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원인과 전파를 연구하는 '역학'에선 지역에서 퍼지는 전염병을 '유행(Epidemic)',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전염병을 '대유행(Pandemic)'이라 부른다. 1900년대 이후 가장 무시무시한 대유행은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스페인 독감'이었다. 1918~1920년에 걸쳐 대유행한 스페인 독감은 당시 16억이었던 세계 인구의 1/3을 감염시키고 최소 2500만 명, 최대 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난 2018년 영국의 BBC 스튜디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세계를 덮친 재앙, 1918년 독감>(2019년 11월 16일 KBS <세상의 모든 다큐>에서 방송)은 당시 영국군으로 참전한 알렉산더 제이미슨, 영국의 보건 의료를 책임지고 있던 담당관 제임스 니븐, 런던의 한 병원에서 유행병과 싸운 의사 배질 후드, 스페인 독감으로 부모와 동생을 잃은 7살 소녀 에이다 베리 등 병과 죽음을 겪은 개개인의 기록과 증언을 살펴보며 오늘날 전염병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찾는다.

1918년과 같은 종말론적 유행병이 다시 발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새로운 바이러스는 미국 캔자스주에 위치한 외딴 농장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물새들의 몸에 산다. 하지만, 사람과 새가 가깝게 접촉했을 때 바이러스가 인체로 옮아갈 수 있는 결정적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

농장에 살던 앨버트 기첼은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미 육군에 징집된다. 많은 신병으로 붐비던 캔자스 퍽스톤 기지에 입소한 앨버트 기첼은 취사병으로 근무하게 된다. 1918년 3월 4일, 엘버트 기첼은 열과 두통을 호소하며 의무실을 찾는다. 전 인류를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갔던 '스페인 독감'이 시작된 순간이다.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새로운 바이러스는 곧 기지를 휩쓸었다. 3주도 안 되어 1100명이 중태에 빠졌고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반적인 독감과 양상이 다르단 걸 느낀 한 장교가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적은 편지를 워싱턴 정부로 보냈지만, 그의 경고는 무시되고 말았다. 대유행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새로운 바이러스는 군대를 숙주로 삼아 각지의 병영과 도시로 급속히 번졌다. 전염병의 빠른 대처가 얼마나 중요한가 알려주는 사건이다.

1918년 3월 수송선 25척이 미군 병력을 싣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향했다. 그런데 승선한 일부 병사들의 몸속엔 이미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잠복한 중이었다. 1918년 4월 미군이 프랑스에 상륙하면서 전장엔 독감이 발발하기 시작했다. 2천만 명이 감염되고 2만 명이 사망했다. 최초 감염자가 독감에 걸린 지 40일만의 일이었다. 바이러스는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많은 군인이 좁은 공간에서 머무는 상황, 불결한 거주 환경, 피로와 허기에 지친 병사의 면역력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좋은 조건이 되었다. 스페인 독감에 걸린 영국군 알렉산더 제이미슨은 기도 안에서 증식하는 바이러스로 인해 두통, 열, 폐의 답답함 등 전형적인 독감 증상에 시달렸다. 그는 의식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그와 비슷한 증상을 겪는 영군군은 영국은 30만 명에 육박했다.

3만 명 가까이 바이러스에 희생되자 영국 정부는 프랑스 전선에 있던 일부 중환자를 치료를 위해 영국으로 이송했다. 인간 숙주 안에 숨었던 바이러스는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 철도와 도로를 따라 빠르게 확산했다. 1918년 6월, 독감이 전선을 덮친 지 두 달 만에 영국 맨체스터에서 첫 환자가 나타난다.

영국에 상륙한 바이러스는 국가 전체에 동시다발적으로 퍼져나갔다. 6주도 안 되어 10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다. 특히 피해가 심한 건 인구밀도가 높은 공업지역이던 북쪽이었다. 맨체스터의 보건의료담당관이었던 제임스 니븐은 독감의 확산경로를 추적했다. 마크 해리슨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는 제임스 니븐이 당시 작성한 보고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분명히 이 독감이 예외적인 경우라고 봤다. 유행병이 엄청난 속도로 확산했다고 썼다. 이것이 계절마다 보는 평범한 독감이 아님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이전의 독감과 다르다고 판단한 제임스 니븐은 맨체스터의 학교, 주일학교를 닫아 새로운 독감의 확산을 늦춰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대다수 관리는 과잉 반응이라고 여겼다. 

제임스 니븐은 관리들이 휴교 요청을 거부하자 예방책 전단 3만 장을 찍어 도시의 여러 직장, 신문사, 가정에 배포했다. 또한,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벽보 500장을 붙여 독감의 위험성과 예방조치를 알렸다. 맨체스터의 여러 극장에 독감에 관한 영화인 <닥터 와이즈 독감에 관하여>를 상영하기도 했다. 유행병과 싸울 방법을 개척한 제임스 니븐의 노력 덕분에 맨체스터는 다른 도시들보다 타격을 덜 받았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다.

영국의 한 병원에선 의사 배질 후드가 유행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가 있던 병원은 근처 병원에서 보낸 새 환자들로 복도까지 가득 찼다. 노동량과 압박감도 엄청났다. 그 역시 바이러스로 동료들과 친구들을 잃었다.

유행병을 치료하기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배질 후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독감의 전염성을 알고 있었던 그는 병원 간호사들과 직원들에게 마스크 착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스크를 벗으면 즉시 버리고 새 마스크를 쓰라고 지시했다. 훗날 배질 후드가 남긴 회고록엔 당시 치료 일선에서의 싸움이 어땠는지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그런데 최초의 발병자가 나온 곳은 미국인데 왜 스페인 독감이라 불릴까? 스페인 독감이란 이름만 보면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유행했다고 생각하기에 십상이다. 당시 전쟁 중이었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전시 보도 검열이 이루어져 제대로 된 유행병 보도가 이루어지질 않았다. 전염병으로 인하여 사기가 떨어질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참전국이 아니었던 스페인의 신문들은 독감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여 국제적인 공론화를 이루었다. 스페인 언론을 타고 유행병 발발은 세계 각지로 알려졌다. 마크 호닉스바움 영국 런런시티 대학교 교수는 "그때 마드리드에서 근무하는 해외 특파원들이 이 독감에 대해 '스페인 독감'이란 이름을 붙이면서 현재까지 고정됐다."고 설명한다. 불투명한 정보 공개와 언론 보도는 부실한 전염병 대응으로 이어진다. '스페인 독감'이란 명칭엔 정부의 투명한 대응과 언론의 진실 보도가 전염병 창궐을 막을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이 새겨져 있다.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미국과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던 변종 독감에 걸린 사람들 중 사망자의 비율은 낮았다. 대다수는 회복했다. 감염자 숫자는 1억5천만 명, 사망자 숫자는 25만 명에서 멈췄다. 1918년 8월엔 많은 사람이 유행병에 마침내 사그라진다고 생각했다.

맨체스터에 있는 제임스 니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개개인의 비극을 귀한 통계 자료로 만들고 계속해서 독감 유행의 둔화를 추적했다. 정부 관료들과 달리 제임스 니븐은 방심하지 않고 보건의료정책을 세워갔다. 현대의 유행병 대응 방안은 제임스 니븐 같은 선구자들의 업적을 기초로 삼고 있다.

1918년 9월, 이전보다 훨씬 더 위험한 형태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독감 바이러스가 돌아왔다. 또 한 번 바이러스 확산의 용광로 역할을 한 곳은 미군 기지였다. 다시금 유행병이 창궐하자 미국 정부는 과학자 윌리엄 웰츠에게 조사를 맡겼다. 그는 피를 토하며 입원해 하루도 안 되어 목숨을 잃는 병사에 주목했다.

앞선 유행병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새로운 종류의 독감이라 판단한 윌리엄 웰츠는 즉시 감염된 미군 기지를 격리해야 한다고 상부에 보고한다. 그러나 지휘관은 그의 말을 듣질 않았다. 시야가 좁은 관료 집단으로 인해 두 번째 스페인 독감 버전은 세상에 풀려나고 만다. 전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일반 관료들이 아닌, 보건의료 전문가와 현장의 판단에 우선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거대한 수송선들이 감염된 미국 병사들을 싣고 또 한 번 유럽을 향해 출항한다. 수용 가능 인원을 50%나 초과한 수송선들은 독감 전염에 이상적인 환경을 갖춘 거대한 질병 수송선과 다름이 없었다.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며 출항 다음 날부터 사망자가 나왔다. 프랑스 해안에 도착했을 무렵에 병사 9천 명 가운데 2천 명이 중태였고 사망자도 백 명이 넘은 상태였다. 환자들은 도착한 지 24시간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유럽에 유행병이 다시 돌았다.

유행병 발생 240일째인 1918년 11월에 이르러 호주를 제외한 모든 대륙이 감염되고 최대 6천만 명이 사망했다. 유행병은 1919년 11월 11일 휴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모든 일은 단 몇 개월 만에 벌어졌다.

바이러스에 감염될 만한 사람은 모두 감염되자 마침내 확산세가 멈추었다. 한번 바이러스에 앓았던 사람들에겐 면역력이 생겼고 바이러스는 덜 치명적인 행태로 변했다. 바이러스를 멈춘 건 백신이 아닌, 바로 바이러스 자신이었던 셈이다.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세상의 모든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현대의 유행병은 1918년 독감보다 더 위험하다. 당시는 대서양을 건너는 데 8일이 걸렸지만, 지금은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더 빨리, 더 멀리 퍼져 나갈 환경이 만들어졌다. 다행인 건 의술도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1918년에는 바이러스가 뭔지 모르고 당했으나 지금은 적어도 정체는 알고 있다. 폐렴을 치료할 항생제도 개발했다.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중위생도 나아졌다. 방역 및 질병 관리도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대응 체계를 갖추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지금 코로나19와 맞서는 데 도움이 되는 교훈들을 알려준다. 정부의 정보 공개와 언론의 사실 보도로 대중의 신뢰를 얻었을 때 유행병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정치, 언론, 관료는 질병을 통제하는 컨트롤타워를 무분별하게 흔들지 말고 책임을 주었다면 믿고 맡겨야 한다. 그들이 가장 전문가임을 잊어선 안 된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말한다.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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