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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였던 지난 1월 26일 청도 대남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평소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근래 수면과 식욕 부진으로 몸이 영 좋지 않다고 하셔서 수액을 맞기 위해 간 것이다.

연휴에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청도에 그곳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발생한 뒤였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청도는 물론이고 인근 대구에서도 감염 사례가 나오기 전이었다. 지금까지도 어머니와 나는 건강상의 문제는 없다.

약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월 19일, 어머니와 갔던 청도의 그 대남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다음 날에는 국내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인구 4만의 작은 농촌 지역, 평소 심심할 정도로 조용했던 청도는 대구와 함께 코로나19 특별관리지역이 됐다.

2m 떨어져서 대화... 코로나19 진풍경
 
시간이 멈춘 듯하다.
▲ 청도 기차역 시간이 멈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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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훈련 때처럼 거리가 텅 비었다.
▲ 청도 시내 민방위 훈련 때처럼 거리가 텅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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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온 그 날, 나는 평소 안 쓰던 마스크를 챙겨 시내 마트로 향했다. 산골 마을에 살고 있으므로 먹을거리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청도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기차역 일대와 군청 주변은 사람도 차도 보기 힘든 텅 빈 거리가 되어 있었다. 역 앞 추어탕 거리며 시내의 식당들도 일제히 문을 닫고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전통시장 입구 앞에도 '휴장'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마트 입구에는 전화로 주문받아 배달하는 식료품 박스가 즐비했다. 매장 안팎 직원이며 손님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며칠 전 방문했을 때와 비교되는 풍경이다. 다행히도 대도시 마트처럼 특정 물품을 사재기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 평소처럼 물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주말 마산에서 친척 형님네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청도 사람이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데 형님께 전화가 왔다.

"안 와도 된다. 여기 하객들이 대구 사람들 오면 못 오겠다고 해서... 대구 지인들한테도 부조는 계좌 이체로 보내라고 하고 다 못 오게 했다." 

몇 명 안 되는 동네 주민들의 일상도 변했다. 대부분 칩거 모드이고, 만나더라도 마스크를 쓴 채로 2m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자고 일어나면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 있다. 2일 9시 기준 청도의 확진자 수는 130명. 그중 대남병원 입원환자는 96명, 병원 직원은 12명이다. 사망자 7명은 모두 대남병원 입원환자였다. 대남병원에 남은 확진 환자 60명은 현재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고 한다. 청도는 대구, 경북 경산 다음으로 확진자가 많은 곳이다. 지난 25일부터 대남병원과 무관한 일반 주민 중에서도 감염 사례가 나오자 다들 불안해하는 분위기다.

그런데도 청도군은 확진자의 감염 경로와 이동 동선을 제대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옆 동네 밀양시에서는 확진자 동선을 상세히 소개한 긴급재난문자를 보내주는 반면에 청도군은 확진자 발생 여부만 문자 메시지로 알려줄 뿐이다.

현재(2일 낮 12시) 청도군 홈페이지에 공개된 동선은 환자 1번부터 24번까지일 뿐이다. 게다가 청도에는 인터넷에 능숙하지 않은 어르신들도 많기 때문에 웹사이트에만 공개하는 게 실효적인지 의문이다. 참다못한 군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고 3천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대다수의 군민들을 위한 조속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청도 미나리 단지의 한숨
 
시내 곳곳에 이런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 읍사무소 앞 플래카드 시내 곳곳에 이런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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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의 상황이 이러하니 지인들의 격려 전화와 문자가 늘었다. 부산에 사는 형수는 어머니가 걱정된다며 온라인 택배로 음식을 주문해 주셨다.

물건을 싣고 온 택배 기사에게 인사말로 "요즘 배달이 많으시죠?" 하고 물으니 "하이고 말도 마이소, 미쳐요 미쳐" 한다. 그러면서 "들어오는 택배는 늘어났는데 나가는 택배는 확 줄었심다"라고 했는데 연유를 다음 날 알게 됐다.

지난주 금요일(28일) 생필품을 사기 위해 시내로 나가려니 한 어르신께서 청도 시내는 가능하면 가지 말라고 권하셨다. 하여 청도와 밀양 경계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마트 근처 식당들은 영업을 하고 있기에 오랜만에 외식 음식을 맛보고자 중식당에 들렀다. 손님이 거의 없었다. 그 식당은 '미나리 단지'로 유명한 한재와 지척이라 식사를 마친 후 주인에게 물었다.

"요새 관광객들이 줄었나 보네요?"
"관광객은 무슨... 주문했던 미나리 택배까지 취소한답니다. 우리도 점심만 판 지 오래됐습니다."


청도 한재 미나리는 지금이 가장 맛있는 제철이라 매년 이맘때면 관광버스와 차들이 밀려들어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할 정도인데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발길이 뚝 끊겨 있었다.

없어서 못 팔던 그 미나리를 먹으러 오지 않는 것은 조금은 이해된다. 그렇지만 택배로 주문한 것까지 취소하다니... 이때만 바라보며 일 년간 온 정성을 다한 농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청도라는 단어가 마치 금기 대상이 된 듯해 씁쓸했다.
 
 봄맞이 준비를 해놓으셨다.
▲ 어머니의 텃밭  봄맞이 준비를 해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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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를 시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시험대의 최전선에서 의료진과 간호사들 그리고 소방대원들이 공포와 불안에 맞서 싸우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분들에게 따듯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며 함께 연대한다면 힘든 이 시간 또한 지나갈 것이다.

임대료를 절반으로 낮추거나 아예 안 받는 건물주, 의료 현장에 있는 분들에게 샌드위치와 도시락을 보내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봄소식처럼 들려온다. 봄은 이미 오고 있다.

(덧 : 미나리는 면역력에 좋은 음식입니다. 간을 보호하고 해독작용을 하며 감기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제철 미나리 드시고 건강하게 봄맞이하시길.)

태그:#코로나19,, #청도,, #시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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