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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7일 오후 한 우체국 앞에서 시민들이 정부가 공급하는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지난 2월 27일 오후 한 우체국 앞에서 시민들이 정부가 공급하는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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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에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오고 한 달 뒤 급격한 확진자 증가세만큼 사람들의 공포심은 커져만 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 앞에서 개인 단위에서 대응할 수단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의 불안감은 마스크 착용으로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마스크 수요 증가를 따라갈 수 없는 공급량으로 인해 마스크 대란이 발생했고, 급기야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달 말 우체국에서는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적 마스크'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마스크 대란은 끝나지 않고 있다.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은 신경이 예민해졌고, 마스크를 사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체국 직원에게 화풀이하기도 한다.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이 기존의 관계, 도덕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현장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몇 시간 줄을 서서 마스크를 구매한 사연, 마스크를 사기 위해 새치기한 사람과 다툰 사연,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한 사람이 우체국 직원에게 욕설을 퍼붓는 장면을 목격한 사연 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스크 사태가 만든 각양각색의 갈등이 일상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우정사업본부) 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이 작성하여 필자에게 전달한 글을 인터뷰 형식으로 편집했다. 마스크 판매량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우체국의 고충, 우체국 현장 직원의 마음고생을 느낄 수 있다.

- 우체국 마스크 판매로 갑자기 업무가 늘어났을 것 같다. 요즘 출근은 몇 시에 하나?
 "보통 7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지만 요 며칠은 6시에 일어난다. 우체국에 도착하면 8시 정도다."

- 좀 이른 시간인데, 그때부터 해야 할 업무가 있는 건가?
"아직 아침에 날씨가 쌀쌀한데 그 시간에 가면 벌써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맨 앞줄에 쪼그려 앉아 계시는 할머니께서는 6시부터 기다렸다고 하신다. 이렇다 보니 우리 우체국 직원 4명은 모두 8시 전후로 출근해서 우체국 문을 열고, 기다리고 계신 분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게 한다. 우체국 안에 30여 명이 여기저기 앉게 되지만, 못 들어오신 분들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 우체국에 일찍 와서 기다린다고 마스크를 다 살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은데.
"10시쯤이면 마스크가 도착한다. 숫자가 맞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5개씩 묶는 작업을 하고 다시 한번 85세트가 맞는지 확인한다. 준비가 다 되면 누구에게까지 판매할지 주민들 모르게 숫자를 세어 본다. 86번째 주민의 얼굴을 스치듯 본다. 오늘 판매 수량이 85세트니 못 받으시는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내일 오셔야 한다'고 수없이 말하지만 150여 명은 꿈쩍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 대충 봐도 자신이 오늘 마스크를 받을 수 없는데도 그래도 기다리시니 답답하기도 하도 안타깝기도 하다."

"마스크 판매 현장, 무슨 전쟁터의 보급소 같다"

- 우체국에 마스크가 많지 않다 보니 번호표 배부하고 판매하는 업무도 순조롭지 않을 것 같다.
"한 우체국에서 하루에 판매하는 수량이 85세트다. 9시 30분부터 번호표를 나누어 드리고 있는데 이미 기다리는 주민들이 100명이 넘으니 현장에서 다툼이 날 수밖에 없다. 9시 30분이 되기 전에 빨리 번호표를 달라고 큰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다. 늦게 오셔서 번호표를 못 받으신 분들은 마스크 판매 시간 11시에 맞춰 번호표를 줘야 하지 않느냐고 역정을 내기도 한다. 내일 판매분에 대해 미리 번호표를 달라고도 한다.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고성과 욕설, 심지어 몸으로 거칠게 밀고 항의하는 바람에 결국 경찰까지 출동한다."

- 지역 우체국은 주민들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어서 평소 친분이 있는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이번 마스크 사태로 사람에게 실망하는 순간도 많을 것 같다.
"이제 출근하는 게 무섭다. 사람들도 무섭고. 평소에 우체국에 오셔서 늘 웃으시며 고생 많다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는 그런 주민들이 아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전화 민원은 더 심하다. 욕설이 너무 쉽게 나오고 우체국은 국민의 적이 되어 버린  기분이다.

창구 앞에 비치한 감정노동 보호 문구가 지금은 너무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어제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부터 길게 선 줄은 마치 전쟁터의 보급소처럼 처량해 보였다. 번호표를 빨리 달라, 의자를 달라, 뜨거운 물이라도 달라 등등 각자 요구사항은 너무나 많지만 작은 우체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마스크를 판매하는 우리도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이런 식으로 판매를 해야 하는지, 우리도 고생이지만 주민들 마음도 충분히 공감한다. 물론 정부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거다. 마스크를 판매하는 직원들이 좀 편하게 일하자는 것이 아니라 새벽 6시부터 5시간씩 추위에 떨며 기다리는 노인 분들을 생각한다면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간곡히 요청을 드린다. 지금은 10시에나 마스크가 도착하는데 사전에 물량 비축해서 아침 9시 30분에 바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 제발 부탁드린다."

태그:#우체국, #마스크,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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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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