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0 20:45최종 업데이트 20.03.10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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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어떻게 빚어지는지 이치를 몰랐을 때는, 술을 잘 빚으려면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며 정성을 다해야 했다. 그 기도의 습관이 술을 제주의 반열로 올려놓고, 의례에 사용하는 신성한 액체로 만들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릉단오제의 시작은 신주 빚기로부터 시작된다. 제관들은 신주를 빚으면서 부정굿을 한다. 술이 부정 타지 말라고 무녀가 닥쳐올 재앙을 물리치려는 듯이 소리하며 춤을 춘다.

방송 <나 혼자 산다>에서 경수진이 정성을 다해 막걸리를 빚으려고 청계산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왔다. 약수터 물은 동네 우물물이나 시냇물이나 빗물을 받아 걸러서 썼던 시절에는 정결함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새벽에 가장 먼저 약수를 뜨러 가기도 했다.
 

현미경으로 바로본 효모. ⓒ 막걸리학교

 
그런데 지금은 약수터의 물들도 주기적으로 지자체의 보건환경연구원의 검사를 통과해야 할 정도로 불안해졌으니 무턱대고 약수터를 가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수돗물을 끓여서 소독하거나, 정수기 물을 받거나, 생수를 사다가 쓰는 청결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약수터의 물은 오로지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어딘가에 의탁하려는 것일 뿐이다. 술을 만드는 주도권이 마음에서 우러난 정성에서, 논리적인 과학으로 넘어온 것은 미생물인 효모가 발견되면서다.

효모의 발견

효모는 미생물 중에서는 가장 크지만, 바이러스처럼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1680년에 네덜란드 과학자인 안톤 반 레벤후크는 자신이 만든 현미경으로 효모를 처음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로부터 180년이 지나 1859년에 이르러서 프랑스인 루이 파스퇴르가 효모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발효 과정에서 알코올을 생성한다는 것을 밝혔다. 1883년에는 네덜란드 맥주회사 칼스버그의 연구원인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이 효모를 분리하여 순수 배양하면서 양조 산업은 대형화되고 경쟁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하나의 발견이 양조 문화의 최대 분수령이 된 것이다. 효모는 땅속에도, 물속에도, 볏짚에도, 나무에도, 우리 손바닥에도 존재한다. 특히 꽃, 과일, 수액 풍부한 나무 등 당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잘 자란다. 술을 빚는다는 것은 효모를 기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술을 빚으면 뽀글거리면서 올라오는 기포의 소리에 사람들은 매료된다.
 

효모의 활동으로 술통에서 기포가 생기는 모습. ⓒ 막걸리학교

 
그 소리가 때로 시냇물 소리 같고,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같기도 하다. 기포는 효모가 당을 소화하면서 생성시키는 이산화탄소다. 효모가 생성하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빵이 부풀어지고, 술떡이 더 가벼워지고 폭신해진다. 그 기포를 가둬 탄산감 넘치는 막걸리가 만들어지고, 폭발력 있는 샴페인도 만들어진다. 효모의 활동이 잠잠해지면 기포도 사라지고, 기포가 사라지면 술이 다 빚어진 줄도 알게 된다.

그래서 술을 잘 빚으려면 효모를 잘 다뤄야 한다. 효모의 존재를 모르면 눈 가리고 술을 빚는 거나 마찬가지다. 잘 빚기도 어렵고, 잘못 빚은 이유도 알 수가 없다.

단세포인 효모는 출아 번식하여 세대를 이어간다. 모세포의 한쪽이 부풀어오르면서 횡경막이 생기고, 분열된 핵이 딸세포로 이동하면서 한 생명체가 완성된다. 모세포에서 딸세포가 만들어지는데 섭씨 25도 정도에서 2시간이면 충분하다. 1㎖의 술덧 속에 효모가 2억 마리까지 자라게 된다.

2시간에 2배로 늘어나니, 1마리가 2시간이면 2마리, 4시간이면 4마리가 되고, 6시간이면 8마리가 된다. 24시간이 지나면 2의 12승으로 4,096마리, 48시간이 지나면 2의 24승으로 16,777,216마리가 되고, 56시간이 흘러 2의 28승이 되어야 2억마리가 넘는 268,435,456마리가 된다. 술덧 1㎖에 효모 1마리가 있다고 했을 때, 이틀하고 8시간이 흘러야 효모의 개체 수가 최대치에 도달한다.
 

효모가 생성하는 기포 때문에 술덧 속에 공기층이 생겼다. 효모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안정된 온도를 유지해줘야 한다. ⓒ 막걸리학교


양조장에 밑술 만드는 공간과 덧술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데 이는 효모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밑술할 때는 효모의 증식에 주력하고, 덧술할 때는 알코올 증식에 주력한다. 그리고 밑술하고 나서 3일째인 효모의 최대 증식기에 덧술을 하게 된다. 이 모두가 효모의 생육 주기와 관련이 있다.

효모는 기질이 특별하여, 산소가 없어도 살고, 산소가 있어도 산다. 산소가 있으면 먹잇감인 포도당을 완전히 분해시켜 이산화탄소와 물을 생성하면서 번식한다. 산소가 없으면 포도당을 조금 갉아먹고 뱉어놓는 정도인데, 이때 포도당의 절반을 이산화탄소로 소진하고 나머지 절반을 알코올로 변환시켜 놓는다.

술을 빚을 때 단번에 빚지 않고, 밑술과 덧술, 두 단계로 나눠담는 것이 훨씬 편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밑술에서는 뚜껑을 덮지 않고 막대로 저어서 공기가 충분히 통하게 하면서 발효를 도모한다. 덧술에서는 알코올을 한껏 생성시켜야 하니, 술독의 뚜껑을 덮어서 공기를 완전 차단하여 밀폐 발효를 한다.

학습과 훈련의 영역이 된 술빚기

지금까지 알려진 효모의 종류는 1500여 종이라고 한다. 그런데 좋은 효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소를 좋아하여 술덧의 윗면에서 막을 형성하는 산막효모는 발효의 방해꾼이다. 몇몇 효모는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균으로 작동하는데,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의 입이나 기도나 폐에 침투하여 해로운 바이러스처럼 치명상을 입힌다.

무지가 유령을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는 언제든지 두려운 존재로 바뀔 수 있다. 효모의 존재를 몰랐을 때는 술 빚기가 신앙이나 특권으로 군림했지만, 효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술빚기는 학습과 훈련의 영역이 되었다.

바이러스라는 존재들은 효모보다 훨씬 작아서 1939년에 전자현미경의 등장과 함께 그 모습을 인간에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바이러스 서식지이고, 바이러스가 없었다면 지구는 생명체가 없는 행성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인간이 경영한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세상을 다 알면, 인간의 것은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술을 빚었다지만 술은 효모들이 살던 저수지에 불과하고, 내 육신은 내 의지대로 움직였다고 하지만 바이러스의 서식지에 불과할 뿐이다"라는 말도 성립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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