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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대구의 대표 시장인 서문시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상인들이 대부분을 상점 문을 열지 않거나 늦게 장사를 시작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21일 오전 대구의 대표 시장인 서문시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상인들이 대부분을 상점 문을 열지 않거나 늦게 장사를 시작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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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나는 대구 달서구의 시장 초입에 작은 책방을 열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책을 주민들과 나눠보고 싶어서였다. 2월에 접어들면서 유리창 밖 행인들이 하나둘 마스크를 끼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가 국내 다른 지역에서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며칠 안 돼 마스크 안 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지난 18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나왔다. 다음 날부터 확진 사례가 대구에서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뉴스 보도가 쏟아졌다. 시장을 찾는 사람이 줄면서 책방 손님도 줄었다. 끼니 때면 붐비던 근처 국수 가게에도 발길이 끊겼는지 사장님 혼자 뉴스를 보고 계셨다.

문 닫기 전, 손님이 책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지 이틀 뒤인 20일, 나는 책장과 화장실 청소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보건당국에서 소독약을 구하지 못해 급한 대로 세제를 풀어 구석구석 닦고 쓰레기를 비웠다. 곧 커피 원두가 떨어질 테지만 주문을 넣지 않았다. 시장 상인 누구도 말하진 않았지만 한동안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을 닫기 전, 손님 한 분이 책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수건과 마스크를 덧대 이중으로 얼굴을 감싼 중년 여성이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을 만한 책이 있을까요? 희망을 얻을 만한 책이요."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는 여성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마음의 위로를 찾고 싶다고 했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을 읽어보세요."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 앞표지. 시리아 내전 중 버려진 책으로 도서관을 만들어 종이 요새를 구축한 다라야 사람들의 감동적인 실화가 담긴 책. 고립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구 시민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 앞표지. 시리아 내전 중 버려진 책으로 도서관을 만들어 종이 요새를 구축한 다라야 사람들의 감동적인 실화가 담긴 책. 고립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구 시민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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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리아 내전 중 수천 권의 책을 모아 종이로 된 요새를 구축해 마음을 지킨 다라야 사람들의 이야기를 권했다. 여성의 눈가에 익숙한 주름이 잡혔다. 마스크 낀 사람들은 눈으로 말하고 웃는다.

손님이 나간 뒤 화분에 물을 듬뿍 주고 책방 문을 걸어 잠갔다. 시장을 지나쳐 걷는데 자리를 지키는 상인들이 보였다. 금방 상하고 마는 생선, 과일을 파는 상인들은 쉽게 시장을 떠나지 못했다. 

시장 골목에 활기가 넘치는 날을 기다리며

저녁 무렵 집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벌어졌다. 갑자기 확진자 수가 늘면서 생필품 수급에 대한 가짜뉴스가 퍼졌는지 생필품 사재기가 시작된 것이다. '낮에 동네 마트 두 군데에서 라면조차 구할 수 없었다'는 엄마의 얼굴이 어두웠다. 설마 싶어 슈퍼마켓에 갔더니 카레, 라면, 즉석밥 진열대가 텅 비어 있었다. 일회용 마스크는 이미 동난 지 오래라고 했다.

곧 일터로 향하지 않는 생활에 적응했다. 늦잠 잔 뒤 정부 부처의 브리핑을 통해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했다. 휴관한 동네 도서관과 스포츠센터를 이용하지 못하니 마스크를 끼고 인적 드문 길을 산책하는 일이 거의 유일한 야외활동이었다.

대구시에서 외출을 삼가 달라는 요청을 발표한 지난 23일 이후로는 아파트 인근에서 사람 보기가 더 힘들어졌다. 슈퍼마켓 진열대는 여전히 평소보다 비어 있고, 필요한 물품을 집안으로 들인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요새를 구축한 채 바이러스가 퇴치될 때까지 나오지 않을 태세다.
    
집 근처 슈퍼마켓 진열대는 사재기로 텅 비었고, 2월 24일까지 엉성한 모습 그대로다.
 집 근처 슈퍼마켓 진열대는 사재기로 텅 비었고, 2월 24일까지 엉성한 모습 그대로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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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 임시휴업한 지 어느덧 일주일째다. 그 사이 대구의 확진자 수는 1000명을 넘어섰다. 27일 오전 9시 기준 전국 확진자 수는 1595명, 그중 대구에 거주하는 확진자는 1017명이다. 

언제까지 가게를 닫아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사태가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월세는 어떻게 내나 싶다. 한국휴게음식점중앙회 대구지회에서 특별보증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막상 소상공업에 종사하고 보니 보건 재난이 건강만 위협하는 게 아니라 지역민의 경제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급한 대로 면 마스크를 삶아 쓰는 법을 익히고 있으며, 대구 시민들과 의료진을 응원하는 온라인 해시태그 운동에도 동참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어 다시 시장 골목에 활기가 넘치는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봄이 오면 책방 밖에 화분을 내놓으며 마스크 없이 지역민들과 활짝 웃고 인사 나누었으면 좋겠다.
 
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시민들이 외출·외식을 꺼리자 22일 대구의 번화가인 동성로 상점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시민들이 외출·외식을 꺼리자 22일 대구의 번화가인 동성로 상점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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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구시민모두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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