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17 > 스틸컷

영화 < 1917 > 스틸컷 ⓒ (주)스마일이엔티

 
영화 < 1917 >는 전쟁터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은 1인칭 시점의 영화다. 롱테이크와 핸드헬드로 담아내는 시각은 시종일관 스코필드를 쫓아다닌다. 이런 장치에서 느낄 수 있는 긴 호흡과 현장감은 물먹은 신발처럼 무겁기만 하다.

스코필드와 같은 시점은 오로지 전쟁을 체험하게 만든다. 무작정 관객을 참호 속에 밀어 넣고 캐릭터와 동행을 종용한다. 같이 고민하고, 슬퍼하고, 두려웠으며, 벅찬 안도까지 느낄 수 있다. 생생한 카메라는 추위와 배고픔, 피로와 고통에 지친 병사들을 훑으며 전장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담는다.

이야기의 출발은 이렇다.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인 알프레드 H. 멘데스의 경험을 통해 구상하기 시작했고 실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메시지를 전했던 경험담에 살을 붙여 드라마틱 하게 완성했다.
 
 영화 < 1917 > 스틸컷

영화 < 1917 > 스틸컷 ⓒ (주)스마일이엔티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4월. 스코필드(조지 맥케이)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는 함정에 빠진 데번셔 2대대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전달할 임무를 맡는다. 임무는 오랫동안 공들인 독일군의 함정에서 빼내야 한다는 것. 작전 중지라는 에린무어 장군(콜린 퍼스)의 명령을 전하고, 블레이크의 형(리차드 매든)과 아군 1600명을 구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빨리 걸어가야만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도 연료도 아니었다. 오로지 시간과의 싸움이 먼저였다. 24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나아가야만 한다. 내가 멈추면 1600명의 목숨도 멈춘다.

동전의 이면 같은 생사(生死)

전쟁 중이지만 세상은 막 피어난 삶과 죽음의 순환은 계속된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여정을 떠나는 순간 마다 죽음과 삶이 혼재되어 있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둘을 따르며 죽어 있는 시체, 허리 잘린 나무, 죽은 말과 소, 개를 훑는다. 파괴된 마을과 부서진 건물 사이에 아이러니하게도 잔인한 4월은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긴박한 상황과는 다르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주변은 파릇한 생명이 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번씩이나 등장하는 하얀 체리나무는 아름다운 풍경과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죽은 나무도 자주 등장한다. 명령을 전달하기 위한 위험천만한 순간에는 항상 나무가 있었다. 독일군이 철수하면서 허리를 자른 나무들이 길을 막아서기도 하지만, 소중한 땔감으로 쓰이며 따스한 불길이 되어준다. 떠내려 온 나뭇가지를 부목 삼아 위험천만한 계곡에서 살아남고, 쓰러져 있는 나무더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기도 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항상 스코필드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생명의 존재 중 하나다.
 
 영화 < 1917 > 스틸컷

영화 < 1917 > 스틸컷 ⓒ (주)스마일이엔티


역설적이게도 폐허에 피어난 체리나무 꽃, 푸른 나무들, 숲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 그리고 아득하게 들려오는 한 병사의 노랫소리는 마치 이상 세계 같다. 어느새 목표도 잃어버린 채 경쟁이 된 무기력한 전쟁 속 자연은 언제나 생동하고 있었다. 무엇 하나 허투루 쓰인 장치가 없다. 여정을 떠나던 중 발견한 우유를 수통에 넣어둔 사소함도 훗날 쓰임새 요긴한 생명수가 되어주니까 말이다.

그러나 막연한 희망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오늘은 끝날 거란 희망을 가졌다가도 시시각각 전술과 명령이 바뀌는 전쟁터에서는 말이다. '요단강을 건너 사랑하는 이를 보러 집에 가네'라는 구슬픈 노래 가사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희망고문은 안타깝게도 모두가 괴멸해야만 끝난다.

세상의 모든 명암(明暗)

영화는 한 번에 촬영하는 '원 테이크(one take)', '롱 테이크(long take)'가 떠오른다. 하지만 현실적이고 실감 나는 느낌을 위해 장면을 나누어 찍은 후 장면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장면으로 보이는 기법인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을 선보였다. 이 때문에 배우 연기와 동선, 촬영 세트 등을 완벽히 통제해야 했고, 오차 없이 진행되는 촬영과 편집을 통해 의미를 격상 시켰다.
 
 영화 < 1917 > 스틸컷

영화 < 1917 > 스틸컷 ⓒ (주)스마일이엔티

 
<블레이드 러너 2049>로 15번의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트 끝에 촬영상 트로피를 거머쥔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는 < 1917 >을 통해 다시 한번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빛의 마법사라는 별명답게 전쟁터의 무채색과 봄의 싱그러움이 대비되며 영화의 비주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는 병사 스코필드가 당도한 마을에서 또 한 번 기지를 발휘하는 데 조명탄을 쏘아 생긴 빛과 그림자의 조화는 그래픽 노블이란 착각마저 든다. 선명한 명암대비는 망가진 마을을 감히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또한 음악도 경이로움에 힘을 보탠다. <덩케르크>의 한스 짐머가 있다면 < 1917 >에는 마이크 뉴먼이 있다. 감정의 강약 조절을 취한 탓에 전쟁의 잔혹성을 가슴으로 느끼게 돕는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은 기술의 성취에 매료되어 밭은 숨을 몰아쉴 것이다.

다만 영화 < 1917 >은 호불호가 가릴 것으로 예상한다. 단순히 메시지를 전 하는 전우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작은 화면에서 본다면 지루함에 몸서리칠 것이다. 때문에 단연코 IMAX 영화관에서 관람해야 그 효과를 톡톡히 받을 수 있겠다. 사람의 시각의 한계치를 경험하는 넓은 화각의 웅장함이 1인칭 슈팅게임같이 당신에게 움직이라고 동요하고 있으니 말이다.
1917 1차세계대전 샘 맨데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