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5 07:08최종 업데이트 20.03.1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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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스무 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동갑내기 스무살이 궁금했다. 그래서 2000~2002년에 태어난 1000명에게 물어봤다. 무슨 생각들 하고 있냐고. 그랬더니 더 깊이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러 배경을 가진 2000년생 14명을 직접 만나 차분히 대화를 나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고. 한국사회가 지난 20년 동안 키워낸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우리 사회의 20년 후를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스무 살은 곧 세상을 바꿔나가기 시작할 테니까. [편집자말]
만 18~20세 1000명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귀하가 운영하는 기업체가 있다고 가정하고, 사내의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합니다. 정규직 전환은 어떤 기준으로 하는 게 타당하겠습니까?"

결과는 12.4%만이 "비정규직 사원 모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답했다. 아무 조건 없이 비정규직 모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87.6%가 가지고 있는 셈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성실한 사원만 정규직으로 전환"을 고른 이가 51.2%, "능력이 뛰어난 이들만 정규직으로 전환"을 선택한 이는 36.4%였다. 21세기가 밝은 2000년 이후에 태어난 만 18, 19, 20세들에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선(성실/불성실, 능력/무능력)은 분명히 존재했다.
 

ⓒ 봉주영

 
오마이뉴스는 단순 여론조사를 넘어 스무살들을 직접 찾아가 이 주제에 대해 좀더 깊이 물었다. 지난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여러 지역 출신 대학생과 직장인 등 2000년생 14명을 만났다.

대학생 E(남)씨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비판했다. 그는 "정규직화라는 방향은 좋지만, 다 정규직화하는 건 노력 여부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며 "아무 노력도 안 했는데 그냥 정규직이 되는 건 이상하다, 공정한 방식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실업계열 특성화고 졸업 후 IT업체에 다니는 L(남)씨는 "성실도와 의사소통 능력과 성과 등을 종합 평가해서 일부분만 정규직화 하고, 그냥 전환이 아니라 정규직 채용에 응시하게 해서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하겠다"라고 말했다.

정규직이 돼도 여전히 같은 업무를 할 텐데 그렇게 엄정한 기준이 필요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으로서 일하는 사람과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마인드(마음가짐)가 다르다"라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사람을 갑자기 정규직으로 바꿔주면 갑자기 정규직 마인드로 일 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었다. 초·중·고 모두 대안학교를 졸업한 M씨는 "다 정규직화 하는 게 좋다"고 답했다. 그는 "정말 불가피하게 일부만 뽑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오래 다닌 순서대로 뽑는 게 좋겠다"라며 "꾸준히 한다면 정규직이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근속기간이 가장 공정한 기준이냐는 물음에 M씨는 "공정이란 말을 잘 쓰지 않아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고, 공정이란 말이 평등이란 말과 왜 다르게 쓰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M씨의 답변에는 중요한 논점이 있다. 흔히 요즘 젊은 세대를 '공정세대'라 부른다. 소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표출된 젊은 세대의 비판 목소리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하다'는 대체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들이 말하는 공정은 평등과 어떻게 같고 다를까?

결과의 평등보다는 수긍할 수 있는 불평등

창간 20주년을 맞은 오마이뉴스가 전국 만 18~20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무살 머릿속' 여론조사 결과, 이 세대의 공정은 '결과의 평등'보다는 '수긍할 수 있는 불평등'에 기울어 있는 걸로 보인다.

오마이뉴스는 ▲ 능력에 따른 보상이 이뤄지는 사회 ▲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 ▲ 경제적 불평등이 적은 사회 ▲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 등 4가지 가치와 '공정한 사회'와의 연관성을 물었다.

조사 결과,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다'에 대한 공감도가 82.7%에 달했다("매우 그렇다" 37.3% + "대체로 그렇다" 45.4%).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다'라는 명제의 공감도는 81.7%("매우 그렇다" 34.7% + "대체로 그렇다" 47.0%), '능력에 따른 보상이 이뤄지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다'는 80.4%가 공감했다("매우 그렇다" 20.6% + "대체로 그렇다" 59.8%).

반면 '경제적 불평등이 적은 사회가 공정한 사회다'라는 명제의 공감도는 69.3%("매우 그렇다" 22.1% + "대체로 그렇다" 47.2%)였다. 비공감도 30.7%보다는 월등히 높았지만 앞선 3개의 명제에 비해선 분명히 낮은 결과다.
 

ⓒ 봉주영

 
"직무 같지만 대졸·고졸 연봉 차이 수긍"... "서울캠과 지방캠, 실력 차이"

앞에서 밝힌 L씨는 "대졸자가 아니라고 해서 회사에서 차별받는 일은 없다"라며 "연봉은 좀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대졸자에 연봉을 더 많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팀 내 같은 직급의 대졸자와 자신은 직무가 똑같고 서로서로 업무를 대신할 때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대졸 학력 우대'를 수긍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대학생에게는 수능 점수가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인 듯 하다. 서울 캠퍼스와 지방 캠퍼스가 있는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수강시간표 공유를 위해 많이 쓰는 스마트폰 어플 '에브리타임'에서 서울 캠퍼스 학생이 지방 캠퍼스 학생을 비하하는 익명 글을 올려 논란이 되는 경우가 잦다.

기자와 만난 대학생들은 지방 캠퍼스 학생을 비하하는 글에 대부분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면전에 대고 할 수 없는 얘기로 분란을 일으킨다'는 이유다. 하지만, '서울캠 학생이 권리를 침해당한다'는 인식은 갖고 있었다.

D(남)씨가 다니는 대학은 '지방 캠퍼스 학생들의 서울 캠퍼스 수강으로 인해 도서관 등 공용공간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종종 제기된다. D씨는 그는 이런 문제제기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며 "입시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권리를 얻었는데 지방 캠퍼스 학생들이 그걸 침해한다는 억울함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A(여)씨는 "서울캠과 지방캠 사이엔 실력의 차이가 실제 존재한다고 본다"며 "아무래도 인(in) 서울이 아니면 수능점수도 좀 딸리고, 사회적인 인식도 그렇게 보지 않느냐"고 말했다.

G(남)씨는 좀 달랐다. 그는 현재 지방 국립대의 본 캠퍼스가 아닌 다른 지역에 있는 캠퍼스를 다닌다. 그는 "본캠과 지방캠에 있는 전공이 다른데, 원하는 과를 골라 간 것이지 어느 한 쪽이 수능점수가 높다 해서 사람을 무시하는 건 유치한 짓"이라고 말했다.

정시가 수시보다 공정한가? 찬반 팽팽... 각자 입장에 따라 달라

그렇다면, 언제나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대학입학전형 방식에 대해선 어떤 생각일까? '대학 입학 전형 중, 정시모집이 수시모집보다 더 공정한 경쟁이다'라는 명제에 동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물었다. "그렇다"가 51.1%(매우 그렇다 19.1% + 대체로 그렇다 32.0%)와 "그렇지 않다"가 48.9%(매우 그렇지 않다 10.4% + 별로 그렇지 않다 38.6%)로, 거의 반반으로 갈렸다.

하지만 읍·면 거주자들의 응답은 "그렇지 않다" 57.9% - "그렇다" 42.1%로, 정시모집이 수시모집보다 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 많았다. 농어촌 거주자에겐 고른기회·지역균형 등이 반영되는 수시전형이 더 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출신 고교 유형별로도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일반 인문계고 출신은 "그렇다" 53.6% - "그렇지 않다" 46.4%로 정시모집이 더 공정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반면에 특목고·자사고 출신은 "그렇다" 47.7% - "그렇지 않다" 52.3%로, 실업계열고 출신은 "그렇다" 47.6% - "그렇지 않다" 52.4%로 조사돼 일반고 응답자들과 대칭을 이뤘다. 통상적으로 일반고는 수능 정시에, 특목고·자사고와 실업계열고는 학종 수시에 유리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판단에는 분명 각자의 배경과 처지가 반영되어 있다. 기초생활수급대상 가정 출신으로 사회적 약자 배려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한 F(여)씨는 이 부분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는 "사회적 약자 배려 전형 합격자들을 까는(비하하는) 글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 빈번하게 올라온다"며 "그런 글을 쓰면서 누구는 '가난한 10분위(소득 상위 10%)도 있지 않느냐'고 하고, 누구는 '우리 집에는 집이랑 차만 있고 돈은 없는데 왜 나는 등록금을 다 내야 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공정성이라고 얘기하지만, 각자 말하는 공정성의 내용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공통의 기준보다는 각자 자신만의 선을 긋고, 이 선이 침범당할 때 '불공정'이라는 항변을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평등'이란 말 대신에 '공정'이란 말이 스무살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0명 중 7명 "한국사회 불공정"
 

ⓒ 봉주영

 
그렇다면 가족의 사회적 지위 등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흙수저라고 여기는 스무살은 얼마나 될까.

'스스로 금수저에 가깝다고 생각하느냐, 흙수저에 가깝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0.8%가 "흙수저"라고 답했다. 딱 절반이다. "금수저" 답변은 불과 8.5%였고, 40.7%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도시보다는 촌락지역 스무살들이 흙수저 응답 비율이 높았다. 읍·면지역에 거주하는 스무살은 흙수저 62.4% - 금수저 4.5% - 잘 모르겠다 33.1%로 답해 전국 평균보다 흙수저가 많고 금수저가 적었다.

흙수저-금수저 응답 비율은 출신고 유형에 따라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은 흙수저 52.2% - 금수저 5.6% - 잘 모르겠다 42.2%로 전체 평균과 비슷했다. 하지만 특목고·자사고 출신은 흙수저 32.7% - 금수저 24.0% - 잘 모르겠다 43.3%로 흙수저 비율은 낮고 금수저 비율은 높았다.

흙수저에 가깝다고 응답한 이들 523명을 대상으로 자신이 흙수저라고 처음 생각한 때가 언제인지를 물었다. "유치원 때" 5.2%, "초등학교 때" 20.0%, "중학교 때" 31.9%, "고등학교 때" 35.2%, "고등학교 졸업 후" 7.7%로 조사됐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합치면 57.1%다. 이는 전체 응답자(1000명)의 29.0%로, 10명 중 3명이 아직 고등학교에 가기 전부터 '흙수저 자각'을 했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와 그 반대인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두 문장 중 공감하는 쪽을 고르게 했다. 공정 쪽을 5점, 불공정 쪽을 –5점으로 설정하고, 둘 사이에서 공감하는 정도를 표시하게 한 결과는 평균 –1.52점이었다.

5~4점을 선택한 이들은 1.9%, 3~1점은 15.2%로, 응답자 17.1%만이 공정 쪽을 골랐다. 중립인 0점은 14.4%. -1~-3점은 50.2%, -4~-5점은 18.3%로, 불공정 쪽을 고른 이가 68.5%에 달했다.

지금 우리 사회 스무살 10 명 중 무려 7명이 한국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느끼고 있다.

오마이뉴스 창간 20주년 특집 '스무살 머릿속'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월 7~11일 전국 만 18~20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패널조사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p이며, 2020년 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으로 성별/연령대별/지역별 인구비례 가중치를 적용했다. ★
 

ⓒ 봉주영

 
덧붙이는 글 기사에 등장하는 심층 인터뷰 스무살 프로필

A : 여성. 서울 내 중상위권 대학 1학년. 고향은 광주. 외국어고 졸업. "중산층이다"
D : 남성. 서울 내 중상위권 대학 1학년. 세종시 자율형 공립고 졸업. "딱 중간의 중산층인듯"
E : 남성. SKY 대학 1학년. 서울 지역단위 자사고 졸업. "우리 집은 서민"
F : 여성. SKY 대학 1학년. 서울 강남 8학군 일반고 졸업.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 가정.
G : 남성. 지방 국립대 1학년. 대전 일반고 졸업. "중산층이다"
L : 남성. IT 회사 입사 뒤 병역특례 복무중. 실업계열 특성화고 졸업. 서울 거주.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 가정.
M : 여성. 지역 문화상품 제작·판매. 초·중·고 모두 대안학교 졸업. 인천 거주. "집안 형편이 그때 그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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