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원수에 맞서 싸우는 복수극은 이제 드라마의 흔한 소재가 됐다. 하지만 많은 복수 드라마의 주인공은 강력한 힘과 권력을 가진 원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스스로 악인이 되기를 자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대부분 "신이시여, 나중에 천벌을 받는 한이 있어도 저는 결코 이 놈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는 논리로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21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박서준 분)는 달랐다. 박새로이는 장근원(안보현 분)과 장대희 회장(유재명 분)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어 그들에 대한 엄청난 복수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박새로이는 복수라는 '목적'을 위해 결코 부당한 '과정'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람과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지킨 박새로이가 시청자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태원 클라쓰>의 핵심 여성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조이서(김다미 분)와 오수아(권나라 분) 역시 박새로이를 많이 아끼고 좋아한다. 박새로이를 향한 두 여성 캐릭터의 감정변화는 <이태원 클라쓰>의 시청포인트이기도 하다. 박새로이는 조이서를 선택했지만 박새로이에 감정 이입한 시청자들은 <이태원 클라쓰>를 보면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조이서와 오수아를 연기한 김다미와 권나라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매력을 뽐냈기 때문이다. 

2010년대의 '마지막 괴물신인', 드라마도 뒤집었다
 
 김다미는 고등학생 연기가 어색하지 않은 동안이지만 실제로는 올해 한국 나이로 26세가 됐다.

김다미는 고등학생 연기가 어색하지 않은 동안이지만 실제로는 올해 한국 나이로 26세가 됐다. ⓒ jtbc 화면 캡처

 
한국 영화계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엄청난 재능을 가진 신인 여성 배우가 등장해 관객들을 충격에 빠트리곤 한다. 2010년대에도 어김 없이 3명의 천재 여성 배우가 나타나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2012년 <은교>로 주목 받고 <도깨비>로 정점을 찍은 김고은과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통해 일약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 김태리, 그리고 2018년 영화 <마녀>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매력을 선사한 김다미가 그 주인공이다. 

김다미는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꾸다가 인천대 공연예술학과 진학 후 피팅모델로 활동했다. 그러던 2017년 독립영화를 통해 데뷔한 김다미는 2018년 <신세계>를 만들었던 박훈정 감독의 신작 <마녀>에 1500: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구자윤 역으로 캐스팅돼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김다미는 <마녀>를 통해 무려 14개의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마녀>의 속편 크랭크인을 기다리던 김다미는 <마녀2>의 제작이 늦어지자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선택했다. 김다미는 이 드라마에서 IQ162의 천재이자 팔로어 80만명을 거느린 SNS스타, 그리고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진 조이서를 연기했다. 방영 초기에는 원작 웹툰 속 조이서와 싱크로율이 높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다미는 조이서를 자신만의 느낌으로 재탄생시켰다. 차가운 느낌이 강한 원작의 조이서와 달리 김다미가 연기한 조이서는 단밤의 매니저로서 따뜻함을 드러낸 적이 많다. 특히 단밤의 요리사 마현이(이주영 분)가 트랜스젠터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박새로이의 부탁에 따라 마현이의 요리가 발전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다. 마현이를 '언니'라고 부르며 가장 먼저 그녀의 성정체성을 인정해 준 인물도 그였다. 

조이서는 극중 20살의 어린 나이에도 요식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장대희 회장과 독대할 정도로 대범하고 자신을 스카우트하러 온 장근원이 범죄 사실을 자백하게 유도할 정도로 똑똑하다. 그리고 김다미는 그런 조이서 캐릭터를 시청자들이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게 자연스럽게 표현해 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영화에서 주로 활동한 김다미에게 <이태원 클라쓰>가 데뷔 후 첫 드라마였다는 점이다.

섬세한 연기도 척척, '걸그룹 출신' 꼬리표 털어 버렸다
 
 권나라는 <이태원 클라쓰>를 비롯한 최근 몇 작품을 통해 '예쁘기만 한 배우'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권나라는 <이태원 클라쓰>를 비롯한 최근 몇 작품을 통해 '예쁘기만 한 배우'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 jtbc 화면 캡처

 
때는 AOA 설현의 실물크기 입간판이 전국 휴대전화 매장에서 번번이 도난사고를 당하던 2015년. 걸그룹의 흐름에 남 다른 관심이 있던 마니아 팬들은 조만간 설현의 뒤를 이을 '차세대 요정'의 등장을 예언했다. 2012년 데뷔해 걸그룹 홍수 속에서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데뷔 초기부터 '만찢녀'로 불리며 각종 무보정 사진으로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던 헬로비너스의 권나라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린 시절 연기자를 지망하던 권나라는 우연찮은 기회에 판타지오와 계약해 2012년 헬로비너스로 데뷔했다. 권나라는 배우로 변신한 애프터스쿨의 나나, 나인뮤지스의 민하와 함께 '걸그룹 3대 비율 깡패'로 불리며 남성팬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권나라는 2016년 설현의 자리를 이어 받아 통신사 광고를 찍었다. 

하지만 권나라는 2017년 <수상한 파트너>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2018년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는 울렁증이 있는 실패한 영화배우 역할로 열연을 펼치며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권나라는 이후 SBS <친애하는 판사님께>와 KBS <닥터 프리즈너>에서 잇달아 주연으로 출연했고 작년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와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권나라는 <이태원 클라쓰>에서 어머니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랐지만 장대희 회장의 눈에 들어 장가의 전략기획팀장으로 성장한 오수아 역을 맡았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박새로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뒤늦게 등장한 조이서 때문에 상처를 받는 비련의 캐릭터다. 특히 장회장의 시한부 판정에 눈물을 흘리는 14회와 조이서를 구하러 가는 박새로이를 말리다가 끝내 보내야 했던 15회에서는 섬세한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수상한 파트너>를 시작으로 최근 3년 동안 5편의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은 권나라는 이제 걸그룹 멤버가 아닌 배우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물론 소녀시대의 윤아나 애프터스쿨의 유이처럼 소속사의 엄청난 푸시를 받진 못했지만 권나라는 차근차근 배우로서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또 한 단계 성장한 권나라는 이제 가수에서 배우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대표적인 연기자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김다미(왼쪽)와 권나라(오른쪽)는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배우로서 큰 성장을 이뤄냈다.

김다미(왼쪽)와 권나라(오른쪽)는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배우로서 큰 성장을 이뤄냈다. ⓒ <이태원 클라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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