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 생활

슬기로운 의사 생활 ⓒ tvN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지난 12일 첫 방송에서 기존 병원 드라마의 전형적 서사 장치를 와장창 깬 뒤, 이 작품이 앞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할 것임을 알리며 포문을 열었다. 아울러 알고보니 '키다리아저씨'였던, 재벌가 막내 아들 소아 외과 교수 안정원(유연석 분)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흉부외과 김준환(정경호 분), 산부인과 양석형(김대명 분), 신경외과 채송화(전미도 분), 간담췌외과 이익준(조정석 분)까지 20년지기 친구들의 캐릭터를 소개했다. 

이어 2화의 바통은 채송화가 이어받았다. 수많은 수술을 소화하고 학회도 다녀오고 후배 논문까지 챙기고 자기 시간까지 갖으면서도 단 하루도 지각을 하지 않아 '귀신'이란 별명이 붙은 '수퍼 우먼' 채송화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거기에 더해 주인공 다섯 명 주변의 전공의들이 등장시키며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폭을 확장했다. 이야기도 다양해지고 인물도 늘었지만, 2화 또한 1화처럼 '사람'에 방점을 찍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나태주의 시 <풀꽃>의 그 '너'처럼 말이다.

채송화의 선택

안 그래도 밤을 새워 해야만 하는 13시간짜리 수술을 앞둔 채송화를 치프 레지던트 용석민(문태유 분)이 조른다. 미디어와 '프렌들리'한 뇌센터장 민기준 교수가 지하철 영웅이 환자로 들어오자 공명심에 앞서 환자에게 위험할 수도 있는 개두술을 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병원장까지 나선 수술 전 회의에서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덜하고 정밀도가 높은 TSA수술을 하기로 변경됐지만, 문제는 이 수술에 대한 민 교수의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치프 레지던트 용석민은 "환자가 죽는 걸 지켜보자는 거냐"며 채송화를 닥달하는 한편, 환자와 보호자를 향해서는 "잘 모르시면 제 말 대로 하시라"라고 강압적으로 응대하며 수술 집도의를 변경하고자 애쓴다.

이 상황은 언뜻 보면, 환자를 위하는 생각하는 마음이 큰 치프 레지던트 용석민의 돌발 행동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후 예상외 상황이 펼쳐진다. 물론 민기준 교수가 TSA 수술 경험이 일천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용석민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논문 사례로 '지하철 영웅'을 이용하기 위해 상황을 밀어부친 것이었다. 용석민이 내세운 선의 뒤에 가려져 있었던 건 그의 욕망이었다. 

이날 방송분에선 그 반대의 경우도 나왔다. 일반 외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교수는 13명인데 그들을 어시스트할 레지던트가 장겨울(신현빈 분) 한 명인 상황이다. 그래서 외려 교수들이 레지던트의 안부를 묻는다. 심지어 이익준의 경우 자신의 수술에 어시스트를 부탁하기 위해 장겨울 앞에서 애교 섞인 댄스를 출 정도다. 그런 교수들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장겨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오만해 보일 정도로. 

응급실 콜을 받고 내려간 장겨울은 교통사고로 들어온 7세 남자 아이의 환후가 심상치 않자, 응급의학과 봉광현(최영준 분) 교수에게 전달받은 최악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환자 보호자인 아이 엄마에게 전달한다. 치명적이다. 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시라. 심지어 '어머니가 CPR을 하지 않아 더 위험에 빠졌다'라는 식의 말까지 해버린다. 이 말을 지나가다 들은 안정원은 장겨울에 대해 의사로서 기본이 되지 않은 사람이란 선입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은 다시 응급실 콜을 받고 간 장겨울의 행동으로 인해 무색해 진다. 응급실로 오랫동안 공사장에서 지낸 노숙인이 실려온다. 한쪽 발에 동상이 걸린 채로 말이다. 설상가상 동상 걸린 다리엔 구더기가 득시글거리고, 소독을 하기 위해선 먼저 구더기를 떼어내야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한다. 대다수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장겨울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장갑 낀 손으로 구더기를 걷어내기 시작한다. 

'사람 겉만 봐서는 모른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슬기로운 의사 생활 ⓒ tvN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주 '사람 겉만 봐서는 모른다'는 말을 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화는 바로 겉으로 다 드러나지 않는 '사람됨'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어쩌면 쉽게 예단하고 선입견에 눈을 가리는 우리들의 '판단'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후 채송화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동창이 머리에 생긴 암으로 인해 환자로 들어온다. 일전에 유방암 수술을 했고, 다시 뇌에 암이 생겨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해외에 일하러 가고, 홀로 투병을 해야 하는 여성은 잇단 수술로 한껏 우울해져 있는 상황이다. 

어르신들만 있는 병실에 배치된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그저 유방을 한쪽 절개한 이상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라고만 여긴다. 하지만 드라마는 여기서도 반전을 보여준다. 알고보니, 같은 병실의 어르신들은 당신들에 비해 아직은 한참 젊은 그녀가 예뻤던 것. 그저 예뻐서 자꾸 쳐다본 것이었다. 

유방도 한쪽 밖에 없고, 뇌수술까지 해야 해서 삶이 아득하기만 했던 그녀가 그래도 나이드신 어르신들에게는 한창 때로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어르신들의 따뜻한 관심과 시선은 나락으로 떨어지던 그녀를 구출한다. 어르신들에 대한 편견어린 커튼을 그녀가 열어젖히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삶의 구원이다. 

그렇다면 2화의 이야기를 이끈 채송화는 어떨까? 그녀에게 '귀신'이란 별명을 붙인 건 용석민이다. 그녀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용석민에게 비쳐진 그녀는 인간의 경지 그 이상으로 성실하고 일 열심히 하는 선배 의사란 의미이기도 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지향점

2화를 통해 표현된 채송화는 그저 '워커 홀릭'이 아니었다.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워 헤어진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일상을 이어가는 건 프로다운 모습으로 인정할 만하지만, 용석민이 자신의 논문에 넣을 욕심으로 집도의를 교체해야 한다고 우김에도 스스로 민 교수의 심기와 상황 등을 고려해 어시스트를 자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을 통해 그의 내면에 배려라는 단어가 깊에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채송화는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환자와 보호자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용석민에게 사과할 것을 명령한다. 다시 한 번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따끔한 훈계 또한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채송화는 그저 수술 잘 하고 일 잘 하는 선배 의사 이상의 인간적 품격을 보여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주목하는 어른들, 선배들은(물론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른의 품격', '나이듦의 품격'이 뭔지를 보여준다. 

여성 한 명에 남성 네 명이라는 묘한 구도로 인해, 이후 과거 '응답하라' 시리즈 속 '남편찾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화의 주요 내용을 이끈 채송화와 장겨울 등 여성 캐릭터에 대한 접근은 그간 여타 드라마들이 답보해 온 여성과 남성에 대한 이분법적 선 긋기가 아닌, 사람 그리고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으로서의 접근이란 점에서 신선했다. 

특히 마지막에 에필로그처럼 등장한 장면에서 김준환은 채송화의 전 남친 장교수를 만나 채송화에게 바람 핀 사실을 말하라고 하고 이에 장 교수는 연인 사이 일에 과한 참견 아니냐고 하지만, 김준환은 "친구 없냐"라고 바로 반문한다. 그의 이런 태도는 남녀 사이 이전의 '사람'이라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지향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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