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2달이 흘렀다. 그 사이 코로나19는 국내에선 100여 명이 넘게 숨지고 전 세계적으로 14000여 명 이상이 사망하는 세계적 대유행 감염병으로 발전했다. 당연히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백신이나 치료제의 개발은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국내의 제약사들도 서둘러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과도한 규제 탓에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지난 21일 방송한 SBS <뉴스토리> '한시가 급한데...규제에 우는 기업인들' 편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막는 국내의 규제 실태와 해결 방안을 취재했다.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지난달 말 제약회사 코미팜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코로나19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 허가를 신청했다. 임상 준비 중인 치료제는 코로나19 환자의 상태를 급격히 악화시키는 원인인 '사이토카인 폭풍'(과도한 면역 작용이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는 물론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현상)을 억제할 수 있다고 알려진다.

2007년부터 국내외 연구기관들과 함께 사이토카인 폭풍을 억제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해왔던 코미팜은 동물 시험에서 효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한다. 식약처의 임상 승인이 나면 코로나19 확진자 100명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할 계획이다.

그런데 임상 계획서를 제출한 지 한 달 가까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어떤 답변도 듣질 못했다. 양용진 코미팜 대표는 비상 상황에서도 규제에 얽매인 정부의 대응에 분통을 터뜨린다.

"이것처럼 급한 게 어디 있습니까?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 아닙니까? 정부가 붙어서 (일하고) 얼마나 좋아요. 확인도 직접 하고, 빨리할 수 있고. 그렇게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코로나19 같은 긴급한 상황에서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 시험을 신속하게 할 수는 없을까? 미국은 치료가 시급하다고 판단될 경우에 임상 전 독성검사를 면제하고 긴급 임상 시험을 진행하는 '패스트트랙' 제도가 있다. 반면에 국내엔 이런 긴급 임상 제도가 법률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심사 규정을 살펴보자. 감염병 대유행의 경우에 예방 또는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의약품을 "우선적으로 신속하게 심사하여 허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긴 하다. 그런데 심사 기간을 정해놓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신속 심사 규정이 '법령'이 아닌, '고시'란 점이다.

법률이 제정되면 시행령(대통령령), 시행규칙(부령), 고시 등 세부적인 지침이 마련된다. 시행령은 국무회의에서 결정하고 시행규칙은 법제처의 심의를 받는다. 고시의 경우엔 행정기관이 임의로 만들고 편의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곽노성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의 설명이다.

"공무원들한테 너무 많은 재량권이 부여되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공무원들이 그걸 굉장히 쉽게 활용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법이나 시행령, 시행규칙 같은 경우에는 위에서 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걸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지만, 고시는 내가 바꾸면 된다고 하는 생각이 있거든요."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심사 규정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제약업계는 대부분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그런데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을 과감히 지적한다.

"전문성이 없어요. 인력적인 풀도 안 되고 시간도 적으니까. 일반적인 제약회사들이나 바이오 회사들이 연구와 관련한 논문을 갖다 드리면 그 부분도 잘 모르세요. 그러면 저희가 설명을 다시 해야 하는 거죠. 좋게 얘기하면 신중하신 거고 나쁘게 말하면 과정이 길어지는 거죠."

신속 심사 규정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입장은 무엇일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심사 기간이나 조건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통 120일이 허가 기간이니 신속 심사 규정은 그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따름이다.

이 말은 기간을 정한 강제 규정도 아니니까 반드시 빨리 심사할 의무는 없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다. 담당 공무원은 신속하게 처리했다가 나중에 부작용 문제가 불거질 경우를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고시에만 규정된 신속 심사 규정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2018년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약품 및 혁신신약 개발지원 법안'을 대표 발의 했다. 법안은 감염병, 생화학 무기, 핵물질로 인한 질병 등을 치료할 수 있는 의약품의 허가심사 단축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신속 심사 법안은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로 20대 국회가 끝나면 자동으로 폐기된다. 기동민 의원은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강조한다.

"(현재) 우선 심사 제도를 만들어 놓기는 했는데 형식화된 측면들이 강해요. 국회가 이런 법적 근거를 빨리 만들어줘야 합니다."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현재 코로나19와 관련한 치료제 임상 시험을 신청한 곳은 현재 여섯 군데다. 이 중에서 두 곳은 허가가 났고 네 곳은 보류 중인 상태다. 허가를 받은 두 곳 중 하나는 다국적제약 바이오 기업 길리어드사이언스다.

지난 2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길리어드가 신청한 렘데시비르의 임상 시험 계획 2건을 승인했다. 렘데시비르의 임상 시험 계획은 생체 외 시험과 동물 시험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유사한 사스, 메르스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는 데이터가 이미 쌓여서 빠른 승인이 가능했다.

임상 시험 허가는 났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치료제를 상용화하기 위해선 제품 정부 허가와 가격 책정 문제 등 남은 과제가 산적하다. 빠른 치료제 개발을 위해선 임상 연구의 획기적인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한시가 급한 치료제 개발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하루빨리 제거해야 한다.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뉴스토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행정 절차 간소화'를 주문했다. 김성순 국립보건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장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사태에는 모든 절차와 승인 과정의 속도가 필요하다"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연구가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예산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여기엔 정부 부처간 협력, 그리고 민관협력이 필수적이다.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정아 길리어드사이언스 이사 역시 신속성을 강조한다.

"감염병에 한해서는 적절한 수준으로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자가 발생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기간 안에 어떤 임상적인 데이터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그 이후에는 사실 이 개발을 진행할 방법이 없거든요."
SBS 뉴스토리 코로나19 치료제 식품의약품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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