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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치매 환자가 요양원의 부주의로 떡을 먹고 질식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입에 들어가기도 힘든 떡을 간식으로 제공해놓고 요양보호사는 환자를 제대로 지켜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목에 떡이 막혀 혼자 힘겨워하다가 숨을 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피해자가 소송하지 않으니 해당 요양원을 벌 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요양원이 운영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허탈했던 나는 장례를 치른 후 바로 요양원을 상대로 소송 준비에 착수했다. 

2월 중순쯤에는 용기를 내어 언론사에 엄마의 사건을 제보했는데 '코로나19' 관련 기사와 시점이 맞물리면서 조용히 묻히고 말았다. 게다가 신천지에서 발생한 심각한 바이러스 전파로 온 나라가 패닉에 빠져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한층 드높아졌다. 

환자가 늘어나고, 의료진과 질병 당국의 손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손님의 감소로 피해를 보는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이 늘어났다. 확진자가 지나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방역 문제로 강제 휴업을 하게 되면서 곳곳에서는 업무 마비가 일어났다. 이로 인한 소비재 물량의 부족, 물가의 상승 등 경제에 미칠 파장이 거의 IMF 시기를 방불케 한다. 

돈 문제를 넘어 개학 연기로 인한 아이들의 보육 문제, 각종 시험이 미뤄지는 데 대한 수험생들의 허탈감, 서로 잘잘못을 따지고 총선 연기를 운운하는 정치권의 공방 등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영화 <감기>의 한 장면
 영화 <감기>의 한 장면
ⓒ 조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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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만약 엄마 사건이 없었다면 해당 이슈에 집중하며 나라 걱정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사건을 겪은 후 변호사와 소송에 대해 상의하다 보니, 이 시국에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 갑작스레 자신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믿고 맡긴 재산을 날린 사람들, 의료사고의 피해자 등 때론 소송으로, 때론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로, 때론 언론의 힘을 빌어 이들은 자신이 주목받기를 원해왔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던 사람도 많을 것이다. 평소 내성적이어서 별로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억울한 일을 겪으면서 그동안 큰 소리 안 내고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가 밀려와 앞으로는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굳은 결심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문제를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관종(관심받고 싶은 사람)'을 자처하기에 이른다. 

평화롭고 조용할 때조차 잘 들리지 않았던 그들의 목소리는 이제 전염병이라는 사회적 재난 앞에 더 외면당하고 뒤로 밀리고 있다. 더 심통이 나는 것은 그들을 억울하게 만든 가해자들이 이런 시국을 기뻐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경찰을 비롯한 사법 당국이 나라의 비상사태에 집중하고 있으니, 그들은 자신이 한 잘못이 서서히 잊히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며칠 전 엄마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고소장을 접수하겠다고 알려왔다. 한 달 동안 병원과 건강보험공단 등을 돌아다니며 각종 증거를 수집해 변호사와 함께 정성스럽게 작성한 고소장이다. 그래 봤자 이제 시작이다. 이걸 접수해도 검찰과 경찰이 사건을 부지런히 수사해줘야 소송이 진행된다. 세상에 소송은 많고 그들은 바쁘다.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이 '코로나19' 사태가 더 원망스럽다.

이 세상 모든 가해자들이여, 코로나에 묻혀서 치사하게 발 뺄 생각일랑 절대 하지 말기를.

이 세상 모든 피해자들이여, 이 사태를 무사히 극복하고 지지 말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요양원, #코로나, #외면,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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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문화, 육아, 교육 분야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 후 힘든 육아와 부모의 질병을 겪으며 돌봄과 나이듦에 관심 갖고 사회복지를 공부한다. 소중한 일상, 인생, 나이듦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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