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기자말]
김사부(한석규)를 중심으로 한 돌담병원 사람들이 생명을 살려내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SBS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 최근 종영한 시즌2에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했던 인물은 박민국 교수(김주헌)였다. 김사부와 닮은 듯, 닮지 않은 그의 행보들은 무척 흥미진진했다. 왜 그토록 김사부를 깎아내리는지, 본질을 추구할 듯하면서도 반대편에서 행동하는지 질문을 가득 품고 그의 심리를 따라갔다. 드라마가 종영에 가까워지던 15회. 마침내 그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닥터 부용주. 당신의 실패. 당신의 위선과 만용. 그리고 그 잘난 척하는 것들. 전부 다 까발려주고 싶었어. 아니라고 거짓말이라고 미친 짓이라고. 버스에서 내려야 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당신만 옳고 당신만 고고한 줄 아나 본데 내 자부심 내가 해왔던 모든 노력 내가 이뤄냈던 모든 성과들 함부로 깔보지 마. 나 그래도 되는 사람 아니야. 알았어?"
 
박 교수의 이 대사는 그가 시기심에 의해 움직여 왔음을 명료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드라마의 마지막 회 그는 시기심을 극복해내고 김사부와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박 교수를 시기심에 시달리게 한 걸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시기심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걸까?

시기심의 정체

일본의 심리학자 사와다 마사토와 뇌과학자 나키도 노부고는 저서 <살리에리를 위한 변명>(플루토, 2018)에서 시기심을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가치 있는 자원을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갖고 있고 그것을 자신도 갖고 싶을 때, 그 상대에 대해 생겨나는 불쾌한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시기심은 단순히 나보다 잘난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마음과는 다르다. 내가 간절히 추구했으나 갖지 못한 것, 그 구체적인 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 대해 갖게 되는 감정이다.
 
박 교수는 10회 내레이션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단 한 번도 부끄럽다거나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한 적이 없었다. 돈이나 명예보다 사람 살리는 게 먼저라는 나의 신념 또한 흔들려 본 적이 없었다."
 
이 말에 따르면 박 교수는 김사부와 같은 것, 그러니까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위험했던 버스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살리고 있는 김사부를 맞닥뜨린다. 공포에 질린 채 그 현장을 탈출했던 박 교수는 자기 자신과 김사부를 대비해 본다. 김사부의 살신성인은 '사람 살리는 게 먼저'라면서도 버스에서 탈출하고, 돈과 명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했을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시기심을 느낀다. 자신이 그토록 추구하고자 했지만 갖지 못한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김사부에게 시기심이 발동된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사라 E. 힐은 시기심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며 그 기억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날 김사부의 모습은 박 교수에게 각인된다. 때문에 사고로부터 오랜시간이 흘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드라마의 첫 회. 쪽지로 자신의 수술을 도와준 것이 김사부임을 알게 된 순간, 그는 고마워하기보다는 시기심에 사로잡힌다.

시기심으로부터 도망치려 할 때
 
 <낭만닥터 김사부2>의 박민국(김주헌)은 김사부(한석규)처럼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을 김사부에 대한 시기심으로 표현한다.

<낭만닥터 김사부2>의 박민국(김주헌)은 김사부(한석규)처럼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을 김사부에 대한 시기심으로 표현한다. ⓒ SBS

 
시기심을 맞닥뜨릴 때, 많은 사람들은 이 괴로운 감정을 부정하려 든다. 시기심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그토록 추구해도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누군가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내면의 열등감을 자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기의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내가 그보다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으려고 애쓴다. 박 교수가 그토록 김사부의 허물을 찾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부인한다고 해서 시기심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9회 김사부가 탄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났을 때 현장에 온 박 교수는 "도망친 줄 알았는데"라며 한탄한다. 11년 전 자신의 시기심을 발동시킨 그 사건과 유사한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그는 깨닫는다. 그토록 도망치려 했던 '시기심'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말이다.

시기심을 마주하는 일은 자신의 치부를 보는 것 같아 무척 고통스럽다. 때문에 사람들은 시기심을 인정하는 대신 시기하는 대상을 깎아내려 자신을 보호하려 든다. 박 교수가 돌담병원을 형편없다 여기고, 김사부가 환자를 돌보는 방식에 대해 '무모하다'고 혹평하는 것이 바로 이런 심리다. 자신이 그토록 추구했으나 갖지 못한 것의 가치를 평가절하 함으로써 열등감과 시기심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 시도다. 그런데 일종의 방어로 타인을 비난하는 마음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10회 버스전복 사고를 수습한 후 박 교수는 김사부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버스 안에서 당신은 남았고 나는 도망쳤잖아. 그래서 계속 그렇게 나를 조롱했던 거잖아. 그래서 날 조롱하고 무시하고 계속해서 수치스럽게 날 몰아붙였잖아. 너 같은 거 가짜라고 의사란 놈이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비겁한 놈이라고. 아니야?"

그런데 정작 김사부는 11년 전 버스사고에서 박 교수가 있었던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박 교수를 그토록 비난했던 것은 김사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던 셈이다. 김사부처럼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박 교수는 스스로를 비난하는 마음을 시기의 대상인 김사부에게 고스란히 투사한다. 그리고 김사부가 자신을 조롱하고 비난하기 때문에 자신도 김사부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고 포장한다. 그래야만 김사부를 미워하는 이유가 '시기심'이 아닌 다른 타당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시기심을 건설적으로 활용하려면
 
 박민국은 그 누구보다 '사람 살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자 하는 의사였다.

박민국은 그 누구보다 '사람 살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자 하는 의사였다. ⓒ SBS

  
시기심에 대해 연구한 독일의 심리학자 롤프 하우블은 시기심을 다루는 방법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파괴적인 방법으로 시기의 대상을 비난하고 깎아 내리며 상대방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건설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시기심을 인정하고, 시기의 대상이 가진 것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했던 그 대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시기의 대상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드라마 내내 첫 번째 방식 그러니까 파괴적인 방식으로 시기심에 대처해왔다. 하지만, 마지막 회 극적으로 변화한다. 김사부가 팔목 수술을 하게 되면서 병원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자, 이를 수용한 것이다. 비록 망설이긴 했지만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한 박 교수는 이제 파괴적인 방식을 버리고 김사부와 함께 '생명을 살리는 가치'를 추구하는 '건설적인 방법'으로 전향한다.

시기심을 건설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열등감이 내 잘못이 아니라 상처에서 비롯됐음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김사부가 건넨 말들은 박 교수가 시기심을 내려놓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김사부는 10회 예전의 버스 사고를 떠올리는 박 교수에게 "그 날 사고는 당신 탓도 당신 책임도 아니었소. 비참했고 끔찍했고 언제 불이 붙을 줄 모르는 아주 긴박한 상황이었고. 그런 아비규환 속에서 살기 위해 도망쳤다고 어느 누가 당신을 비난하겠소. 어느 누구도. 해서도 안 되고"라고 힘주어 말한다. 또한 16회 "그건 하자가 아니라 상처라고 그래야죠. 그리고 그 상처는 나한테든 당신한테든 있는 거고요"라며 박 교수를 다독여 준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상처였고, 비난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해주는 김사부의 단호함은 박 교수에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했을 것이다. 결국 자신의 내면을 맞닥뜨린 박 교수는 자책과 열등감을 내려놓고 파괴적으로 살기를 중단한다. 대신, 시기의 대상이 갖고 있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애쓰기로 결심한다.

시기심은 사는 동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괴로운 감정이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타인과 비교해 경쟁에서 이기는 삶이 성공한 삶이라 세뇌받는 한국 사회에서 시기심은 매우 보편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낭만닥터 김사부2> 의 박 교수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역할이었으면서도 공감받고, 응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기심을 갖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기심의 꼭두각시가 되어 파괴적인 방식으로 살고 있다면 그것은 멈추어야 한다. 시기심 때문에 괴롭다면, <낭만닥터 김사부2>의 박민국 교수를 떠올려 보자. 박 교수에게 공감했던 그 마음으로 나 자신을 돌보아주자. 그럴 때 시기심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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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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