에 캠프는 시작해야 한다. 이 때문에 레드삭스는 새로운 감독 후보들을 두고 인터뷰를 실시하며 저울질했다.

결국 레드삭스의 결정은 내부 승격이었다. 레드삭스는 12일 팀의 벤치코치를 맡고 있었던 론 레니키를 감독으로 선임하기로 발표했다. 레드삭스의 야구 운영 사장(CBO)인 하임 블룸은 레니키가 선수단 및 코치진과 친숙하면서 광범위한 지도자 경험과 관리 경력을 갖췄음을 감안하여 지휘봉을 맡겼음을 설명했다.

다만 레니키는 레드삭스의 정식 감독이 아니라 일단 "임시" 감독으로 스프링 캠프를 지휘한다. 블룸은 "임시" 꼬리표가 붙은 사연에 대해서도 설명을 붙였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진행하고 있는 레드삭스에 대한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무국의 조사를 존중한다는 뜻이었다.

애스트로스의 경우 당시 벤치코치였던 코라 전 감독이 사인 훔치기를 주도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레드삭스에서도 사인 훔치기를 감독 혼자서 주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사무국의 조사가 끝나야 알 수 있다.

다만 레드삭스 프런트가 레니키를 "임시" 감독으로 선임한 배경에 있어서는 감독 후보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관련된 사실들을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블룸 역시 현재 사무국이 진행하고 있는 조사에서 레니키에게 불리한 내용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음을 밝혔다.

레니키가 "임시" 감독 꼬리표를 떼는 시점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레드삭스에 대한 조사를 끝내고 후속 조치를 발표하는 시점이 될 전망이다. 레니키가 직접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될 경우 레니키는 레드삭스의 48번째 정식 감독으로 임명된다.

외야수 및 주루코치 출신... 브루어스 감독 이력

1956년 8월 19일 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출신의 레니키는 1977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17순위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지명됐다. 다저스에서는 1981년에 메이저리그에 승격되어 데뷔전을 치렀으며, 1983년 시즌 도중 방출되어 시애틀 매리너스로 옮겼다.

다만 레니키의 선수 경력이 크게 화려하진 않았고, 이후 여러 팀을 옮기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은퇴했다. 1984년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1985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1986년과 1987년에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활약했고, 1988년에는 신시내티 레즈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통산 타율 0.238 17홈런 113타점).

메이저리그 선수로 8시즌을 보냈던 레니키는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다저스에서 잠시 코치를 맡았다가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에서 코치로 활약했다.

2005년까지는 3루 주루코치였고, 2006년부터는 벤치코치(KBO리그의 수석코치 개념)로 승격됐다. 이 때 레니키가 벤치코치로 승격되기 전 에인절스의 벤치코치를 맡았던 인물이 그 유명한 조 매든(현 에인절스 감독)이었는데, 당시 매든이 탬파베이 데블레이스(현 탬파베이 레이스) 감독으로 옮기며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레니키는 2011년부터 밀워키 브루어스의 감독을 맡았다. 감독 첫 해인 2011년 정규 시즌 96승 66패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브루어스는 29년 만에 지구 우승을 차지했는데, 브루어스가 아메리칸리그에서 내셔널리그로 옮긴 이후 첫 지구 우승이었다. 레니키는 감독 첫 시즌에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하며 큰 성과를 냈다.

그러나 2012년 브루어스는 성적이 급락했다. 필승조에 있었던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와 마무리투수 존 액스포드 두 선수가 블론세이브를 도합 16회나 기록하는 바람에 83승 79패 승률 0.512에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3위로 추락했다.

2013년에는 74승 88패로 승률 5할 미만으로 떨어졌다가 2014년 82승 80패로 다시 5할을 넘겼다. 불펜이 불안하여 일정한 성적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결국 2015년에는 5월 초까지 7승 18패 승률 0.280으로 최악의 시즌 출발을 보이면서 레니키는 감독에서 경질됐다.

3개월 정도 휴식을 취한 레니키는 이후 다저스의 3루 주루코치로 잠시 활동하다가 2016 시즌부터 에인절스의 3루 주루코치로 다시 옮겼다. 이후 2018년부터 레드삭스의 벤치코치로 2년 동안 활동했다가 "임시" 감독으로 승격된 것이다.

한때 저주에 시달렸던 레드삭스, 또 다른 위기?

레드삭스가 1918년 월드 챔피언을 차지한 뒤 1919년 승률이 5할 밑으로 떨어지자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타격으로서의 파워도 지녔던 왼손 투수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했다. 다른 선수를 받아오지 않고 10만 달러에 현금 트레이드했는데, 이 투수는 양키스로 옮긴 뒤 타자로 본격 전향하여 통산 714홈런(역대 3위)을 기록한 베이브 루스였다.

이후 레드삭스는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리버스 스윕으로 꺾고, 여세를 몰아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탈환했다. 1918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86년 동안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렸던 레드삭스는 이후 2007년에 한 차례 더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레드삭스는 성적이 오락가락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시즌 막판에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마지막 날 와일드 카드 경쟁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바비 발렌타인이 감독을 맡는 동안 팀 분위기가 최악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팀 성적이 오락가락하는 동안 레드삭스는 2013년과 2018년 다시 월드 챔피언을 차지했다. 특히 2018년에는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다승인 108승 54패를 기록하며 3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의 여세를 몰아 내셔널리그 최다승 팀이었던 다저스를 꺾고 월드 챔피언까지 올랐다.

그러나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는 2018년의 과정이 이번 논란으로 인해 우승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특히 2017년 애플워치 논란 이후 커미셔너 롭 만프레드가 정식으로 관련 행위를 금지시킨 상황에서 사인 훔치기를 한 것이다.

2019년 레드삭스의 성적이 추락하면서 데이브 돔브로스키 야구 운영 사장이 해임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성적이 추락하는 마당에 사인 훔치기와 관련하여 사무국에서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향후 레드삭스가 성적에서 반등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밤비노의 저주에 이은 제 2의 저주에 시달릴 수도 있는 큰 이슈다.

위기 속에 팀을 맡은 레니키, "정식" 감독 될 수 있을까

레드삭스는 2019년 시즌 선발진이 단체로 부진에 빠졌다. 에이스 크리스 세일은 부상에 시달리다 8월에 시즌 아웃됐다. 데이비드 프라이스 역시 부진하다 부상으로 시즌을 접은 뒤 다저스로 트레이드됐다. 릭 포셀로는 성적은 그저 그런데 선발 로테이션만 꾸준히 지켰다.

최근 다저스와의 트레이드로 외야수 무키 베츠와 선발투수 프라이스를 보내고 알렉스 버두고를 받아온 레드삭스는 2020년 시즌을 위한 판을 새롭게 짜는 중이다. 일단 지난 해 가을 야구 운영 사장이 교체되었고, 감독까지 바꾸면서 선수단의 전반적인 라인업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레니키가 감독을 맡게 됐다. 물론 레니키가 2011년 지구 우승의 성과를 낸 적은 있지만, 당시 2011년의 브루어스는 프린스 필더(은퇴)가 FA로 풀리기 전 성적에 올인하기 위해 유망주들을 희생하고 잭 그레인키(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등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2020년 현 상황의 레드삭스는 2011년 브루어스처럼 우승을 목표로 고액의 선수들을 대거 끌어다 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미 돔브로스키 전 사장 때 너무 팀 연봉을 많이 쓴 탓에 사치세도 쌓여있고, 이 사치세를 줄여가는 과정에 있다.

따라서 레니키에게 당장 올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큰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조금 힘들 수도 있다. 일단 레드삭스는 사인 훔치기 행위에 대한 사무국의 조사도 끝나지 않았으며, 사무국의 조사 결과 레니키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다만 감독 후보들의 인터뷰 과정에서 레니키에게는 사인 훔치기 행위에 대한 큰 책임을 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임시" 감독 꼬리표를 붙이고 감독을 맡겼을 수도 있다. 팀이 전반적으로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레니키가 "정식" 감독이 되어 팀을 재건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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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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